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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돌아온 시

계간 사이펀 시집 리뷰_ 노을 쪽에서 온 사람_장인수 시인

가짜시인! 2023. 9. 8. 16:11

|시집 리뷰|

 

골목과 노을과 곡선과 구석의 시인

- 권상진 시집 『노을 쪽에서 온 사람』

- 김대호 시집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장인수(시인)

 

 

 

 

권상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노을 쪽에서 온 사람』은 골목을 노래하고, 노을을 노래하고, 별을 노래한다. 권상진 시인은 골목의 시인이며, 노을의 시인이며, 별의 시인이다. 반면 김대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실천이란 무엇입니까』는 곡선을 노래하고, 자연산 밥 냄새를 그리워하고, 구석을 노래하고, 추풍령 근처 신암을 노래한다. 김대호 시인은 곡선의 시인이며, 구석의 시인이다. 두 시집은 공통점보다는 개별적인 개성이 더 강해서 따로 감상을 해 보도록 한다. 둘 다 두 번째 시집이다.

 

골목을 노래하는 골목의 시인

 

향이 심심해 장미 몇 송이 심었습니다

소고기나 한 근 끊는다는 것이

뒷짐 짐 손 뒤로 안개만 자욱합니다

정육점 옆 새로 생긴 꽃집 탓입니다

골목이, 대문이, 모르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봅니다

평생 져 본 등짐 중에

꽃짐이 제일 민망합니다

미역국이 끓고 있는 싱크대 위에

안개 한 근을 툭 던져 놓습니다

등 뒤에 사람을 두고

주방 벽에다 한소리 날립니다

꽃지랄 떨고 있네

말은 저래도 웃고 있는 겁니다

도마 소리 들어 보면 다 압니다

 

-권상진, 꽃지랄 전문

 

아내 생일인가 보다. 미역국에 들어갈 소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갔나보다. 그런데 정육점 옆에 새로 꽃집이 생겼나보다. 그래서 안개꽃을 샀다. 민망해서 꽃다발을 등 뒤로 감추고 집에 왔다. 안개꽃다발을 든 손을 등 뒤로 감추었으니 등짐을 진 것이 아니라 꽃짐을 진 것이다. 집에 와서 소고기 한 근이랑 안개꽃 한 근을 아내가 미역국을 끓이고 있는 부엌의 싱크대 위에 특 던져 놓았다. 그런데 아내의 말이 가관이다. “꽃지랄 떨고 있네.” 얼마나 생활 속에서 즉흥적으로 우러나오는 질박하고 진솔한 밑바닥 생활 언어인가! 꽃지랄 떤다고 지청구를 떨고 퉁명스럽게 말을 해도 아내는 기분이 좋은지 경쾌하게 도마질을 하고 입꼬리가 올라가 웃고 있다.

권상진 시인의 시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인 것 같다. 웃음이 살포시 나오는 시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한 사랑 표현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권상진 시인은 ‘꽃지랄’처럼 가난을 노래한다. 밑바닥 인생을 노래한다. 가난하고 아프고 서러운 사람들을 보듬고, 같이 아파하고, 같이 슬퍼하는 시를 참 잘 쓴다. 가난한 사람들은 골목에 많이 모여산다. 그는 골목 인생을 노래한다. 그는 골목의 시인이다. 이번 시집에는 골목 시편이 유독 눈에 띄고 좋은 작품이 많다.

