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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이후, 공감과 소통을 향한 따뜻한 회복적 서정 / 박진형 본문
눈물 이후, 공감과 소통을 향한 따뜻한 회복적 서정
-권상진 시인, 『눈물 이후』(시산맥사, 2018)
박진형
시산맥 제18차 감성시선 공모에 당선되어 출간된 권상진 시인의 시집 『눈물 이후』는 차분하고 섬세하고 따뜻하다. 시인은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려 하는데, 그 세상이라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삶의 무대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된 악다구니 같은 무대와 다름이 없다. 힘들게 삶을 꾸려 가는 사람들을 위해 위로와 공감을 통해 소통하려는 의지가 여러 시편에서 보인다. 소외된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준다. 60여 편의 작품은 친숙한 소재를 통해 일상에서 느끼는 시인의 깨달음을 차근차근 풀어내는 시편들이다. 『눈물 이후』는 진지한 삶에 대한 성찰로 읽힌다. 필자는 ‘눈물 이후’의 삶이 어떻게 회복적 서정을 담보해 내는 지를 추적하면서 시집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1. 사람과 사람들
권상진 시인에게 시의 중심은 ‘사람’이다. 1부 「아는 사람」과 3부 「사람들」은 제목 자체에 사람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다른 시편에서도 사람이라는 말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단수 사람과 복수 사람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복수로 ‘사람들’이라고 쓰면 일반적인 사람들의 의미로 ‘방관자’ 내지 ‘국외자’의 의미로 쓰인다.
몇 해 전부터 삶의 무게를 줄여가던 어느 시인은 / 오늘, 세상과 완전히 분리되었다 /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버렸다고 했지만 (「두 번 절하다」 부분)
좁은 골목을 한 무리로 몰려다니는 사람들 (...) 사람들은 누구도 고래와 소녀의 아가미에 집중하지 않는다 (「아가미」 부분)
백야의 밤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다만 / 해가 지지 않는 것은 소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였다 (「아는 사람」 부분)
많은 사람과 왼손으로 악수할 수 있었겠지 (「왼손잡이」 부분)
죽음을 상쇄하기 위해 매일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서 (「탈출기」 부분)
복수로 ‘사람들’이 가해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세월호를 그린 시인 「사건의 지평선」에서 그 점이 두드러진다.
사람과, 사람과 사람을 /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자 (...) 가만히 있으라 하는 사람들과 / 수많은 물음표만 바다에 던지는 사람들은 (...) 사람들 사이에도 / 섞이지 않는 표정과 / 섞이지 않는 슬픔의 계면이 있다는 것을 (「사건의 지평선」 부분)
사람들이 없었다면, 만약에 (...) 자유로울 것을 / 사람들만 아니었다면 (「사람들」 부분)
권상진 시인에게 ‘사람(들)’은 여러 시편에서 연민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사람’은 ‘아는 사람(「아는 사람」)’이기도 하고, ‘학 같은 사람(「외발」)’이기도 하고, ‘언제나 가슴속에 동심원을 그리면서 산 사람’(「탄환들」)’이기도 하고, ‘언제나 마음 언저리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 (「흙담의 오후」)’이기도 하고, 시인 자신을 가리키기도 한다.
