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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나의 편린들/버린 詩(발표) (30)
하루하루
기도(모던포엠 발표시 제목은 '반어법'임) 당신이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 이 기도가 끝나면 너울처럼 내 영토의 바깥보다 더 멀리 밀려가 소멸해 버렸으면 좋겠다 사람이 사람을 놓는다는 건 한 세상을 지우는 일 당신 아닌 곳에 버려진 나를 살다가 기억에 희미하게 묻어있는 당신 흔적을 만난다면 나는 잠시 멈칫거리겠지만 이내 한바탕 저주를 퍼붓고 말 테지 행여 슬픔은 모두 내가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는 그딴 추억 따위는 돋지 않기를 당신, 부디 나 아닌 곳에서 가장 처절한 표정으로 멸망해 버리기를 매몰차게 버려지던 나를 지켜본 신도 함께 멸망해 버리기를 월간 모던포엠 2023년 9월호
저쪽 권상진 기다려도 다음 숨이 오지 않는 일을 엄마는 저쪽이라 했다 다 놓고 마지막 숨만 간신히 거두어 떠나는 아비의 뒷모습이 거기 있었다 우리는 모조리 남겨져 있었고 이삿날 두고 간 세간처럼 이쪽은 사소해졌다 이름이 있었지만 어미는 우리를 산 사람이라 불렀고 사소한 우리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어떤 궁리들을 시작했다 계간 『시산맥』 2023년 가을호
부고 내 한 문장이면 저 꽃은 죽어 몇 며칠 망설이던 시인의 손끝에서 결국 환한 심장이 멎네 가장 황홀했던 꽃의 순간을 옮겨 적고 있나 마당 가 수국 있던 자리에 소리 없이 시 한 줄이 지네 계간 『인간과 문학』 2024년 봄호
슬픈음자리표 권 상 진 몇 겹 접힌 줄이 오선지 같다 꼬리부터 따라가던 눈길이 멈춘 곳은 무료급식소 입구 동그랗게 몸을 말고 첫 배식을 기다리는 노인의 굽은 등이 어느 어두운 시대의 악보에 걸린 음자리표 같다 넘겨진 악보처럼 문득 흘러가버린 그가 오래 묵혔던 생각을 보표의 첫머리로 보내 슬픈음자리표를 그려 넣는다 미처 음표가 되지 못한 삶의 생채기들은 이제 몇 마디 남지 않은 이 악곡에 모두 부려 놓고 가야 한다 슬픔이 줄을 당길 때마다 오선지에 맺혀 있는 검은 눈물들이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춤춘다 배식이 시작되자 슬픔은 멀찍이 돌아앉아 주었지만 정 붙일 곳이라곤 어디에도 없었던지 식판을 들고 두리번거리며 슬픔의 행방을 찾는 노인 밥을 허물어 허기를 메울 때 식판에 숟가락 부딪는 소리에도 제법 슬픈 음이 ..
운 좋으면 두어 시간 시인입니까 공돌이입니다 여섯 시간 자고 한 시간 먹고 열 시간 일을 합니다 시인입니까 가장입니다 맞벌이에 아이가 둘입니다 밤이 되어서야 첫인사를 나누는 우리는 TV를 켜놓은 채 잠시 서로를 묻고 또 답을 합니다 시인입니까 반대쪽입니다 시와 나의 한가운데에 밥이 있습니다 매일 길을 나서지만 시는 너무 멀어서 밥까지만 다녀오는 날이 태반입니다 밥을 지나 더 깊은 허기 쪽으로 나서는 날이 있습니다 뛰어야만 겨우 닿을 듯 말 듯 합니다 야근이 있는 날은 종일 공돌이고 운 좋은 날은 두어 시간 시인입니다 『두레문학』 24년 상반기호
헤르메스의 어느 날 권 상 진 개를 웃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너는 최선을 다하는구나 간식과 포옹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웃음을 기다리는 자비로운 눈길은 재림한 예수 같구나 부처 같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너의 애인은 애매한 표정만 지녔으니까 그의 표정에서 개를 불러내는 일보다 개를 웃기는 게 쉬운 일이지 정말 웃겨서 웃을 때도 있고 웃어줘야 할 때도 있는 건데 시큰둥한 애인의 무릎에서 개만 웃고 있을 땐 먼 사람 같다고 했던가 헤르메스*의 어느 날처럼 너는 표정 속에 가라앉은 웃음을 개에게서 건져 올려 몇 번이고 애인에게 내민다 기억조차 어렴풋한 애인의 웃음에 녹이 슬고 이끼가 낄 때쯤 애인은 돌아앉아 자신의 표정들을 이리저리 맞춰보고 있었지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웃어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