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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시인! 2020. 4. 27. 13:28

[문단소식] 따뜻한 기울기의 시인, 권상진 시인과의 인터뷰

홍수연기자

| 입력 : 2020/04/24 [15:23] | 조회수 : 196



삐딱하다는 것은 / 홀로 세상에 각을 세우는 일이지만 / 비스듬하다는 말은 / 서로의 기울기를 지탱하는 일 시인의 시「비스듬히」에서

 

시인에게 인터뷰 요청 전화를 했을 때, 시인은 어머님 제사상에 올릴 전을 부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 자상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시인을 아들로 둔 어머님은 저승에서도 분명 행복하실 것이라, 는 먹먹한 생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어머니께서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늦은 밤 호출택시에 몸을 실었다. 화장장에서 그야말로 한 줌 재로 되돌아온 어머니. 나는 무엇을 위하여 그토록 욕심을 부렸으며,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는가!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은 한 줌 재가 되어 붉은 장미문양 유골함에 담겼다. 이제 나도 시인처럼 봄꽃이 앞 다투어 피는 4월 어느 날, 어머니께 올릴 전을 부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이따금 울다, 또 웃으며, 그렇게 또 살아가게 될 것이다.

 

시인은 자신을 가짜시인이라고 소개했다. 무릇 가짜는 자신을 낮추어 가짜라고 말하지 않는다. 진짜 시인만이 진짜의 겸손함과 당당함으로 자신을 가짜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반듯한 시인의 시세계를 산책하며 오랫동안 따뜻하고 행복하였음을 밝혀둔다.

 

《대표시 모음》

 

영하의 날들

 

 

이 골목은 열대의 모세혈관

 

쪽문 깊숙한 곳까지 폭염을 나르던 적도의 시간이

출구를 헤매는 골방에서

노인은 지팡이와 함께 싸늘하게 발견되었다

 

직립의 시간은 끝난 지 이미 오래인 듯

폭염을 등에 진 채 골방에 ㄱ자로 누운

저 경건한 자세가 되기까지 열대의 밤은

블랙홀처럼 폭염을 빨아들였을 것이다

 

극한의 외로움은 영하의 온도를 지녔다

버려진 시선들만 싸락눈처럼 쌓이는 골목 어귀는

외로움 온도가 연일 기록적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홑청 같은 그의 피부에 살얼음이 얼던 날

맹렬하게 그의 체온을 데우던 열대의 밤은 결국

조등인 양 달을 대문 밖에 내걸었다

 

열대의 대륙에서 견뎌야 했던 영하의 날들이 저문다

강변 공원에 삼삼오오 몰려든 사람들

시린 영혼들을 위해 기꺼이 폭염을 견디던 그들은

부의처럼 더운 심장을 강바닥에 내려놓고

자정이 지나도록 돌아갈 줄 모른다

 

빙하기 지층처럼 견고하던 얼굴에서

겹겹의 표정들이 차례로 녹아내린다

사람의 끝에서도 꽃이 피다니

오래전 퇴적된 노인의 미소가 환하게 한 번 피었다 진다

 

생의 아슬한 등고선에 기대 사는 지표 인간들

빈방이 하나씩 늘어나면서부터

여기까지가 사람의 경계라는 듯

골목은 폭염을 다시 들이고

인적 없던 골방마다 간간이 낯선 인기척들

걱정스레 쪽문을 밀치고 있다

 

(2013년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수상작품)

 

 

 

비스듬히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꼿꼿한 자세만으로는 볼 수 없는

세상과 사람의 틈

 

비스듬히 보아야

세상이 살갑게 보일 때가 있다

예의처럼 허리를 숙여야 오를 수 있는 산비탈 집들

첫차에 등을 기댄 새벽의 사람들

 

기대고 싶거나 주저앉고 싶을 때

손 내밀고 어깨 주는 것은

언제나 비스듬한 것들

 

삐딱하다는 것은

홀로 세상에 각을 세우는 일이지만

비스듬하다는 말은

서로의 기울기를 지탱하는 일

 

더러는 술병을 기울이면서

비스듬히 건네는 말이

술잔보다 따듯하게 차오를 때가 있다

 

 

 

눈물 이후

 

 

 

