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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그림 / 박무웅

가짜시인! 2013. 5. 31. 13:48

숨은 그림

 

                       박무웅

 

 

사무실엔 한 폭의 황산이 걸려 있다

얼마 전 여행에서 사온 먹빛 산이다

세관에선 액자만 살피고 산봉우리 몇 개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기암절벽과 수천 그루의 소나무와

바람은 무사통과 되었다.

전설의 장사(壯士)처럼

바위 많은 산 하나를 통째로 들고 왔다.

그날부터 즐거운 숨박꼭질이 시작되었다

아침마다 오르던 산 대신 그림 속 일만 계단을 오른다.

반갑지 않은 사람이라도 찾아오면

슬쩍 그림 속 소나무 뒤로 숨곤 한다.

그럴 때마다 보였다.

숲속에는 돌을 지고 오르던 옛 석공과

구름이 쉴 새 없이 피어나오는 신비한 바위와

세상의 모든 새를 품고 있다 날려 보내는

포란의 고목하나를 보았다.

삭발한 자의 속죄가 숨어있고

몇 천 년을 소리 내지 않고 엎드려 있는

짐승 한 마리를 보았다.

그러다 그림 밖을 나오면

쉼 없이 절벽을 깍는 소리가 시계 속으로 들어가고

날개가 부러진 빈 바람 소리가 선풍기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때 알았다

큰 산 하나를 뒤질 수는 있어도

작은 그림 속은 쉽게 뒤질 수 없다는 것을

한참동안 그림 속을 살피다 가는 사람들,

저마다 황산 숲속에 무언가를 숨겨놓고 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