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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눈물 이후』(2018, 시산맥)

농담

가짜시인! 2018. 8. 6. 13:24

농담

 

  

 

죽음을, 이루다 라는 동사로 의역해 놓고서 그는 떠났다

슬픈 기색은 없었다

이태 전 문병을 간 자리, 웃음 띤 얼굴로

비스듬히 누운 채 땅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던 그의

드러난 한쪽 귀는 단풍잎처럼 붉었고 눈이 붉었다

죽음을 이루려는 안간힘이 겨운 웃음을 꽃대처럼 받치고 있었다 

가만 옆에 앉아 있어 주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해줄 게 없었으므로

한참 동안 단풍잎처럼 마음 벌겋게 그를 지키다가 돌아오는 길,

문밖을 따라나서는 희미한 소리

‘먼저 가 있을게’

 

바람이 손끝에 침을 발라 시간을 낱장처럼 넘기는 늦은 오후

겨울 앞에 선 단풍나무 한 그루

고통의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환한 직면을 본다

꽃 한 다발을 내밀고 싶은 감동적인 결말 앞에

안간힘으로 죽음을 이루려던 그가 떠올라 나는

다시 나무 곁에 한동안 서 있어 주었다 그리고

말 대신 단풍만 간혹 던지는 나무에 답해 주었다

'니가 참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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