그는 첫시집에서도 골목 시편이 여러 편 있는데 ‘가늘고 긴 저, 골목이 수액 줄 같이 꽂혀 있는/여기는 슬픔의 군락지’ (「저, 골목」에서)라고 노래했다. 골목은 슬픔의 군락지인 것이다. 가난한 아버지는 저녁 뒷골목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귀가를 하나보다. ‘병이 비워지면 잔이 채워지고/ 잔이 비워지면 이내 아버지가 꽃보다 붉게 차올랐다/ 아득한 아포리아를 건너 집으로 돌아온/ 허무의 시간들이 빈병과 빈잔을 지나’(「막걸리와 카페모카」에서) 귀가하는 아버지. 아마 권시인이 어릴 적 살았던 곳이 경주의 어느 허름한 뒷골목이었던 것 같다. 외진 골목에는 이모식당이 있다. 「이모」라는 시를 보면 가난하고 외진 골목에는 허름한 식당이 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나 달방에서 혼자 장기간 투숙하는 사람들은 골목의 허름한 식당에 와서 혼밥과 혼술을 먹는다. 그들은 너나없이 식당 아주머니를 ‘이모’라고 부른다. 고시원생인 준이도, 실습 나간 혁이도, 기간제 노동자인 숙이도 모두 이모네 식당에 와서 혼밥을 먹는다. 이모에게 손님들은 모두 조카에 해당한다. 이모, 조카가 되는 식당 주인과 손님. 그렇게 서로 위로하면 살아간다.

 

하루와 바꾼 몇 장의 지폐를 안주머니에 품고

슬몃 빈방을 들여다보는 이 적막한 귀가는

어느 날 부장된 외로움과 함께 발견될

자신에게 가는 조문

듬성하게 잡풀이 자라는 지붕 아래

상석처럼 놓인 양은 밥상

매일 같은 문을 열고 닫지만 그와 죽음이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비켜 지나는 여기, 쪽방에

흩어져 있는 냄비며 라면봉지는

훗날 또 다른 부장품으로 발견될지도 모를 일

쪽창에 형광등 불빛을 내건다

매일 저녁 약속처럼 펼쳐지는 점등 점호는

이 골목만의 오래된 의식

불빛들이 서로 손을 뻗어 골목이 완성되면

듬성듬성 창을 넘는 숟가락 소리

오늘은 큰맘 먹고 더운밥에 생선도 한 마리 올렸지만

따라둔 소주잔만 겨우 비워내고

이내 입맛 없는 귀신처럼 신문지를 덮고

세상을 돌아눕는다

 

-권상진, 골목의 완성 전문

 

 

골목을 지나 적막하게 귀가하는 것을 ‘외로움과 함께 발견될 자신에게 가는 조문’이라고 말한다. 귀가는 즐거운 것 아닌가? 집에 가면 누울 방이 있고, 똥 쌀 화장실이 있고, 밥해 먹을 부엌이 있고, 편안하게 갈아입을 옷이 있고, 내 육신이 키득거리며 웃을 수 있는 텔레비전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니 귀가는 즐거운 일이 아닌가? 집으로 가는 길이 장례식장 가는 길이라니? 밥상은 무덤의 상석이 되고, 라면봉지는 부장품이 되고, 형광등 불빛은 상가의 조등(弔燈)이 되고, 숟가락 소리는 귀신이 제삿밥을 먹는 저녁이 되는 귀가! 골목과 집이라는 장소성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변전하는 곳이다. 다음 날의 일상을 위해 묵는, 아니 살아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인 집이 곧 상가(喪家)가 되는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네 일상은 삶을 살면서 동시에 죽음을 살아가는 곳이다. 죽음 같은 적막과 고독을 살아내야 하는 공간이다. 혼자 사는 독거인인가 보다. 한 사람이 살고 있는 쪽방과 작은 집과 방들이 뭉쳐서 만들어 낸 골목은 삶을 죽음처럼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시인은 쪽창에 형광등 불빛을 켜고 끄는 것을 ‘매일 저녁 약속처럼 펼쳐지는 점등 점호’가 되어 골목을 완성하는 오래된 의식이라고 했다.

