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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영하의 날들(권상진) 본문
영하의 날들
권상진
이 골목은 열대의 모세혈관
쪽문 깊숙한 곳까지 폭염을 나르던 적도의 시간이
출구를 헤매는 골방에서
노인은 지팡이와 함께 싸늘하게 발견되었다
직립의 시간은 끝난 지 이미 오래인 듯
폭염을 등에 진 채 골방에 ㄱ자로 누운
저 경건한 자세가 되기까지 열대의 밤은
블랙홀처럼 폭염을 빨아들였을 것이다
극한의 외로움은 영하의 온도를 지녔다
버려진 시선들만 싸락눈처럼 쌓이는 골목 어귀는
외로움 온도가 연일 기록적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홑청 같은 그의 피부에 살얼음이 얼던 날
맹렬하게 그의 체온을 데우던 열대의 밤은 결국
조등인 양 달을 대문 밖에 내걸었다
열대의 대륙에서 견뎌야 했던 영하의 날들이 저문다
강변 공원에 삼삼오오 몰려든 사람들
시린 영혼들을 위해 기꺼이 폭염을 견디던 그들은
부의처럼 더운 심장을 강바닥에 내려놓고
자정이 지나도록 돌아갈 줄 모른다
빙하기 지층처럼 견고하던 얼굴에서
겹겹의 표정들이 차례로 녹아내린다
사람의 끝에서도 꽃이 피다니
오래전 퇴적된 노인의 미소가 환하게 한 번 피었다 진다
생의 아슬한 등고선에 기대 사는 지표 인간들
빈방이 하나씩 늘어나면서부터
여기까지가 사람의 경계라는 듯
골목은 폭염을 다시 들이고
인적 없던 골방마다 간간이 낯선 인기척들
걱정스레 쪽문을 밀치고 있다
- 시집 『눈물 이후』, 시산맥사, 2018
언제였던가 나는 그를 따라 낯선 골목에 든 적 있다. 골목에는, 들어가지 않으면 체감할 수 없는 시간의 안내가 적혀 있다. 오늘은 더 깊이, “골방”이다. “폭염을 나르던 적도의 시간”을 열었다가 “영하의 날들”을 들춘다. 어느 날은 그래도 직립이었다는 암시의 “지팡이”와 “직립의 시간”을 확실히 접은 “경건한 자세”를 읽는다.
이보다 더 명확한 기록이 있을까. “ㄱ자로 누운” 모양은 “극한의 외로움”과 “버려진 시선들”의 수치다. 그의 생애에 찍은 최고의 기록이다. 더는 경신할 수 없다. 아랫부분을 거듭 읽다가,
빙하기 지층처럼 견고하던 얼굴에서
겹겹의 표정들이 차례로 녹아내린다
사람의 끝에서도 꽃이 피다니
오래전 퇴적된 노인의 미소가 환하게 한 번 피었다 진다
이후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지만, ‘여기까지가 내가 앉았던 자리의 경계’다. 나머지는 “골방마다 간간이 낯선 인기척들”로 채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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