빗물은 세상의 어디가 슬픔에 눌려

낮게 가라앉아 있는지 안다

익숙하게 지상의 공허를 찾아 메우는

한줄기 비

 

마음도 더러 수평을 잃는다

날마다 다른 각도를 가지는 삶의 기울기에

가끔 빗물 아닌 것이 가서 고인다

얼마나 단단히 슬픔을 여몄으면

방울방울 매듭의 흔적을 지녔을까

 

가늠할 수 없던 슬픔의 양

그 자리에 울컥 눈물이 고이고 나서야

참았던 슬픔의 눈금을 읽을 수 있다

허하던 마음에 고여 든 평형수

기울어진 어제의 날들은

눈물 이후에야 비로소 균형을 잡는다

 

 

• 시인님의 시를 읽으며 제가 추구하는 시를 쓰시는 분 같아서 든든하였으며, 시를 읽는 내내 살가운 슬픔으로 따뜻하였습니다. 저는 갖은 미사여구로 가득찬 시보다는 시인님처럼 어려운 말 한 마디 없이 하실 말씀을 바로(?) 말씀하시는 시를 평소부터 애정 해 왔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세상을 향하여 시인 스스로 해야 할 말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할 때, 시가 난해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시인님께서 추구하고 계신 시세계가 궁금합니다.

 

• 난해시는 시 쓰기의 한 기법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독자는 자신이 공감하고 감동을 주는 시를 찾아 읽으면 되는 거지요. 먹기 거북한 음식을 억지로 찾아 먹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어려운 시가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 듯이 보이지만 그것은 시어나 시행, 의미 그리고 소통성에 대한 파괴적 새로움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순히 기존 질서를 파괴함으로써 얻는 희열감이랄까요. 8, 90년대 시에 열광하던 독자들이 등을 돌린 이유가 표현의 새로움에만 몰두한 나머지 소통성을 잃어버린 때문이 아니었나 여겨집니다.

저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시를 그러나 너무 가볍지 않게 쓰려고 노력중입니다.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시나 신변잡기는 일기장에 적는 게 좋겠고, 적어도 독자와 정서적, 감성적으로 밀당을 할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새로움이나 낯설게 하기는 시를 비틀고 해체하기 보다는 익숙한 것들로부터 새로운 진실성을 불러내는 일이라 믿는 편이지요. 생각 속에 있지만 쉽게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 표현해 줄 때 독자들은 공감해 주겠지요.

 

 

 

전태일문학상 수상작품’「영하의 날들」은 특히 아프게 읽힙니다. 고령화 사회로 인하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향후 노인들의 고독사는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시인님의 시가 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져,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 시인은 모래알처럼 흔하고 많지만, 시가 외면당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시가 독자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려면 시인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만 할까요?

 

• 시가 오만해졌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인이 오만해졌다고 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문학 장르 중에서 특히 시만 그런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문학에도 수요와 공급 법칙이 적용 됩니다. 고객(독자)들의 기호를 외면하고 공급자(시인)들이 자기가 만들고 싶은 물건(시)만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으니 시가 소비되겠습니까. 시인들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사업가였다면 아마도 열에 아홉 반은 망했을 겁니다. 그래놓고 독자의 수준을 운운합니다. 물론 시대를 앞서 개척하는 실험적인 시들도 반드시 있어야겠고 그들만의 독자층을 구축하겠지만 진정 다수의 독자들이 원하는 시는 시인들끼리 분석하고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여 의미를 얻는 그런 시 말고, 밑줄 그어가며 분석해서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판단해야하는 그런 시 말고, 읽는 순간 감동과 전율이 밀려오는 진정성 있는 시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현대시는 대중 속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독자와 호흡할 수 있는 시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 그 수준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그들의 호응 속에서 시가 나아갈 새로운 방향을 견인해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난해시를 비하하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가 미분과 적분을 이해할 수 없다고 그것을 수학이 아니라 말할 수 없듯이,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시라 하더라도 그 자체로 문학적 가치와 존재 이유는 분명 있는 것일 겁니다. 다만 시인이나 비평가만이 알 수 있는 시가 시의 지향점이고, 소통가능한 시는 낡았다거나 저급하다는 식의 인식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별자리

 

 

