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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눈물 이후』(2018, 시산맥)

어둠을 읽다

가짜시인! 2018. 8. 6. 13:00

어둠을 읽다

  

 

 

어둠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하루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행적을 대신 적은

검은 글씨로 가득 찬 비망록

 

까맣게 완성된 밤의 페이지 속으로

분침이 시침을 데리고 주저 없이 걸어 들어가고

내 그림자도 함께 사라진다 

 

혼자가 되었다

 

두툼한 어둠을 들춰 풀의 말 새의 말을 엿보다가

구석진 페이지에서 잃어버린 내 그림자를 만난다

무표정과 퉁명스러운 말투가 반가운 듯 손을 내민다

누구........

어둠 속 내가 낯설다면 오늘의 나는 무효

 

세상의 모든 언어로 읽을 수 있는

어둠은 공평한 문자

처음 글자를 배운 아이처럼 더듬거리며

낯선 나를 읽고 있는 동안

문맹처럼, 이 도시는 하나의 글자도 해독하지 못하고

하루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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