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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돌아온 시

[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별자리(권상진)

가짜시인! 2018. 9. 4. 13:04

별자리

 

                      권상진

 

 

1

고향 집 어귀 삐뚜름한 복숭아밭에

붉고 선명한 별자리가 내려앉았다

밤하늘의 한끝을 힘껏 당겨서

대문 앞 삽자루에 묶어 놓았는지

별들의 간격 사이에 향기가 팽팽하다

 

실직 이후 섭섭게 팔려간 저 밭뙈기가

가난한 식구들의 몇 계절을 일구는 동안

아버지는 반듯한 밭 하나를 가슴에 품었다

 

복숭아나무를 심을란다 어메가 참 좋아하셨지

 

흙도 한 줌 없는 마음 밭에는 올해도

헛꽃만 피었다 지고 있었다

 

2

모깃불 연기가 구수한 밤이었다

할머니는 평상에 누워 거문고자리 돌고래자리를

손가락 그림으로 그려 주었고 할머니 옆구리에

기대앉은 나는 소쿠리 가득한 복숭아를 꺼내

공중에 그려놓은 별자리를 본뜨는 여름이었다

 

아들보다 자주 본다는 읍내 의사는

할머니가 복숭아밭에서 키운 것은 별이라 했다

땅에서 하늘을 경작하는 일을 치매 농법이라 하였고

노구에서는 이제 별의 향기가 난다 하였다

 

할머니의 거처를 복숭아밭으로 옮기는 날

나는 하늘에 별자리 하나를 새로 그려 넣었고

아버지는 밭 가장자리에 묏자리를 그려 넣었다

빚이 반, 밭 주인 인정이 반인 좁은 거처에

옮겨온 별의 향기가 파다하다

 

올해는 복숭아가 풍년인 갑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환한 별자리를 헤치며

우주의 귀퉁이를 돌아 나오고 있었다

 

 

            - 시집 눈물 이후, 시산맥사, 2018

 

 

 

  유년의 복숭아밭은 따라나서기에 만만한 거리에 있다. 나무는 한 그루여도 좋고 열 그루여도 상관없다. 별을 따기에 좋고 졸아도 그만인 할머니 무릎까지 낱말이 주렁주렁 열린다. 이야기 한 토막씩 모아 반짝이는 별, “아버지는 반듯한 밭 하나를 가슴에 품었다니 이제 별들의 간격 사이에그림 그릴 일이 남았다.

 

  하늘에는 많은 별이 있고 별만큼 이야기도 많다.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매달고도 이야기 사이에 선을 그으면 또 하나 별자리가 생긴다. 별자리에 걸렸다가 익은 복숭아 향기 술술 풀리는 우주의 귀퉁이에서 시인의 소쿠리를 엿본다. 그 안에 별이 가득하다. 별의 향기에 취하면 시 감상을 적다가 머뭇거리기도 한다.

출처 : 금강하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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