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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버린 詩(발표)

표적

가짜시인! 2018. 7. 26. 09:06

표적

 

 

산탄처럼 흩어지는 비는

슬퍼지는 것들만 표적으로 삼는다

 

비는 잔인하고

방아쇠를 놓으며 끝까지 나의 표정을 기다리는 먹구름은 집요하다

바깥만 젖은 창문처럼 안과 밖이 다른 표정을 지을 수 없는 나는

결국 적중을 시인할 수밖에

 

하루를 걷는 동안, 어깨에 부딪는 시간들은 난폭했다

낯선 길마다 저격수들이 슬픔을 장전하고 나를 겨눈다

가려진 가늠쇠의 간격들이 비의 그것만큼 촘촘해서

날아오는 탄환보다 겨누는 자세가 더 두렵다

오발은 없었다 빗맞아도 상처는 남는,

슬픔의 사선에서 나는 언제나 표적 이었다

 

견딜 만하다는 건, 온전하지 않다는 말

저항은 패자의 처절한 자세여서

참았던 눈이 결국 슬픔을 말하려 할 때

눈물을 빗물에 숨겨 항복처럼 내려놓는다

 

온몸에 듬성듬성 슬픔이 박힌 채 향하는 저문 집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들어 나를 에워쌀

나의 테두리들- 오 나의 어린 것들에게

눈물이 번질까봐 골목 입구에 서서

유리창처럼 표정의 안쪽을 몇 번이고 뒤집어본다

 

 

 

 

월간 『모던포엠』 2018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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