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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창문이 발끈, / 성영희

가짜시인! 2019. 12. 18. 18:11

창문이 발끈,

 

 

                         성 영 희

 

 

창문에 발끈, 불빛이 들어간다

저녁의 불빛들은 모두 창문이 된다

커튼을 치면 안쪽의 의중이 되고

걷으면 대답이 되는 바깥

 

집의 주인은 그러니까 창문의 불빛이다

모든 외출은 캄캄하므로

불빛 없는 창문은 사람이 꺼진 것이다

여름 창문에는 여름의 영혼이 있어

날벌레들이 기웃거리고

겨울 창문에는 서리는 것들이 있어

찬바람이 기웃거린다

 

오래전에 기웃거렸던 창문 하나를 우연히 찾았을 때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다면

커튼이 걷히고 발끈,

옛 그림자 하나 튀어나오기라도 한다면

창을 갖는다는 것은 언제든지

나를 잠그거나 열 수 있는 은밀한

고리 하나를 가졌다는 것이다

 

불 밝히지 않고 있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날벌레의 기억이었던가

바람의 틈이었던가

생각하면 여전히 발끈, 치솟는

뜨뜻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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