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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계간 『시와 경계 』오늘의 주목할 시인 본문
계간 『시와 경계 』 제45호(2020년 여름호)
오늘의 주목할 시인
|
신작시/
나무 의자 외 3편
권상진
관절에 못이 박힐수록 의자는
점점 바른 자세가 된다
생각이 무거우면
부처도 자세를 고쳐 앉는데
의자라고
다리 한번 꼬고 싶은 순간이 없었겠는가
못은 헐거워진 생각을 관통하고
너머의 삶을 다시 붙잡는다
돌아눕고 싶은 밤이 있었고
돌아서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나이가 온몸에 박혀올 때마다
나는 자세를 고치며 다시 살아볼 궁리를 한다
하늘도 긴 날을 삐걱거렸는지
밤이면 못대가리들로 촘촘하게 빛난다
젖무덤
여자를 벗고, 집 앞 골목을 나오는 사람
얇고 하얀 모시런닝 속
중력 쪽으로 기운 가슴에서
탄화된 시간이 설핏 비친다
나는 남자를 버리고
한참 동안 저 밋밋한 것을 바라본다
누가 이름 지었을까, 젖무덤이라는 말
그 속에 눈물이 한가득이다
가슴에 헛묘를 만들고
남몰래 욱여넣던 설움들이 부품하다
연고도 없는 저 무덤 앞에서 나는 경건해지고
저 여인 앞에서 숙연해진다
그런 나이가 온 것일까
등 뒤에서 팽팽하던 여자를 풀어 버려도
하나 남사스러울 것 없는
그런 나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일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양을 바꾸는 가슴이
건반을 벗어난 음표들처럼 자유롭다
졸혼
이별은 어느 역에서 갈아타야 합니까
일행처럼 함께한 우리,
목적지가 다른 티켓을 지녔나 봐요
매일 보는 풍경은 지루한 벽지 같아요
짧게 서로를 바라보고 오래 창밖을 응시 합니다
사실은 고정된 창이 지겨웠던 거죠
입체감을 잃은 사랑이 틀 속에 갇힙니다
열정의 곡선은 기억에서 휘어지고
직선의 선로 위의 우린, 쏠림이 없습니다
이번 역에서 내리기로 합니다
웃는 이별이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좌표의 형식으로만 남겠지요
환승역
- 요양병원에서
다 왔어 엄마 여기야,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자. 표는 내가 끊을게. 돈 있어. 엄마가 무슨 돈이 있다고. 오빠와 동생이 조금씩 보탰어. 잠시 쉬어가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어. 저 봐, 커튼만 젖히면 침대에서도 환승역이 보이잖아. 좀 쉬었다 저기서 갈아타자. 쓰던 짐은 죄다 놔두고 왔어. 잠시 쉬었다 갈 건데 번거롭잖아, 나중에 따로 보내줄게. 여긴 처음 와보는데 사람들이 많네. 새로운 친구들도 사귈 수 있을 거야. 늘 혼자 살았잖아. 이젠 외롭지 마 엄마. 안 울어, 누가 운다고 그래. 나 가고나면 저 가운 입은 사람들이 도와줄 거야. 내일은 오빠가 오기로 했어, 모레는 막내가 올 거고. 알잖아 다 맞벌이라는 거. 