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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쪽에서 온 사람 서평_지관순 시인 본문
https://blog.naver.com/kscaro69/223087239007
가족주의 혹은 가족 주의일 때, 노을이라는 포토존에서 우리 찰칵!
여기 동경할만 한 것들을 찾기보다는 비어 있는 것, 조금 무너져 있는 것, 거꾸로 박힌 것, 곤고한 것들을 살살 달래고자 하는 시인이 있다. 삶이란 그래, 그렇지만 이렇게 얘기할 수 있으니 완전 재미 없는 것도 아니잖아. 기분을 덜어주는 시가 있다. <노을 쪽에서 온 사람> 이 시집에서는 가난과 이별과 몇 방울의 고독이 넓게 확장되었다가 슬몃 미소로 변했다가 기묘하게 환함으로 옮아간다.
안개 한 무더기를 움켰다가
향이 심심해 장미 몇 송이 심었습니다
소고기나 한 근 끊는다는 것이
뒷짐 짐 손 뒤로 안개만 자욱합니다
장육점 옆 새로 생긴 꽃집 탓입니다
골목이, 대문이, 모르는 사람들이
나만 쳐다봅니다
평생 져 본 등짐 중에
꽃짐이 제일 민망합니다
미역국이 끓고 있는 싱크대 위에
안개 한 근을 툭 던져 놓습니다
등 뒤에 사람을 두고
주방 벽에다 한소리 날립니다
꽃지랄 떨고 있네
말은 저래도 웃고 있는 겁니다
도마 소리 들어 보면 다 압니다
- <꽃지랄> 전문
잘 산다는 건 문제없이 사는 걸 말하는 게 아닐 테다. 수시로 닥치는 문제를 잘 넘어간다는 뜻일 게다. 때로는 꽃의 도움을 얻어 칼질로 가득한 삶에 향기를 뿌려가면서.
여전히 꽃짐이 민망한 족속들이 있고 기쁨을 지랄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도마질 사이로 리듬이 삐져나오는 순간의 환희를 공감한다. 꽃이 효과가 있는 집은 얼마나 희망적이게 귀여운가.
진료 소견서를 받아 들고 가는
4번 국도는 어느 행성으로 가는 긴 활주로 같았다
(…)
길가 쉼터에 차를 세우자
코스모스 화단에 걸터앉던 엄마
온통 붉은 서쪽을 바라본다
노을 쪽에서 온 사람처럼
노을 쪽으로 가는 이처럼
노을처럼
(…)
하늘 하나를 통째로 품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
- <배웅> 부분
엄마는 아들의 얼굴을 지그시 들여다보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병색 짙은 눈길이 불편할까봐 선택한 곳이 노을 이었을지도 모른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마음 놓고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 "왜 그렇게 빤히 봐, 부담되게" "기분 나빠, 그렇게 쳐다보지 마"
사랑이란 이런 말들을 다 지우고 오래오래 볼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반대로 사랑은
눈을 마주침으로 근심을 끼치기보다는 외면을 택하기도 한다는 뜻일 것이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서 노을을 배웠듯이 훗날 우리도 노을을 전수받게 될 것이다.
멀리서 보이던 노을,이 점점 앞으로 앞으로 다가와
밀려 밀려서 포토존에 서게 되듯이
좀 웃어, 라고 외치는 사람들을 향해 노을처럼 웃어주게 될 것이다.
삶을 그냥 읽어낼 수가 없어서 시인은 시인이라는 본분을 생각하여 장면마다 판타지를 입혔다.
CT사진 속 종양을 백색왜성으로 읽어내고
야근한 자신을 기다리다 소파에서 잠든 아내와 식탁 위에 보름달을 띄우고
어쩔 수 없이 버티다 드러났던 맨살이나 속옷 같은 삶의 수치를 디스코 팡팡에 태우고,
너무 길거나 폭이 넓은 슬픔일지라도 죽죽 찢기는 겉절이로 국수 같은 삶 옆에 곁들여지기를 바라는….
가난한 날,
식구들이 한 방에서 잠을 자기 위해 이리저리 순서를 바꾸는 비좁은 계절을
테트리스로 보는 시인의 기발한 눈을 따라가 본다.
그냥, 이라고 말하는 순간 자동문처럼 스르륵 닫히는 견고한 그냥의 앞과 뒤에 서 있는 겹눈의 시인을 본다.
밖이 안을 부릅니다 식구라서 그렇습니다
안은 말없이 와서 밥의 뒤에 앉습니다
밥그릇에 수북하게 쌓인 못다 한 말을
숟가락으로 푹푹 떠서 그냥 삼켜냅니다
젓가락들의 서로의 영토를 넘나들면서
흩어진 말들을 하나씩 도로 집어옵니다
밖이 밥상에 따뜻한 말이라도 흘릴라치면
안은 슬쩍 집어서 자기 밥 위에 얹습니다
가족이라서 그렇습니다
- <가족이라서 그렇습니다> 부분
가족이라는 비애에는 우연한 맑음이 있다.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었던 간에 고결한 그 무언가를 누르고 우뚝 솟아오르되 늘 실패하는 사랑 말이다.
발생의 기이함과 전개의 기쁨과 때때로 소멸하는 통증으로써.
배신으로 증오로 그리움으로 진취적이게 나아간다.
그 과정의 지겨움과 힘겨움에 사랑을 멀리 던져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만이 우리를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것에 낡은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그것 외에는 대안이 없음을 알게 된다. 관계의 고통보다는 고독의 자유를 외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고독의 자유보다는 관계의 고통을 갈망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는 이 소중하고 보드라운 것 주위에 무엇이 있나 한번 둘러본다.
늦은 빨래 종료음에 베란다에 나가보니 초여드레 달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달처럼 넘어가는 사람들, 노을이다가 지금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러다가
잠깐씩 빛나 눈을 비비게 만드는 사람들....
반짝이는 것, 높이 떠서 윤기나는 것, 넉넉해서 아쉽지 않은 것,
그런 것들 대신에
비어 있는 것, 조금 무너져 있는 것, 거꾸로 박힌 것, 곤고한 것들....을 바라봐 주어서
시집을 읽는 내내 감사함을 느꼈다. 시인의 책무란 미리 깨닫고 계속 깨달으며 자꾸 돌이켜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주의에서 가족을 주의헤야하는 많은 아픈 가족들까지, 지금은 만져볼 수 없도 주의할 수도 없는 가족들까지, 그래도 우리 함께 노을이라는 포토존에서 환하게 찰칵!
어떻게 현상되든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는 거니까.
살아볼 궁리가 온몸에 박혀오듯 하늘도 못대가리로 촘촘하게 빛나는 오늘이니까!
[출처] 노을 쪽에서 온 사람 / 권상진|작성자 kscaro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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