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하루하루

젖무덤 _ 계간 『시와 경계 』 2020년 여름호 수록 본문

나의 편린들/버린 詩(발표)

젖무덤 _ 계간 『시와 경계 』 2020년 여름호 수록

가짜시인! 2020. 7. 15. 09:30

젖무덤

 

               권 상 진

 

 

여자를 벗고, 집 앞 골목을 나오는 사람

얇고 하얀 모시런닝 속

중력 쪽으로 기운 가슴에서

탄화된 시간이 설핏 비친다

 

나는 남자를 버리고

한참 동안 저 밋밋한 것을 바라본다

 

누가 이름 지었을까, 젖무덤이라는 말

그 속에 눈물이 한가득이다

가슴에 헛묘를 만들고

남몰래 욱여넣던 설움들이 부품하다

 

연고도 없는 저 무덤 앞에서 나는 경건해지고

저 여인 앞에서 숙연해진다

 

그런 나이가 온 것일까

등 뒤에서 팽팽하던 여자를 풀어 버려도

하나 남사스러울 것 없는

그런 나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일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양을 바꾸는 가슴이

건반을 벗어난 음표들처럼 자유롭다

 

 

계간 『시와 경계 』 2020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