 

달이 세놓는 방이 있다

문이 열리면 까무룩한 어둠들만

졸린 눈을 비비며 하차를 하는 경주시외버스터미널

골목 상점들 하나둘 간판을 켤 때마다

별들이 어둠 속에 툭툭 생겨나고

골목은 이내 하늘길을 연다

길 끝에 간신히 매달린 칠성여인숙

입구에 붙어 있는 나무 팻말에는

달빛으로 흘려 쓴 희미한 손글씨

달방 있음

떠돌이별들이 달의 변두리에 터를 잡아

분화구마다 천정을 만들고 창을 낸 방

종일 삶의 외곽만 공전하던 몸을

달빛에 적시고서야 비로소 빛을 끄는 별

당기지도 밀어내지도 못하는 꿈들이

저마다 달빛에 깃들어

상현처럼 부풀고 하현처럼 삭는다

막차 시동 소리가 하루의 끝을 알리면

누군가는 돌아와 더운 물에 몸을 씻고

누군가는 아직 달의 뒷면을 걷고 있는지

빈방은 어둠을 끌어 덮고 그믐을 앓는다

두툼한 숙박계 몇 장을 넘기다 보면

달과 별이 써 내려간 일곱 개의 에피소드가

가난한 성자들의 이야기처럼

한 달에 한 장씩 줄거리를 늘여 간다

 

-권상진, 달방 전문

 

달방은 후미진 골목의 여관이나 여인숙, 모텔에 한 달 이상 장기투숙하는 방을 일컫는 말이다.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나 타지에서 올라온 사람이 장기간 머무는 값싼 방을 일컫는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경주시외버스터미널 근처 골목 끝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허름한 칠성여인숙에 장기간 투숙하는 노동자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그곳엔 창문으로 달빛이 잘 드나보다. 그래서 ‘달이 세놓는 방’이라고 했다. 까무룩한 어둠이 더 많이 도사린 방이지만 어두울수록 달빛, 별빛은 더 잘 보이는 법이다. 막차에서 내린 투숙객이 달방에 들어와 몸을 누이는 것을 ‘달의 뒷면을 걸어와서 빈방의 어둠을 끌어 덮고 그믐을 앓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달방 투숙객을 가난한 성자라고 불러주고 있다. 따스한 연민의식이 깔린 작품이다.

 

 

노을과 별을 노래하는 노을의 시인

 

권시인은 4번 국도를 거의 매일 달리나 보다. 그는 경주 사람이다. 짝수번 국도는 동서로 나 있다. 4번 국도는 경주-영천-경산-대구-김천-영동-옥천-대전-논산-부여-서천-군산으로 뻗어있다. 저녁 귀가 시간에는 4번 국도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달리나 보다. 그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되어 ‘누구나 슬픔에 잠기면 해 지는 모습을 좋아하게’ 되는 거라는 어린왕자의 말을 읊조린다. 그는 경주의 노을을 좋아한다. 노을이 권시인의 귀에 걸어놓고 간 ‘뉘엿한 말’을 좋아한다. ‘먼 말’, ‘오래 귀를 물들이던 해질녘 같은’(「뉘엿한 말」에서) 슬픔의 말을 좋아한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질녘을 좋아한다. 노을은 밤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것은 우주로 열리는 길이기도 하다. 더 넓은 시공간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곳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공간이다. 죽음을 삶처럼 살아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다. 진료 소견서를 받아 들고 4번 국도를 타고 집으로 간다. ‘4번 국도는 어느 행성으로 가는 긴 활주로 같았다’(「배웅」에서) 길의 앞편이 되었다가 금세 길의 뒤편이 되는 이정표들이 있다. ‘4번 국도는 사이드미러에 저녁이 배웅처럼 따라붙는다’ 그곳에 엄마가 코스모스 화단에 걸터앉아 있다. 붉은 서쪽을 바라보는 엄마는 ‘노을 쪽에서 온 사람처럼, 노을 쪽으로 가는 이처럼’ 서 있다. 엄마는 ‘하늘 하나를 통째로 품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 엄마를 생각하는 나에게 엄마는 ‘내 눈동자 속으로 뚝뚝 떨어지던 별’이고, ‘입술로 미끄러져 내린 당신 별은 밤새도록 짜다.’ 노을처럼 붉은 엄마의 쓸쓸하고 서글픈 실루엣을 바라보면 자식은 눈물을 흘렸나 보다. 눈물 속에서 별이 뜨나 보다.