아냐 엄마, 난 좀 더 있다 가도 돼. 그 사람 혼자 밥 잘 챙겨 먹어. 이쁘네 울엄마. 흙 묻은 몸빼 보다 훨 났네, 이부자리도 깨끗하고. 집이 좋긴 뭐가 좋아, 거긴 떠나간 것들뿐이잖아. 밥 먹어 어서. 계속 그렇게 앉아만 있을 거야? 아직 시간이 제법 남았어. 미안해 엄마. 그럼 우리집으로 갈래? 사실은 그이가 그러라고 했는데 내가 면목이 없어서. 안 되겠다. 가자 엄마, 우리 집에.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등단시/
영하의 날들
이 골목은 열대의 모세혈관
쪽문 깊숙한 곳까지 폭염을 나르던 적도의 시간이
출구를 헤매는 골방에서
노인은 지팡이와 함께 싸늘하게 발견되었다
직립의 시간은 끝난 지 이미 오래인 듯
폭염을 등에 진 채 골방에 ㄱ자로 누운
저 경건한 자세가 되기까지 열대의 밤은
블랙홀처럼 폭염을 빨아들였을 것이다
극한의 외로움은 영하의 온도를 지녔다
버려진 시선들만 싸락눈처럼 쌓이는 골목 어귀는
외로움 온도가 연일 기록적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홑청 같은 그의 피부에 살얼음이 얼던 날
맹렬하게 그의 체온을 데우던 열대의 밤은 결국
조등인 양 달을 대문 밖에 내걸었다
열대의 대륙에서 견뎌야 했던 영하의 날들이 저문다
강변 공원에 삼삼오오 몰려든 사람들
시린 영혼들을 위해 기꺼이 폭염을 견디던 그들은
부의처럼 더운 심장을 강바닥에 내려놓고
자정이 지나도록 돌아갈 줄 모른다
빙하기 지층처럼 견고하던 얼굴에서
겹겹의 표정들이 차례로 녹아내린다
사람의 끝에서도 꽃이 피다니
오래전 퇴적된 노인의 미소가 환하게 한 번 피었다 진다
생의 아슬한 등고선에 기대 사는 지표 인간들
빈방이 하나씩 늘어나면서부터
여기까지가 사람의 경계라는 듯
골목은 폭염을 다시 들이고
인적 없던 골방마다 간간이 낯선 인기척들
걱정스레 쪽문을 밀치고 있다
대표시/
왼손잡이
지구의 자전축이 반대로 기울어져 있었다면
많은 사람과 왼손으로 악수할 수 있었겠지
나는 모든 손잡이에서 멀고
모든 악수로부터 불편하다
양쪽의 어깨와 양쪽의 다리 양쪽의 눈과 귀와 복숭아뼈
왼쪽의 심장과 오른손잡이들
나는 생이 한쪽으로 쏠려버린 외따로운 기형인 양
모든 식탁에서, 모든 노트에서 불편하다
편견은 언제나 외눈박이여서
왼날개잡이 새와 왼발잡이 사자 왼지느러미 잡이의 금붕어를 놓치고
나를 따라 다닌다
세상은 언제나 내가 불안하고
많은 왼쪽에 대해 불편하다
바른손이라는 말이 생겨난 후로
퇴화를 거듭하는 왼손잡이들
숟가락을 옮겨 쥐고 생각해 보아도
바르다는 말, 참 알아듣기 힘든
권상진 경북 경주 출생. 2013년 전태일문학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복숭아문학상 외 수상. 시집『눈물 이후』.
비평/
삶과 죽음 사이의 간이역에 머물다
박경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정말 없는 것일까?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자녀와의 갈등, 노인 빈곤과 독거 생활로 인한 우울증 그리고 죽음이 우리 삶 곳곳에 뿌리 내렸다.
