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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등(권상진) 본문
등
권상진
슬몃 등을 돌려 마지막 인사를 대신한 사람이 있다
미처 언어로 번역되지 못한 생각들이 차곡한
등은, 그가 한 생애 동안 써온 유서
일생을 마주보고 건네던 가벼운 말들이
서로에게 가 닿거나 때론 우리의 간격 사이에서 흩어지는 동안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등이다
인연이 다한 뒤에야 당도하는 말들이 있다
바람이 불어 허연 억새의 가녀린 등이 굽는다
지난밤에는 어둠의 뒷모습이
쓸쓸하게 새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고
나는 단 한 번의 시선도 주지 못한 내 등이 궁금하다
이제사 돌아서는 것들의 등이 보인다
내게 오려던, 모든 수사가 지워진
간결한 주어, 목적어, 서술어
반가운 이를 만나고 헤어질 때
잠시 돌아서서 그의 등을 읽는 버릇이 생긴 것은
그날 이후다
- 시집 『눈물 이후』, 시산맥사, 2018
손 한 번 흔들고 돌아서면 그뿐인데, 그는 한참 서서 등의 말을 더듬고 있다. 그러면서 문득 자신의 등이 궁금해졌다. “간결한 주어, 목적어, 서술어”로 오는 등. 독자에게 읽히는 시인의 등과 다를 바 없다.
어쩌다 나는 세상의 등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사람의 등 뒤에 서 있었다. 행간에 내려놓은 등의 말을 짚어가며 여름 한가운데를 건넜다. 시 한 편은 “그가 한 생애 동안 써온 유서” 일부분이다. 그러니까 나는 시인의 삶 한 부분, 죽기까지 남기는 유서 한쪽을 읽은 것이다.
한편 등은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무방비일 때가 있어서 눈 돌리고 감춘 속내까지 드러낸다. “인연이 다한 뒤에야 당도하는 말”이 될지 모르나, 내가 읽은 시인의 등을 들려주고 싶었다. 말하지 않은 슬픔의 깊이를 엿보았노라, 알뜰하게 모아 안은 기쁨의 조각도 읽었노라고.
시를 읽는 마음이 그렇다. 손이 닿을 수 있다면 그의 등을 한번 다독거리고 싶었다. 시인의 말이 그렇다. 시야에서 벗어난 뒤에도 또 하나 등의 언어로 새겨진다. 한동안 등의 기억을 들여다보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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