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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이름의 비유(권상진) 본문
이름의 비유
권상진
시인의 말석에 앉고부터
사랑, 슬픔이란 단어는 계륵이 되었다
저리도록 아름답고 숭고한 그 말이
천 년을 닳고 닳은 흔한 단어라서
나는 말을 비틀어야 했다
TV를 보던 초등학생 딸아이가
불통이 뭐냐고 물어 오길래
배려가 없는 고집이라 말해 주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불통이라는 말,
어느새 아이의 입에서까지 흩날리는 단어가 되었다
흔해빠진 시인들 사이에서
그저 그런 시인은 되기 싫어서
불통의 다른 말을 고민해 보는데
잠을 아껴 생각해도
누구의 이름 석 자만한 비유가 없다
- 시집 『눈물 이후』, 시산맥사, 2018
생각을 깊이 담지 않고 첫 줄에 이렇게 쓴다. 낱말 하나 간절하게 품었다가 놓는 사람이 시인이라는 말.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다 보니 ‘간절’과 ‘품다’도 마음에 걸리지만, ‘놓다’도 골칫거리다. ‘놓다’는 앞의 낱말보다 더 전문적인 행위를 요구한다. 말하자면, 시인이니까 해낼 수 있는 낱말의 적절한 배치다. 하지만 시인이라는 이름을 받을 때 내가 알지 못하는 고민거리 하나 덤으로 받았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전에 그토록 귀하게 여기던 말을 붙잡고 머뭇거리지는 않을 거다.
나는 여기서 ‘놓다’의 고민이면 충분하다고 쓴다. 사랑이나 슬픔, 그리움 따위가 “천 년을 닳고 닳은 흔한 단어”이긴 하나 앉은 자리에 따라 색깔도 다르고 냄새도 달라진다. 한때 시인 자신도 무슨 말을 썼는지 모를 난해시가 깔릴 때도 독자는 용케 익숙한 낱말의 색채와 냄새를 찾아 나섰다. 그러니까 “흔해빠진 시인들”을 벗어나는 길은 하나뿐. 시를 만날 때 시인의 명찰을 떼고 초심으로 고개를 숙일 일이다.
불통을 거두고 소통을 열려면 내 앞을 가린 장식을 떼어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마음속에 진을 친 체면도 싹 지워야 한다. 시의 의도와 다를 수 있으나, 갑자기 글 뒤에 맺히는 삽화 하나 붙인다. ‘오래가는 파마’의 시골 아낙들 옹기종기 평상에서 밥 비벼 먹는데 ‘올림머리’ 귀부인이 갑자기 머리를 들이민다면 어떨까. 불통과 소통 사이 시를 찾을 때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시인”이 ‘그런 낱말’의 배려로 와서 소통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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