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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눈물 이후』(2018, 시산맥)

외발

가짜시인! 2018. 8. 6. 14:03

외발

 

 

 

학 같다

주저거리며 한 발을 들고 선 사람들

한소끔 왁자한 잡념들 가라앉으면

학은, 아니 학 같은 저 사람은

어느 곳으로 한 생각을 디뎌 놓을까

 

허방 허방 허방 허방

걸어온 길마다 찍혀 있는 헛디딘 발자국들이

팽팽하게 허리춤을 잡아당겨서

길은 허공 한 뼘 밀어내지 못하고

새순 같은 고민만 부풀리고 있다

 

잡초들의 한 생을 다 살아 보고서야

비로소 한 가지를 세상에 디디는

나무 한 그루의 길에는

뿌리가 걸어온 생각들 무성하다

언제나 한 발로 생각을 가누는 자세는

흔들릴지라도 넘어지는 일이 없다

 

멈춰 있는 모든 것들은 외발이다

저 학, 저 사자, 저 나무, 턱을 괸 저 사람

가만히 외발로 세상의 균형을 잡아 보다가

간신히 한 생각을 디디고 나면

다시 한 발을 슬그머니 들어 올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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