1

고향집 어귀 삐뚜름한 복숭아밭에

붉고 선명한 별자리가 내려앉았다

밤하늘의 한 끝을 힘껏 당겨서

대문 앞 삽자루에 묶어 놓았는지

별들의 간격 사이에 향기가 팽팽하다

 

실직 이후 섭섭게 팔려간 저 밭뙈기가

가난한 식구들의 몇 계절을 일구는 동안

아버지는 반듯한 밭 하나를 가슴에 품었다

 

 

‛복숭아나무를 심을란다, 어메가 참 좋아하셨지’

 

흙도 한 줌 없는 마음밭에는 올해도

헛꽃만 피었다 지고 있었다

 

2

모깃불 연기가 구수한 밤이었다

할머니는 평상에 누워 거문고자리 돌고래자리를

손가락 그림으로 그려주었고 할머니 옆구리에

기대앉은 나는 소쿠리 가득한 복숭아를 꺼내

공중에 그려놓은 별자리를 본뜨는 여름이었다

 

아들보다 자주 본다는 읍내 의사는

할머니가 복숭아밭에서 키운 것은 별이라 했다

땅에서 하늘을 경작하는 일을 치매 농법이라 하였고

노구에서는 이제 별의 향기가 난다 하였다

 

할머니의 거처를 복숭아밭으로 옮기는 날

나는 하늘에 별자리 하나를 새로 그려 넣었고

아버지는 밭 가장자리에 묏자리를 그려 넣었다

빚이 반, 밭주인 인정이 반인 좁은 거처에

옮겨온 별의 향기가 파다하다

 

‛올해는 복숭아가 풍년인갑다’

 

아버지 목소리가 환한 별자리를 헤치며

우주의 귀퉁이를 돌아 나오고 있었다

 

(2015년 제10회 복숭아문학상 당선작품)

 

 

• 시「별자리」를 읽으며 아름다운 슬픔에 저는 울었습니다. 불현듯 시인님의 직업과 시인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습니다.

 

• 자고나면 어제가 어린 시절 같아서 어린 시절을 어디까지 끊어야 할 지 고민스럽습니다. 출생지를 경주라고 쓰고 있지만 행정구역이 변경되기 전에는 경주시에서 산 속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닿을 수 있는 시골 깡촌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반딧불이가 여름밤을 날고 밤 별들이 손을 뻗으면 잡힐 만큼 가까이에 있는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전과를 살 돈이 없었으므로 교과서와 산과 들, 논과 밭을 읽으며 자랐는데 돌이켜보면 시 쓰는 일에 소중한 자산이 된 것 같습니다. 촌놈에게 대학이라는 공간은 모순투성이 였습니다. 자연이 들려주던 이야기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 거지요. 학생회장으로 학내외 문제로 시위를 이끌다가 퇴학을 당했는데 바로 군입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역 후 돌아갈 학교가 없어진 저는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집안형편 때문에 학비 마련을 위해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게 직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생산직으로 몇 년, 그리고 관리자로 24년째 근무 중 입니다.

 

 

• 공식 질문이예요. 시인님에게 시란 무엇인가요?

 

• ‘시는 그 사람이다. 한 줄 한 줄이 자신을 베껴 쓰는 일이다. 하여 시인은 소모되지만 이내 시로 환원되는 존재이다. 하찮은 존재가 되기 싫다면 고뇌 없이 시를 쓰지 말 일이다.’

 

저는 시와 시인을 이렇게 정리해봅니다.

시는 곧 저 자신입니다.

 

• 저는 김수영, 이상, 최승자, 황인숙, 김혜순, 김정란 시인을 특히 좋아합니다. 국내외 시인 중 아끼는 시인이 있다면 말씀하여 주시겠습니까?

 

• 대학 시절에는 박노해 시인의 시를 많이 읽었습니다. 30대에는 복효근, 고영민, 문태준, 공광규, 길상호 시인의 시를 즐겨 읽었고 40대인 지금은 심보선, 박준 시인의 시를 읽고 있습니다.

 

© 시인뉴스 포엠

 

2018년도에 첫 시집『눈물 이후』를 출간하셨습니다. 첫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를 알고 싶습니다.

