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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신춘문예 시 평설 / 유창섭

가짜시인! 2017. 3. 8. 08:47

 

신춘문예 시 평설>

 

 

새로이 추구해야할 가치에 대한 탐색방향

-----시인 유창섭 (前 모던포엠 편집주간)

 

 

 

 

신춘문예에서 신춘이란 시인 지망생들에게는 설렘의 표상이다.

어찌보면 문학지망생에게는 조선시대의 과거시험 급제와도 같은 반열로 인식되기조차 하는 이 시대의 신춘문예제도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이 제도에 대한 상당한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망羨望의 대상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를 통하여 얻는 한 시대적 문학적 풍요는 가볍게 폄하되기 어렵다는 긍정론도 함께 한다.

어찌되었건 이러한 신춘문예제도는 그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면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한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매우 다양한 시적 성취를 엿볼 수 있는 좋은 모방교사’, 또는 그러한 경향에 저항하는 시인들에게는 반면교사로 등장하기도 한다.

아주 오랜 시간동안 우리 문단의 문학적 흐름에 대한 커다란 변화를 감지해 볼 수도 있고, 그 흐름 속에서 우리 현대시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흐름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것은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우리에게 던져지는 숙제가 될 수 있고, 새로이 추구해야할 가치에 대한 탐색방향을 생각해 볼만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한번쯤 이런 기회를 통해서 자신의 문학에 대한 새로운 눈뜸과 새로운 가치관을 다져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2017년도 신춘문예작품에 관한 전반적 소견

 

1) 시적 감동의 소통에 대한 내용적 변화

금년에 두드러진 시적 경향은 시적 언어와 시적 이미지의 소통이 친근하게 다가왔다는 점이 눈에 띄는 현상이었다고나 할까?

지독한 시인 자신만이 해독할 수 있는 자기담론과 어휘의 비틀기를 통한 애매성이나 환상성이 사라지고, 보다 쉬운 언어와 얽혀 생성된 이미지의 조합으로 종전의 난해함을 뚜렷하게 벗어난 시적 이미지로 충전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로 인해 어쩌면 독자와의 시적 감동의 공유는 한 층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독자와의 접촉면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그런 변화가 모두 긍정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한 의식의 반동이었을지 모르지만 언어를 활용한 시적기교는 한층 더 두드러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 현상으로 시적 기교가 지나치게 많아져서 시가 사설적辭說的인 흐름 속에서 끌려 다니는 것 같은, 자칫하면 그 기교에 시적 중심정서가 함몰되어 정서적 갈피가 흔들리는 현상도 보이게 되는 위험이 뒤따르게 된다.

지난해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시는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감동에 이르는 길은 시가 절실함과 진정성에 바탕을 두고 창작되어야 하며, 그래야 소기의 정서적 감동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표현기교는 시가 감동에 이르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며, 지나친 표현기교은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시의 정서적 집중이 흐려져 감동에 이르는 길에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시가 언어의 절제성, 혹은 경제성을 생각하여 언어를 다스려 정서적 함축미를 가져야한다는 점에서 볼 때는 시가 표현기교의 경연장 같은, 너무 많은 수사적인 언술로 시적 정서를 억지로 발현시키려는 시적 발현 현상은 어느 정도 절제되어야 할 것 같다.

 

2) 형식의 변화

2017년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의 형식적 경향은 발췌한 시 당선작품 26편 중에서 산문시의 형식을 택한 시가 9(35%)으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또 이중 압축이나 함축미를 내재시켜 쓴 짧은 형식의 시는 단 한편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한 현상이다.

