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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눈물 이후』(2018, 시산맥)

가짜시인! 2018. 8. 6. 13:29

     - 질병분류기호 M81.99* 

 

 

의사는 몸이 새처럼 가벼워질 거라 했다

 

그날 이후로 어머니는 새 꿈만 꾼다며

아버지 해진 옷으로 마당 안 텃밭에

듬직하게 허수아비를 세워 놓았다

 

아버지 때처럼

혼자만 모르는 이야기가 생긴 것 같아

끼 때마다 약봉지의 알약을 세고 나서야

한숨과 함께 털어 넣었고

목에 걸린 한마디는 결국 대문 쪽으로 퉤! 뱉어낸다

- 오라질 놈들, 죽고 나서 올랑가

 

아픔이 더께로 쌓일수록 몸은 그 무게를 덜어낸다

어머니도 그 정도는 아는 눈치였다

몸이 가벼워지다가 차츰 존재마저 가벼워지면

새처럼 두둥실 세상을 뜬다고 생각했다

 

병원은 가지 말았어야 했다

이 씨도, 김 씨도 그를 만나고 세상을 떴다

그날 이후

견딜 만하던 아픔은

견디기 힘든 쓸쓸함으로 차츰 전이되고 있었다

 

 

*M81.99 - 질병분류기호에서 상세불명의 골다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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