내가 찍은 단체 사진처럼 나는 없던 사람 (「모놀로그」 부분)
첫차에 등을 기댄 새벽의 사람들 (「비스듬히」 부분)
담 너머 사람들 하나둘 낯이 익다 (「아는 사람」 부분)
주저거리며 한 발을 들고 선 사람들 (...) 저 학, 저 사자, 저 나무, 턱을 괸 저 사람 (「외발」 부분)
강변 공원에 삼삼오오 몰려든 사람들 (...) 사람의 끝에서도 꽃이 피다니 (...) 여기까지가 사람의 경계라는 듯 / 골목은 폭염을 다시 들이고 (「영하의 날들」 부분)
가슴 한곳에 하나의 얼굴을 감추고 산 사람 (「엑스레이를 읽다」 부분)
슬몃 등을 돌려 마지막 인사를 대신한 사람이 있다 (「등」 부분)
문 밖 사람들 (「정류장」 부분)
보고 싶은 사람 마지막 한 명까지 보고 가려고 (「정류장」 부분)
대신 산다는 것은 여럿에게 뿌듯하고 / 한 사람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장남」 부분)
빈 등이 무거워 보이는 한 사람 (「뒷짐」 부분)
마음에도 덧문이 있어서 / 두 개의 문을 열어야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낯선 초대」 부분)
한 줄씩의 내가 옮겨지고 마침내 나는 없는 사람 (「엔딩노트」 부분)
눈물을 소리 내어 읽어 본 사람은 안다 (「틀린 문장」 부분)
길마다 판화처럼 그려져 있는 사람들 흔적을 (「가을 청암사」 부분)
몇 번의 이사를 하고 여러 명의 친구를 얻었다 그때마다 붉은색 노끈으로 묶어 낸 기억들, 사람들 (「지구별에서의 마지막 이사」 부분)
언제나 가슴속에 동심원을 그리면서 산 사람 (「탄환들」 부분)
갈라놓아야 할 것은 바람이나 들짐승의 행적이 아닌 / 사람이었다, 그 음습한 심장 소리였다 (...) 다만 허락되지 않는 것은 다시 사람이었다 (...) 언제나 마음 언저리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 (「흙담의 오후」 부분)
2. 눈물, 평형수
표제시 「눈물 이후」에서 시인은 눈물을 ‘허하던 마음에 고여 든 평형수’라고 부른다. ‘평형수’라는 말은 세월호와 관련이 있는 단어기도 하지만, 권상진 시인의 시에서는 ‘눈물 이후에야 비로소 균형을 잡’게 만들어 주는 눈물의 동의어이다. 눈물은 시인이 세상과 맞서 상처받을 때마다 위로해주고 공감해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가늠할 수 없던 슬픔의 양 / 그 자리에 울컥 눈물이 고이고 나서야 / 참았던 슬픔의 눈금을 읽을 수 있다/ 허하던 마음에 고여 든 평형수 / 기울어진 어제의 날들은 / 눈물 이후에야 비로소 균형을 잡는다 (「눈물 이후」 부분)
눈물은 날 때마다 눈가 주름에 모두 숨겼는데도 / 마음이 습한 날은 녹물이 꽃문양으로 번지기도 하였다 (...) 한 손은 눈물을 훔치러 가는 중이었다 (「홀로반가사유상」 부분)
울음 없는 슬픔과 울어도 눈물이 없는 슬픔 눈물에 그늘이 없는 슬픔 (「창녀와 어느 가장과 나」 부분)
너는 없다가, 있다가, 없다가, 있다가 / 결국 눈물 같은 것이 고여서 (「별을 묻다」 부분)
눈물을 소리 내어 읽어 본 사람은 안다 (「틀린 문장」 부분)
긴 세월 숱한 눈물로 키워 왔을 저 꽃, 문신 (「저승꽃 문신」 부분)
마음이 가문 날에는 눈물이 필요했고 눈물샘까지 마르는 날, 이 골목의 끝에는 소복하게 꿈의 잔해들이 모일 것이다 (「아가미」 부분)
3. 세상을 비스듬히 보는 삶
권상진 시인의 「비스듬히」는 우연찮게 김윤배 시인의 「세상을 비스듬히 살아보지 않았다면」이라는 시와 겹친다.
세상을 비스듬히 살아보지 않았다면 창마다 입김처럼 / 피어오르는 따스한 불빛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세상을 비스듬히 살아보지 않았다면」(김윤배) 부분)
비스듬히 / 몸을 기울여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 비스듬히 보아야 / 세상이 살갑게 보일 때가 있다 (...) 비스듬하다는 말은 / 서로의 기울기를 지탱하는 일 (「비스듬히」 부분)
이태 전 문병을 간 자리, 웃음 띤 얼굴로 / 비스듬히 누운 채 땅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던 그 (농담」 부분)
김윤배 시인의 따뜻한 서정과 권상진 시인의 회복적 서정은 일맥상통한다. ‘꼿꼿한 자세만으로는 볼 수 없는 세상과 사람의 틈’은 비스듬히 보여야만 보이는 것이다. ‘세상을 비스듬히 보는 삶’이란 성공한 주류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작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 아파하고 슬픔을 공감하며 그 공감 안에서 따뜻함으로 감싸 안는 회복적 정서에 기반을 둔 삶일 것이다.
4. 꽃의 죽음, 역설적인 생명의 서(書)
「꽃의 죽음」이란 시 역시 권상진 시인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 보아야 할 시이다.
꽃은 이내 저물어야 할 자리인 줄 / 알고 핀다 (...) 태어나 단 한 번도 추해지지 않은 / 고운 죽음 (「꽃의 죽음」 부분)
생명의 소중함을 죽음을 통해 돌이켜 보는 시인의 관점은 새롭지는 않으나 죽어가는 생명들에게 위로가 된다. 『눈물 이후』에는 여러 가지 죽음에 관한 서사가 등장한다. 가족이나 시인의 죽음이 특히 눈에 띈다.
