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탑 _ 반년간 『스토리문학』2020년 하반기호 수록 본문

나의 편린들/버린 詩(발표)

탑 _ 반년간 『스토리문학』2020년 하반기호 수록

가짜시인! 2020. 11. 14. 14:29

- 황룡사 터에서

                                 권 상 진

 

 

목탑이 있던 자리

허망한 역사의 뒤뜰에서 자라는 잡풀들 사이로

흩어진 석재가 더러는 묻히고 또 삭아진 땅

 

허물어진 금당 위로

마침내 몇 번의 왕조조차도 쓰러진 자리에

낮게 숨죽이며 버텨온 심초석 하나

 

탑은 어디로 갔을까

황량한 빈 터 어디에 묻혀 있을 탑 그림자는

이제 자신의 모습조차 잊었을 테지

 

시간의 앙금이 지층이 되도록

빈 터가 천년을 가두는 동안

층층이 허상만 그려 올리던 사람들

 

심초석 위에 기대앉아 본다

왜 몰랐을까

한 생각 접고 여기 앉으면 누구라도 탑이 된다는 것을

 

거닐던 사람마다 탑이 되어 솟는다

누웠던 그림자가 키를 맞추면

바람이 머리칼을 쓸며 탑돌이를 시작한다

 

 

 

반년간 『스토리문학』2020년 하반기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