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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눈물 이후』(2018, 시산맥)

뿌리에 대하여

가짜시인! 2018. 8. 6. 13:01

뿌리에 대하여

 

 

 

세상이 소란할수록 더 단단히

움켜쥐는 법을 배웠다

뿌리 하나

마른 땅속에 미늘처럼 박혀

흔들리는 세상 지긋이 잡아주고 있었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나무 곁에서

나는 뿌리 없는 나무로 서서

흔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흔들리는 것에는 새조차도 날아와 앉지 않아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소원해지고

허툰 꿈만이 가끔 머물다

사라지곤 하였다

 

산길을 지나다가 양지바른 곳에서

듬성듬성 심어진 뿌리를 만난다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우기 위해

동그랗게 봉분으로 북을 돋우고

땅속에 심어져 뿌리가 된 저 현자들

세상이 수런대지 않으니 더는

넘어질 일 없겠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탱하는 견고한 힘

고사목 마른 영혼마저도 끝내 놓지 않는

저 강인한 뿌리를 얻기 위해

삶의 밑바닥 근처에서 가장 간결한 자세로

나는 지금부터

발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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