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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눈물 이후』(2018, 시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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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시인! 2018. 8. 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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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노트 위에 나를 흩어 놓는다

또박거리며 쓰인 한 문장의 나

마침표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한 줄씩의 내가 옮겨지고 마침내 나는 없는 사람

더듬이를 세워 사라진 나를 찾아 교신을 시도해 보지만

그것은 이미 기억 밖의 일, 지상에는

A4 한 장을 채우지 못하는 생의 이력들만

배열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다

몇 번이고 나를 물어 퇴고를 마친, 몇 줄의 나

최초의 대면인 듯 우리는 한 장의 노트 위에서 악수를 청하고

몇몇 이름들을 기억하기 위해 끝 자막을 기다린다

가슴부터 머리까지 칼끝처럼 그으며 오르는 자막 속 이름들

서둘러 그들의 슬픔을 훔치러 가기로 한다

흑백 톤의 정장에 슬픈 기색이 묻어온다면

그들에게 미안을 남겨두고 가야 한다

그들에게서 나를 흔적 없이 데려와야 한다

자막이 끝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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