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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눈물 이후』(2018, 시산맥)

엑스레이를 읽다

가짜시인! 2018. 8. 6. 13:15

엑스레이를 읽다

 

 

 

한 번도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던 저녁 식탁처럼

좁은 책상 앞에 가족들이 다시 모였다

오늘은 빈 의자 대신, 형광등 아래에 흑백사진 한 장

독법을 익힌 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어둠의 지형을 읽는다

  

종일 저 어둠 속 협곡과 검은 사막을 걷고

흑과 백의 위험한 경계를  넘나들던 행로 한편에

어슴푸레 도사린 아픔이

그가 짓던 웃음처럼 번져가고 있다

 

가만히 그의 얼굴 아래에 어둠의 지형을 대어 본다

저 깊은 상처를 피해 길어 올린

환한 얼굴이 다시 어둠 속으로 역류하고 나면

썰물 자리처럼 웃음이 쓸려가 버린 얼굴만 덩그렇다

 

가슴 한곳에 하나의 얼굴을 감추고 산 사람

그에게 통증이라는 것은 굳어가는 병변이 아니라

겨운 하루가 짓게 한 표정 때문이었음을

흑백의 엑스레이 사진 한 장이

흐릿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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