현대시가 각 행의 길이가 길어지고 그 속에 정서적 감동을 이끌어내려는 현상으로 표현의 기교를 통한 수사적 경향이 높아진 면을 감안하고 일반 자유시의 형식이 산문화되어 산문의 경계면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산문적 성향은 훨씬 더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형식에 있어서 어떤 형식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가 시인의 심상을 노래하는 구조로서 상징적 압축과 함축미를 생각한다면 시의 형식이 산문화되는 경향은 커다란 발전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산문시의 자유로운 발상과 다양한 정서적 표현으로 감동을 끌고가는 힘을 사설적辭說的으로 보여주는 데는 매우 쉬운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행의 길이가 길어지고 보다 다양한 표현적 기교에 심취하게 되는 현대시의 경향이 난해성이나 애매성을 빌리지 않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시적 깊이의 추구라는 측면에서 고민해야할 숙제를 던져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심사위원의 변모

2017년의 심사위원들의 면면은 전에 비해 다소간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26개 신문사의 신춘문예 심사위원 중에도 아직도 과거의 영광이나 명성에 기대어 수십 년간의 심사위원 독식이라는 명예(?)를 짊어지고 가는 심사위원들이 다수(8~9)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 중에도 5명의 심사위원은 2~3개의 신문사에서 심사위원을 겸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당한 신문사들이 새로운 심사위원들을 초치하여 시적경향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음은 바람직한 변화의 한 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문단의 현대시가 그들 몇 명의 시적 성향이나 시에 대한 그들의 시문학관詩文學觀을 통해 이 시대의 시가 그러한 과거의 시론詩論에 정지되어있는 한정된 시적 평가에 맡겨져도 좋은가에 대한 불평(?)은 전부터 이어오고 있지만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그 맥을 이어간다는 점은 다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신문사들이 새로운 심사위원들을 초치하여 시적경향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음은 바람직한 변화의 한 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각 신문사에서 심사위원으로 위촉한 심사위원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강원일보(이영춘, 고진하) 경남일보(성선경,배한봉) 경상일보(나태주) (경인일보(신달자,유성호) 경향신문(이시영,최정례) 광남일보(임동확) 국제신문(곽제구,강영환,문태준) 농민신문(함민복,황인숙) 대전일보(나태주,이정록) 동아일보(황현산,김혜순) 매일신문(장석주,장옥관) 무등일보(김경윤) 문화일보(황동규,정호승) 부산일보(강은교,김경복) 불교신문(고은) 서울신문(정끝별,황현산) 시계일보(김사인,황인숙) 영남일보(김사인,송재학) 영주일보(양대영) 조선일보(문정희,정호승) 전북도민일보(소재호) 전북일보(유안진,이동희) 한경신문(김수이,박형준,이영광) 한국일보(김정환,황인숙,신해욱) 한라일보(김영남,김지연) 등으로 되어 있다.(여기에 예심위원은 제외되어있음)

 

4) 심사의견에서 나타난 현대시의 심상구조

 

한 해의 시에 나타난 시적심상구조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각 신문사의 심사위원들의 견해를 파편적으로라도 살펴보면 당시대를 통과하는 시대적 인상을 얻어내는 단서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므로 여기에 그 경향을 전하는 간결한 의견들을 모아놓고 그 내용을 정리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4-1)전반적인 시의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심사위원들의 시선

 

각 신문사에 들어온 신춘문예작품에 대한 개괄적인 인상을 전하는 심사위원들의 견해를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아마도 이 심사위원들의 단편적인 견해들을 모아보면 그 견해를 통해서 우리 현대시가 가지는 특성이나 지향하는 지향점에 관한 문제를 넓고 깊게 천착해 볼 수 있는 윤곽을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 언어를 상징적으로 결합시키며 언어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강원일보)

*) 상상력의 질감이 잘 살아 있고, 시에 나타나는 삶에 대한 진지성.....(경남신문)

*) 모든 작품들의 길이가 너무 길고 요설이 많은 것이 우선 불만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무지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작가의 의도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동인데 이쪽에서 억지로 감동을 좀 해보려고 그래도 감동이란 것이 잘 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문제......(경상일보)

*) 시단에서 주류를 형성한 시풍을 답습하거나 판박이에 가까운 관습적 언어를 보여주는 대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심의를 쏟은 것도 썩 긍정적으로 생각되었다. (경인일보)

