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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지게(권상진) 본문
지게
권상진
짐이 되기 싫어서
혼자 산다는 노인의 등, 그 불거진 뼈마디는
지게의 발을 닮았다
이사 간 집 마당에 버려진
쓸모 잃은 물건처럼
덩그러니 세상에 남겨진 낡은 지게
얼마나 많은 고단과 희망을 져 날랐을까
닳고 패인 자리에
매몰찬 시간이 넘나든 흔적 숭숭하다
깜박 잊고 간 물건인 양
여기 쓸쓸한 마당을 다시 돌아와
저 지게를 지고 일어설 누군가는 여태 오지 않는다
이럴 줄 모르고 칠십을 살았다는
늙은 지게의 희미한 독백이
눈으로도 들리는데
없다, 빈 마당 가득한 적막에는 귀가 있을 리 없다
간혹 집배원이 빈손으로 문을 열어
쓰러진 지게를 고쳐 세우고
지겟작대기처럼 잠시 기대어 주었다가
떠난 자리에는
끝나지 않은 대화가 아직도
혼자 중얼대고 앉아 있다
- 시집 『눈물 이후』, 시산맥사, 2018
운반을 중단한 지게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짐을 싣던 지게가 짐이 되기까지 어떤 기막힌 사연을 안고 살았을까. 그의 짐들은 이제 형체를 잃어 “불거진 뼈마디”와 “닳고 패인 자리”로 이전 모양을 짐작하게 한다. 뼈에 걸치고 발채에 담았던 시간을 전하고 싶으나 희미하게 입술만 오물거릴 뿐이다.
운반을 중단한 지게는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짐을 풀어놓을 기운이 없다. 어쩌다 기울어진 작대기를 받쳐주는 이가 있지만, 이내 “늙은 지게의 희미한 독백”으로 돌아간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말, “혼자 중얼대고 앉아 있”는 말이 대화가 되려면 누군가 말을 걸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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