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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비닐봉지에 악수를 청하다 본문

첫 시집 『눈물 이후』(2018, 시산맥)

검은 비닐봉지에 악수를 청하다

가짜시인! 2018. 8. 6. 13:30

검은 비닐봉지에 악수를 청하다

 

 

버스 승강장 화단에 걸린 검은 비닐봉지 귀갓길 한 번은 누군가를 설레게 했을 불투명의 저 포장이, 허기진 노숙의 저녁에게는 간절한 신앙 같았을 저것이 바람에 잔주름을 접었다 펴고 있다 오감이 몸을 빼낸 허물 같다 정수리를 먼저 보여줘야 만날 수 있는 이들에게 악수를 청할 때 그들이 내 손에 걸려 빈 봉지처럼 흩날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내가 손을 내밀 때마다 탈피를 완성하는 그들은 더 단단해진 등껍질이 되어 나에게서 돌아섰다 이제 나와 악수할 시간 빈 벽에 종일 불편하였던 껍질들을 차례로 걸어놓고 악수를 청해 본다 따듯하다 구겨진 하루치의 주름과 남은 온기가 방바닥으로 주르르 흘러내리고 나면 벗어놓은 하루가 가볍게 흔들린다 내가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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