 

• 첫 시집은 습작시부터 시작해서 출간 시점까지 발표시들만 모았습니다. 각박한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환기라고 할까요. 내면에 본성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생존의 무게에 눌려있던 슬픔과 연민의 감정을,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서 힘겹게 견뎌내고 있는 나와 가족과 이웃을 통해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 저는 항상 시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시인님께서는 시에 역할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역할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믿고 계시는지요?

 

• 아직은 참다운 시인의 길에 들어서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큰 질문에 답하기가 좀 어렵네요. 하지만 시의 언저리를 오래 배회해 온 사람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시가 무너진 인간성의 회복과 시대정신의 반영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1960년대의 참여문학으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라 현시대에 맞는 감성을 일깨워 인류 보편적인 도덕과 정의를 회복하는데 시가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확장하고 싶은 시세계가 궁금합니다.

 

• 시인은 세상의 프리즘 같은 존재라고 생각됩니다. 시적 대상이 시인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하고 나면 긍정적이고 새로운 인식의 체계가 창조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사람과 사물과 현상을 자신만의 철학적 사고로 재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겠지요. 저를 시인의 길로 이끌어주신 이근식 시인님께서는 이것을 ‘삶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진실성’ 이라는 말로 압축해 주셨는데 그 것을 깨우치기 위해 여태껏 달려왔고 앞으로도 계속 정진할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나 시인님의 시에 대해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말씀하여 주시죠?

 

• 저 역시도 시를 쓰지 않는 시간은 독자입니다. 독자로서 좋은 시를 가려읽기가 좋은 시를 쓰는 일만큼 어렵습니다. 관중은 없고 선수들만 가득한 시문학 판에서 소비되지 않는 시들이 넘쳐나 문학 환경이 오염되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입니다. 한 편을 완성해놓고 늘 스스로가 가짜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가짜를 면하기 위해 늘 노력하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접는다는 것

 

 

읽던 책을 쉬어갈 때

페이지를 반듯하게 접는 버릇이 있다

접혀진 자국이 경계같이 선명하다

 

한 때 우리 사이를 접으려 한 적이 있다

사선처럼 짧게 만났다가 이내 멀어질 때

국경을 정하듯 감정의 계면에서 선을 그었다

골이 생긴다는 건 또 이런 것일까

 

 

잠시 접어두라는 말은

접어서 경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포개지라는 말인 줄을

읽던 책을 접으면서 알았다

 

나를 접었어야 옳았다

이미 읽은 너의 줄거리를 다시 들추는 일보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내 뒷장을 슬쩍 보여주는 일

실마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던 거다

 

접었던 책장을 펴면서 생각해 본다

다시 펼친 기억들이 그때와 다르다

같은 대본을 쥐고서 우리는

어째서 다른 줄거리를 가지게 되었을까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는 진실들이

우리의 페이지 속에는 가득하다

 

 

이 시인은 왜 이렇게 사람을 울리는가! 왜 이렇게 회한의 아픔으로, 혜안의 깊은 눈망울로 내 뒤통수를 때리는가! 그렇다. 그의 말대로, “잠시 접어두라는 말은 / 접어서 경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 서로에게 포개지라는 말인 줄을”,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는 진실들이 / 우리의 페이지 속에는 가득” 함을...

 

인터뷰 동안 시쳇말로 그의 찐팬이 된 내가 카페 문을 열고 나섰을 때, 봄비가 내렸다. 아버지 곁에 나란히 누우신 어머니도 촉촉히 내리는 봄비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 진하게 내려서 분위기 잡고(실제로 분위기 잡는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생전의 고우신 모습 그대로 거실 창밖을 오래 응시하고 계실 것만 같았다.

 

 

나를 접었어야 옳았다

이미 읽은 너의 줄거리를 다시 들추는 일보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내 뒷장을 슬쩍 보여주는 일

실마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던 거다

 

접었던 책장을 펴면서 생각해 본다

다시 펼친 기억들이 그때와 다르다

같은 대본을 쥐고서 우리는

어째서 다른 줄거리를 가지게 되었을까

 

 

시인의 시「접는다는 것」中에서

 

 

 

《권상진 시인》

1972년 경북 경주 출생

2013년 전태일문학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2015년 복숭아문학상 대상 수상

2018년 경주문학상 수상

저서 『사람의 얼굴』(사회평론사, 2013, 공저)

시집 『눈물 이후』(시산맥사, 2018, 아르코 문학나눔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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