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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버린 詩(발표)

안경을 벗으며

가짜시인! 2018. 12. 6. 08:35

안경을 벗으며

 

 

안경을 벗으면 흐릿해지는 풍경이 좋다

눈이 점점 나빠질수록

세상을 조금씩 밀거나 당겨서 보는 버릇이 생겼지만

안경을 더듬기보다

허물어지는 경계를 그냥 지켜보기로 한다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 그 간격에는

서로를 향한 번짐이 있고 휨이 있다

저 번짐의 끝점, 저 곡선의 바깥까지를

나는 사람이라 부르겠다

맨눈으로 보는 태양처럼

사람을 보는 일이 이리 부시다

 

읽던 책에서는 활자들 서로 부둥켜안고

반듯하던 문장의 길들이 일렁인다

그 행간에서 나는 길을 잃어

오독은 갈수록 더 깊어질 것이므로

이쯤에서 읽던 페이지를 덮기로 한다

 

사람과 사람이 스미고 사람과 사물이 스미고

사물과 사물이 스며들어 서로 깃드는 풍경

굴절된 허상을 벗고 나니

차츰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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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벗으며

 

 

안경을 벗으면 흐릿해지는 풍경이 좋다

눈이 점점 나빠질수록

세상을 조금씩 밀거나 당겨서 보는 버릇이 생겼지만

안경을 더듬기보다

허물어지는 경계를 그냥 지켜보기로 한다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 그 간격에는

서로를 향한 번짐이 있고 휨이 있다

저 번짐의 끝점, 저 곡선의 바깥까지를

사람이라 부르겠다

맨눈으로 보는 태양처럼

사람을 보는 일이 이리 부시다

 

펼쳐놓은 책 속에 서로 부둥켜 안은 활자들 

논리가 길을 잃은 행간에 나는 서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서로 깃드는 풍경을 이제서야 만난다  

이쯤에서 읽던 페이지를 덮기로 한다

 

굴절된 허상을 벗고 나니

차츰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

사람

 

안경을 벗으면 흐릿해지는 풍경이 좋다

 

눈이 점점 나빠질수록

세상을 조금씩 밀거나 당겨보는 버릇이 생겼지만

 

안경을 더듬기보다

허물어지는 경계를 지켜보기로 한다

 

광장에는 모르는 사람들

희미하게 휘어지며 서로에게 깃들고 있다

스미고 있다

 

저 번짐의 끝점

저 곡선의 바깥까지를

사람이라 부르겠다

 

맨눈으로 태양을 보는 것처럼

사람을 보는 일이 이리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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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을 벗으면 흐릿해지는 풍경이 좋다

광장을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들

세상을 조금씩 밀거나 당겨야만

 

또렸해지던 실루엣이 휘어진다

 

저 번짐의 끝점

 

저 곡선의 바깥까지를

 

사람이라 부르겠다

 

맨눈으로 태양을 보는 것처럼

 

사람을 보는 일이 이리 부시다

 
 

----------------------------------------------------------------------------------

 

 

 

안경을 벗으며

 

 

안경을 벗으면 흐릿해지는 풍경이 좋다

나이가 점점 나빠질수록

세상을 조금씩 밀거나 당겨서 보는 버릇이 생겼지만

안경을 더듬기보다

허물어지는 경계를 그냥 지켜보기로 한다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 그 간격에는

서로를 향한 번짐이 있고 휨이 있다

저 번짐의 끝점, 저 곡선의 바깥까지를 사람이라 부르겠다

맨눈으로 보는 태양처럼

사람을 보는 일이 이리 부시다

 

활자와 활자들 서로 부둥켜안고

논리가 길을 잃은 행간에 나는 지금 서 있다

책은 언제나 삶 위에 군림하는 이정표였지만

오독은 갈수록 더 깊어질 것이므로

이쯤에서 읽던 페이지를 덮기로 한다

굴절된 허상을 벗고 나니 차츰 세상이 제대로 보인다

사람과 사람이 스미고

사람과 사물이 스미고

사물과 사물이 스며들어 서로 깃드는 풍경

 

마침내 또렷했던 나조차도

세상에 풀어지고 있다

 

 

 

계간 『표현』 201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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