 

별을 향해 걷다 보면 걸어서는 끝내 별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발맘발맘 걸어서 다다른 종점 근처에 아직도 저만큼 떠 있는 별

 

보폭이 같은 사람들과 웃고 울다가 누가 걸음을 멈추면 그이를 땅에 심게 되는데 거기가 바로 별의 입구

 

일생 딱 한 번 축복처럼 열리는 작은 문

 

함께 걷던 이들이 눈망울에 비친 기억들을 문 앞에 떨궈놓고 이내 총총 흩어진다

 

그런 밤은 먼 하늘에서 배를 한 척 보내와 무덤과 별들 사이에 환하게 정박해 있다가

 

그믐이 되면 그 달 무덤까지 내려와 멈춘 걸음들을 서쪽 하늘로 데려간다

 

그리운 눈을 하고 가만히 보면 은하수까지 가득 찍힌 발자국들

 

-권상진, 별의 입구 전문

 

이승의 낮과 밤을 살다가 때가 되면 누구나 죽음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죽음에 이르는 질병을 안고 이승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더 이상 보폭을 움직이지 못하고 마지막 이승의 걸음을 멈추면 곧 죽게 된다. 그리하여 땅에 묻히게 된다. 땅을 팔 때 거기가 바로 별의 입구라고 한다. 죽어서 땅에 묻힐 때 딱 한 번 열리는 작은 문이다. 별의 운행! 그것은 죽어서 서쪽 하늘로 가버린 망자의 혼이다.

 

외래병동 종양내과에는 한 달에 한 번 별 부스러기를 처방해주는 의사가 있다

 

환한 별 조각들만 골라 오래 품었다가 온기가 돌면 정문 앞 약국에 맡겨 두는 이

 

어둑한 CT 사진 속에서 환하게 번져가는 성운

우주가 점점 어두워져 가네요, 함께 밤하늘을 들여다보던 내게 말한다

 

약사는 하루 세 번 식후 30분에 굵은 동그라미를 치고 그 위에 별 하나를 그려 넣었다

 

색깔 고운 별들이 소복하게 모여 있는 봉지를 머리맡에 두면 한 달 내내 별이 돋는 방

 

끼니때가 되면 밥 한술을 뜬다 입 안으로 별을 털어 넣는다

물 한 모금에 먼 우주로 흘러가는 별들

 

하늘에는 밤마다 백색왜성이 뜬다

어제보다 어둡고 멀어지는

 

-권상진, 백색왜성 전문

 

병원에서 CT 사진을 찍었는데 그 안에 하얀 종양이 보이고, 하얀 종양이 점점 온몸으로 번 져가는 모습이 잡혔나보다. 그것을 시인은 백색왜성과 성운으로 표현하고 있다. 별은 적색왜성에서 백색왜성으로 간다. 최후에는 흑색왜성이 된다. 백색왜성은 자신의 연료를 거의 소진한 별이다. 성간물로 복사되는 하얀 빛깔의 에너지는 중심핵에 축적되어 남아 있는 열에너지에 의해 공급된다. 이 에너지는 절연된 별의 표피를 통해 서서히 빠져나가게 되어 백색왜성은 점점 차가워진다. 그 뒤에는 복사를 내지 않고 항성진화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게 되어, 차갑고 활동을 멈춘 별의 잔해가 된다. 암세포가 점점 번져서 말이 암환자가 되고, 결국 이승의 삶을 마감하게 되는 과정을 백색왜성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약사가 약봉지에 굵은 동그라미를 치며 식후에 복용하라고 일러주는 모습에서도 약봉지에 동그란 별 하나가 생겼다고 표현한다. 끼니때가 되어 밥 한술 뜨고 약봉지를 열어 얄약을 복용하는 것을 별을 복용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생노병사를 별의 일생과 우주의 빛과 어둠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권시인의 시집에서 노을과 저녁과 별은 삶과 죽음이 순환하는 시공간이다. 하찮은 미물인 인간의 생노병사를 대자연과 우주의 섭리와 순환으로 치환시켜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