권상진 시인의 시는 늙음을 통해 고독한 삶을 그림처럼 보여줬다. 시인이 바라본 늙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시대 노인들은 밖으로 밀려나 있다. 나이가 들면 가야 할 곳을 잃은 것처럼 눈동자는 흔들리고 쓸쓸해진다. 우리도 결국에는 같은 길을 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방관이 능사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 골목은 열대의 모세혈관
쪽문 깊숙한 곳까지 폭염을 나르던 적도의 시간이
출구를 헤매는 골방에서
노인은 지팡이와 함께 싸늘하게 발견되었다
직립의 시간은 끝난 지 이미 오래인 듯
폭염을 등에 진 채 골방에 ㄱ자로 누운
저 경건한 자세가 되기까지 열대의 밤은
블랙홀처럼 폭염을 빨아들였을 것이다
극한의 외로움은 영하의 온도를 지녔다
버려진 시선들만 싸락눈처럼 쌓이는 골목 어귀는
외로움 온도가 연일 기록적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홑청 같은 그의 피부에 살얼음이 얼던 날
맹렬하게 그의 체온을 데우던 열대의 밤은 결국
조등인 양 달을 대문 밖에 내걸었다
열대의 대륙에서 견뎌야 했던 영하의 날들이 저문다
강변 공원에 삼삼오오 몰려든 사람들
시린 영혼들을 위해 기꺼이 폭염을 견디던 그들은
부의처럼 더운 심장을 강바닥에 내려놓고
자정이 지나도록 돌아갈 줄 모른다
빙하기 지층처럼 견고하던 얼굴에서
겹겹의 표정들이 차례로 녹아내린다
사람의 끝에서도 꽃이 피다니
오래전 퇴적된 노인의 미소가 환하게 한 번 피었다 진다
생의 아슬한 등고선에 기대 사는 지표 인간들
빈방이 하나씩 늘어나면서부터
여기까지가 사람의 경계라는 듯
골목은 폭염을 다시 들이고
인적 없던 골방마다 간간이 낯선 인기척들
걱정스레 쪽문을 밀치고 있다
- 「영하의 날들」전문
극한의 외롭고 고단한 「영하의 날들」이다. 뜨거움과 차가움이 교차한다. 뜨거운 삶 속에서 차가움은 죽음으로 다가온다. 뜨거운 배경에서 삶은 늘 차가웠고 서러웠다. 「영혼의 날들」은 사각지대에서 길을 잃은 노인들의 어둡고 쓸쓸한 미래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이 사회가 노인을 구석으로 몰고 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한여름의 “쪽방”에서 “지팡이”와 함께 싸늘하게 발견된 노인의 모습에서 외로움도 고독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노인을 쪽방으로 내몰 수밖에 없었던 이 사회의 비극이 고스란히 권상진 시인의 시에 드러난다. “극한 외로움은 영하의 온도를 지녀”기에 더욱 지치고 아프다. “홑청”처럼 펄럭이는 우리네 삶이 “살얼음”처럼 깨지기 쉬운 삶이, 한때는 “맹렬”하였으나, 결국에는 “조등인 양 달을 대문 밖에” 걸어놓는다.
자연스러운 죽음이라기보다 자살이다. 더 몰릴 곳이 없는 노인들은 곡기를 끊으면서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동굴 속에서 누군가의 남편 또는 아내, 아들, 딸, 아버지, 어머니였을 노인들은 외롭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저승길을 밟는다.
우리의 미래도 결국에는 조등으로 걸리고 말 것을, 아무리 밀어내려고 해도 가는 끝은 똑같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다 왔어 엄마 여기야,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자. 표는 내가 끊을게. 돈 있어. 엄마가 무슨 돈이 있다고. 오빠와 동생이 조금씩 보탰어. 잠시 쉬어가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어. 저 봐, 커튼만 젖히면 침대에서도 환승역이 보이잖아. 좀 쉬었다 저기서 갈아타자. 쓰던 짐은 죄다 놔두고 왔어. 잠시 쉬었다 갈 건데 번거롭잖아, 나중에 따로 보내줄게. 여긴 처음 와보는데 사람들이 많네. 새로운 친구들도 사귈 수 있을 거야. 늘 혼자 살았잖아. 이젠 외롭지 마 엄마. 안 울어, 누가 운다고 그래. 나 가고나면 저 가운 입은 사람들이 도와줄 거야. 내일은 오빠가 오기로 했어, 모레는 막내가 올 거고. 알잖아 다 맞벌이라는 거. 아냐 엄마, 난 좀 더 있다 가도 돼. 그 사람 혼자 밥 잘 챙겨 먹어. 이쁘네 울엄마. 흙 묻은 몸빼 보다 훨 났네, 이부자리도 깨끗하고. 집이 좋긴 뭐가 좋아, 거긴 떠나간 것들뿐이잖아. 밥 먹어 어서. 계속 그렇게 앉아만 있을 거야? 아직 시간이 제법 남았어. 미안해 엄마. 그럼 우리집으로 갈래? 사실은 그이가 그러라고 했는데 내가 면목이 없어서. 안 되겠다. 가자 엄마, 우리 집에.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환승역 - 요양병원에서」 전문
딸은 삶(출발)과 죽음(종착) 사이의 간이역으로 요양병원에 엄마를 모시고 갔다. 이 시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딸의 슬프고도 안타까운 마음이다. 내게 뼈와 살을 내어 준 엄마를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오죽하면 종착역 직전 환승역에 내려 잠시만 머무르자 했을까. 빡빡한 사람살이가 어쩔 수 없이 그리 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어 읽는 내내 불편하고 깜깜했다. 어쩌면 나도 우리도 환승역에 머무를 수 있다는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더욱 이 시간이 쓸쓸한지 모르겠다.
