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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눈물 이후』(2018, 시산맥)

지게

가짜시인! 2018. 8. 6. 13:31

지게

 

 

 

짐이 되기 싫어서

혼자 산다는 노인의 등, 그 불거진 뼈마디는

지게의 발을 닮았다

 

이사 간 집 마당에 버려진

쓸모 잃은 물건처럼

덩그러니 세상에 남겨진 낡은 지게

 

얼마나 많은 고단과 희망을 져 날랐을까

닳고 패인 자리에

매몰찬 시간이 넘나든 흔적 숭숭하다

 

깜박 잊고 간 물건인 양

여기 쓸쓸한 마당을 다시 돌아와

저 지게를 지고 일어설 누군가는 여태 오지 않는다

 

이럴 줄 모르고 칠십을 살았다는

늙은 지게의 희미한 독백이

눈으로도 들리는데

없다, 빈 마당 가득한 적막에는 귀가 있을 리 없다 

 

간혹 집배원이 빈손으로 문을 열어

쓰러진 지게를 고쳐 세우고

지겟작대기처럼 잠시 기대어 주었다가

떠난 자리에는

끝나지 않은 대화가 아직도

혼자 중얼대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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