죽음을, 이루다 라는 동사로 의역해 놓고서 그는 떠났다 (...) 죽음을 이루려는 안간힘이 겨운 웃음을 꽃대처럼 받치고 있었다 (「농담」 부분)
시인에게 죽음은 도피해야할 사건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긍정에 나온 종착역 같은 것이다.
안간힘으로 죽음을 이루려던 그가 떠올라 나는 / 다시 나무 곁에 한동안 서있어 주었다 그리고 / 말 대신 단풍만 간혹 던지는 나무에게 답해 주었다 / '니가 참 부럽다’ (「농담」 부분)
죽음의 미행을 직감한 듯 떨리는 손을 / 아들이라고 합니다 초면의 조력자가 덥석 잡는다 (...) 낯익은 이들의 방문이 잦을수록, 삶은 자꾸 멀어지고 / 더는 낯선 이를 만날 수 없는 날, 죽음은 번짐처럼 온다 (「탈출기」 부분)
5. 반가사유상, 독거 노인과 생각하는 사람
『눈물 이후』에 반가사유상이라는 제목이 두 번 나온다. 「홀로 반가사유상」과 「로댕과 반가사유상」. 하나는 사회 문제를 다룬 시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 깨닭음과 성찰을 담은 시이다.
누워서 하는 참선은 하도 오래여서 / 반듯이 의자에 앉는다 ( 「홀로 반가사유상」 부분)
「홀로 반가사유상」은 독거노인 문제를 다룬 시로 읽힌다. 반가사유상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여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된 불상이다. 반가사유상을 독거노인 문제에 빗대어 그려내면서, 일주문, 참선, 보살 등 불교 용어를 적절히 배치하며 풀어낸 작품이다.
「로댕과 반가사유상」은 바닷가 절집에서 마주친 반가사유상을 보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비교(‘로댕보다 깊은 상념에 잠긴 반가사유상’)하다가, ‘반가사유상의 껍데기만 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적으로 고찰한 시이다. 비교적 위트가 번뜩이는 시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 생각은 어디 가고 오기만 남은 / 반가사유상의 / 껍데기만 보고 있었던 거라 (「로댕과 반가사유상」 부분)
6. 바닥,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닥이라는 말」 역시 권상진 시인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는 시이다. ‘저마다의 자세로 각자의 바닥을 해결하고 있다는 것을 / 알았을 때 절망은 / 단단한 계단의 다른 이름이 된다’(「바닥이라는 말」)에서 처럼 바닥은 절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고 ‘발아’인 것이다. 바닥은 ‘사람의 가장 슬픈 자세를 풀고 있는 나’도 알아들어야 하는 말이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바닥에 닿아있었다 (...) 삶의 바닥에 무릎 꿇어 본 적이 있다 (...) 나도, 이제 바닥이라는 말을 알아들을 나이 (「바닥이라는 말」 부분)
허름을 먹고 허름을 입은 채로 잠든 바닥에는 / 사는 냄새가 각질처럼 부스러져 나뒹군다 (「허름한 잠」 부분)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각자의 바닥에서 절망을 배우지만 / 바닥에도 격이란 게 있어 (...) 살면서 한 번쯤은 만나게 될 것 같아서 / 바닥에 가만 손을 짚어 본다 (...) 바닥 저 밑에서 수습하는 뿌리처럼 / 창녀와 어느 가장과 나는 / 찰랑이는 슬픔을 지나 잠시 잊혀 두었던 본래의 그들과 / 지금, 만나고 있는 것이다 (「창녀와 어느 가장과 나」 부분)
육면체의 벽과 천정과 바닥들은 종일 내가 불편한가 보다 (「실직일기」 부분)
삶의 밑바닥 근처에서 가장 간결한 자세로 / 나는 지금부터 / 발아를 꿈꾼다 (「뿌리에 대하여」 부분)
웃음인지 울음인지, 허공의 여백에 조각된 소리는 / 먼 시간의 바닥에 흩어진 후였다 (「여인상」 부분)
이상으로 권상진 시인의 시집 『눈물 이후』에 나오는 핵심 표현을 토대로 시집을 조명해 보았다. 『눈물 이후』를 읽고 나면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는 위안을 얻는다. 권상진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시의 한가운데에 가 닿아 본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시인은 이미 시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게 아닐까. 『눈물 이후』는 시의 한가운데서 생의 먼 길을 꿋꿋하게 걸어가는 모든 소외된 사람들에게 바치는 ‘新 헌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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