과거가 없는 요양병원의 깨끗함과 친구들과의 사귐을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엄마는 온통 낯설고 불편하다. 시골에 살았음을 보여주는 “흙 묻은 몸빼”와 살던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딸의 독백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음을 (떠나간 것) 딸은 툭, 뱉어놓는다. 엄마의 시선보다 딸의 시선에서, 딸의 마음만 부각되어 있다는 것이 조금 불편하다. 한편으로는 엄마의 마음이 조금 더 드러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딸은 엄마를 안심시키고 위로하고 있지만, 돌아보면 혼잣말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이처럼 안타깝고 슬픈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딸은 결국 엄마를 혼자 병원에 두지 못하고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간다. 그러나 일단 환승역인 요양병원에 잠시 들렸다는 것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곳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서 서글퍼진다.
관절에 못이 박힐수록 의자는
점점 바른 자세가 된다
생각이 무거우면
부처도 자세를 고쳐 앉는데
의자라고
다리 한번 꼬고 싶은 순간이 없었겠는가
못은 헐거워진 생각을 관통하고
너머의 삶을 다시 붙잡는다
돌아눕고 싶은 밤이 있었고
돌아서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나이가 온몸에 박혀올 때마다
나는 자세를 고치며 다시 살아볼 궁리를 한다
하늘도 긴 날을 삐걱거렸는지
밤이면 못대가리들로 촘촘하게 빛난다
-「나무 의자」 전문
시인은 해가 흐를수록 자신의 몸에 못처럼 나이가 박히는 것을 느낀다. 박힌 못은 빠지지 않는다. 그것이 자연스러움이고 이치이다. “나이가 온몸에 박혀올 때마다/ 나는 자세를 고치며 다시 살아볼 궁리를 한다”는 시인.
세월 이길 장수 없듯이 누구든 나이를 먹고 삶의 자세를 고치며 살아갈 궁리를 한다. 알 수 없는 미래가 어떤 지도를 펼쳐 놓을지 모르니 살 궁리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쫓기듯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기가 쉽지는 않다.
“하늘도 긴 날을 삐걱거렸는지/ 밤이면 못대가리들로 촘촘하게 빛난다” 저 하늘에 박힌 것은 별이다. 하늘에 박힌 못이면서 한없이 받쳐주고 있는 힘이다.
