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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돌아온 시

비스듬히 _ 김윤환 시인 단평

가짜시인! 2020. 4. 13. 09:32

비스듬히

 

권상진

비스듬히
몸을 기울여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꼿꼿한 자세만으로는 볼 수 없는
세상과 사람의 틈

 

비스듬히 보아야
세상이 만만해 보일 때가 있다
예의처럼 허리를 숙여야 오를 수 있는 산비탈 집들
첫차에 등을 기댄 새벽의 사람들

 

기대고 싶거나 주저앉고 싶을 때
손 내밀고 어깨 주는 것은
언제나 비스듬한 것들

삐딱하다는 것은
홀로 세상에 각을 세우는 일이지만
비스듬하다는 말은
서로의 기울기를 지탱하는 일

더러는 술병을 기울이면서
비스듬히 건네는 말이
술잔보다 따듯하게 차오를 때가 있다

 

 

 

 

⸺권상진 시집, 『눈물 이후』 (시산맥, 2018)

 

 

 

 

 

 

단어가 지닌 세계는 유한하지만 시어가 담은 세계는 바람처럼 경계를 넘어 무한에 이른다. ‘비스듬하다는 말, 기울여진다는 말은 마치 바르지 못한, 당당치 못한 것처럼 사용되었다. 그러나 시인은 이 비스듬한 움직임이 얼마나 따뜻하고 유연한 것이지 노래하고 있다. 꼿꼿하지 못해 비스듬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꼿꼿함을 잘 보이도록 고개 숙이는 일, 이것은 꼿꼿함의 진정성을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는 모양이다. 사실 세상은 일자로 서서 보는 것보다 비스듬히 볼 때 못 보았던 것이 보이고 보이는 것이 새롭게 보이는 법이다. 세상에 대하여 사람에 대하여 쳐다 본다는 것은 매 한 가지나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대상의 빛깔도 그림자도 달리 보인다. 약하지 않은 척 뻣뻣한 고개를 든 채 살아가는 나에게 고개 좀 숙이고 살라고 어깨를 토닥이는 따뜻한 시다. 그렇다, ‘비스듬 하다는 것은 서로의 기울기를 지탱하는 일’, ‘비스듬 건네는 말이 술잔보다 따뜻하게 차오를 때가있는 법이다. 시인은 비스듬한 언어로 사람에게로 기울어진 언어의 사제가 분명하다.

 

 

- 김윤환(시인)

 

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

 

 

김윤환 편집위원

 

 

경북 안동에서 출생. 협성대 및 同 대학원 졸업(신학석사),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문학박사).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릇에 대한 기억』 등과 사화집 『창에 걸린 예수 이야기』, 논저 『박목월 시에 나타난 모성하나님』, 『한국현대시의 종교적 상상력 연구』 등이 있음. 현재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기독교 감리회 목사, 협성대 강사.

[출처] 시인광장 포엠조명【274】김윤환의 시단평(詩短評)[7]비스듬히 - 권상진【웹진 시인광장 Webzine Poetsplaza SINCE 2006】2020년 4월호 ㅡ통호 제132호 |작성자 웹진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