여자를 벗고, 집 앞 골목을 나오는 사람
얇고 하얀 모시런닝 속
중력 쪽으로 기운 가슴에서
탄화된 시간이 설핏 비친다
나는 남자를 버리고
한참 동안 저 밋밋한 것을 바라본다
누가 이름 지었을까, 젖무덤이라는 말
그 속에 눈물이 한가득이다
가슴에 헛묘를 만들고
남몰래 욱여넣던 설움들이 부품하다
연고도 없는 저 무덤 앞에서 나는 경건해지고
저 여인 앞에서 숙연해진다
그런 나이가 온 것일까
등 뒤에서 팽팽하던 여자를 풀어 버려도
하나 남사스러울 것 없는
그런 나이란 게 있기는 한 것일까
-「젖무덤」전문
이별은 어느 역에서 갈아타야 합니까
일행처럼 함께한 우리,
목적지가 다른 티켓을 지녔나 봐요
매일 보는 풍경은 지루한 벽지 같아요
짧게 서로를 바라보고 오래 창밖을 응시 합니다
사실은 고정된 창이 지겨웠던 거죠
입체감을 잃은 사랑이 틀 속에 갇힙니다
열정의 곡선은 기억에서 휘어지고
직선의 선로 위의 우린, 쏠림이 없습니다
이번 역에서 내리기로 합니다
웃는 이별이 있을까요
이제 우리는 좌표의 형식으로만 남겠지요
- 「졸혼」 전문
시「젖무덤」은 여인을 여인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너머를 바라본다. “하얀 모시런닝 속”에 보이는 여인의 젖무덤을 바라보며, ‘눈물’, ’헛묘‘, ’설움‘이 크다고 생각한다. 여자를 여자로 바라보지 않고, 무덤덤해지는 자신을 바라본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변함없이 살 줄 알았던 그 모든 시절은 변했다. 황혼이혼을 통해 자유로워지려는 부부들이 많다. 시「졸혼」은 “일행처럼 함께한 우리,/ 목적지가 다른 티켓을 지녀”기에 이제는 헤어져야 함을 나타내고 있다. “매일 보는 풍경은 지루한 벽지 같아요/ 짧게 서로를 바라보고 오래 창밖을 응시”하는 부부는 각자 다른 곳에 머물러 있다. 한 곳만 바라볼 줄 알았던 그 모든 순간이 빗나가고, 손가락 걸고 약속했던 것들은 모두 무의미해진다. 더군다나 나이 든 부부라면 그 시선은 더욱 애달고 깊어질 것이다.
시 「졸혼」과 「환승역」은 새로운 출발과 동시에 도착을 의미한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를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 「졸혼」은 기차를 통해 목적지가 다른 부부를 나타냈고, 「환승역」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전 간이역으로 요양병원을 나타내고 있다.
지구의 자전축이 반대로 기울어져 있었다면
많은 사람과 왼손으로 악수할 수 있었겠지
나는 모든 손잡이에서 멀고
모든 악수로부터 불편하다
양쪽의 어깨와 양쪽의 다리 양쪽의 눈과 귀와 복숭아뼈
왼쪽의 심장과 오른손잡이들
나는 생이 한쪽으로 쏠려버린 외따로운 기형인 양
모든 식탁에서, 모든 노트에서 불편하다
편견은 언제나 외눈박이여서
왼날개잡이 새와 왼발잡이 사자 왼지느러미 잡이의 금붕어를 놓치고
나를 따라 다닌다
세상은 언제나 내가 불안하고
많은 왼쪽에 대해 불편하다
바른손이라는 말이 생겨난 후로
퇴화를 거듭하는 왼손잡이들
숟가락을 옮겨 쥐고 생각해 보아도
바르다는 말, 참 알아듣기 힘든
- 「왼손잡이」 전문
인도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오른손과 왼손의 쓰임을 완벽하게 가리고 있다. 오른손은 깨끗한 손으로, 왼손은 화장실에서 쓰는 불결함으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왼손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사람들은 왼손잡이를 정상적이 아닌 비정상적이라고,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감옥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왼손잡이는 창의적인 생각을 잘하는 사람 혹은 예술혼이 불타오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 바른 것인지, 무엇이 그른 것인지 모두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더욱 편견을 깨부숴야 할 것이다. 침대를 의자라 부를 수 있고, 의자를 식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부르는 이름도 모두 인간이 지었다. 나도 처음부터 박경희는 아니었다.
권상진 시인의 이번 시들은 대체로 외롭고 스산했다. 「영하의 날들」, 「나무 의자」, 「젖무덤」, 「졸혼」, 「환승역」, 「왼손잡이」 모든 시가 아프면서 삐걱거리고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우리가 지금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모두 늙는다, 는 것이다. 그건 어떠한 것으로도 거스를 수 없다.
박경희 2001년 《시안》등단. 시집 『그늘을 걷어내던 사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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