*) 응모작들은 실험시 계열보다 대체로 서정적 경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서정적 상상력을 통해 팍팍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흐름이 감지되었다. 그러나 참신한 개성과 강렬한 상상력의 촉수를 내뻗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보여준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경향신문)

*) 공통적으로 이들이 접근하고자 하는 시의 자리는 결코 화려하거나 거대한 곳이 아니다. 정교하게 구축된 사회체계나 윤리도덕의 그물에 포획되지 않는 작고 소박한 인간적 진실과 가치가 이들이 주목하는 자리였다. (광남일보)

*) 전반적으로 장황하다는 느낌이 들게 해 아쉬웠다. 생각에 비해 언어들의 부피가 과도한 경우가 있었다. (국제신문)

*) 대상을 그려내고자 하는 치열함이 절로 읽힌다. (농민신문)

*) 원고를 펼칠 때마다 꽃향기가 일고 꽃씨가 터졌다. 오래된 거름냄새가 풍겼다. 논두렁의 제비꽃부터 도심 복판의 팬지까지 다양한 봄 풍경을 만났다. 어느 꽃은 수증기가 꽉 찬 하우스에서 자신만의 시적 포즈로, 분간할 수 없는 시야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대전일보)

*) 응모된 시들이 고루 안정적이고, 스스로 발명한 문장들이 빛났다. ......우선 다면적으로 시적 사유를 개진하는 힘이 있었다. (동아일보)

*) 한 교재로 시를 배운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시적인 것에 갇히면 날것의 감각과 낡은 작법(作法)을 깨고 부수는 신인의 예기(銳氣)를 드러내기 힘들다.(매일신문)

*) 감각적인 표현은 뛰어났지만 주제를 집약하는 힘이 부족하고, 시적 이미지를 만드는데 있어 너무 산문적이라는 점에서 언어의 절제력이 아쉬웠다.(무등일보)

*) “언어를 다루는 말솜씨는 있다. 말들을 재미나게 쓰기는 썼다. 그래서 내용이 불확실하지만 싱겁지는 않다. 그렇지만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 수 있어야 할 거 아니냐.”

말재주만 가지고 시를 너무 쉽게 쓴다. 그런데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지 않아서 말의 유희만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문화일보)

*) 현 사회 속의 하층 노동자의 삶을 사실적 사물들을 동원하여 참신하게 그려내고 있으면서 그것에 따뜻한 시선을 주고 있다는 점(부산일보)

*) 신인답지 않은 유려한 묘미를 터득하고 있어서 창작의 연륜을 짐작케 한다. (불교신문)

*) 오래 쓰기 위해서는 문장이 힘차고, 쓰고 싶고 쓸 수밖에 없는 운명적 열정이 배어나고, 개성적인 스타일을 담보해야 한다.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독창성, 몰입에서 비롯되는 에너지야말로 신인의 요건.........(서울신문)

*) 전반적으로, 좋게 말하면 말과 느낌을 적절히 짜 맞추는 솜씨들이 상당해서 안정감이 있었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보면 평면적이고, 어딘가 낯익은 형언과 방식에 기대어 있는 느낌이다. (세계일보)

*) 마치 한 사람의 시집을 읽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느낌과 느낌들이 손쉽게 공유되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지만 참람하다. 문학의 기술과 기교는 독창성이나 변별성보다 더 높은 가치가 결코 아니다. (영남일보)

*) 완벽한 시보다는 현대시의 흐름을 반영하되, 그 중 새로운 감각을 지니되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을 가려내기로......(영주일보)

*) 오늘날 한국 시의 큰 병폐 중 하나로 소통의 결핍과 부재를 들 수 있다. 시를 쓴 사람과 시를 읽는 사람이 서로 소통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적 삶과 동떨어진 비구체성, 환상과 몽상의 방법으로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언어적 태도, 개인의 자폐적 내면세계에 대한 지나친 산문적 천착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조선일보)

*) 시의 구조나 체제, 심통한 정서 등 시가 마침내 도달해야할 궁극에는 한 점씩 미진한 듯하여 아쉬움이 있었다. (전북도민일보)

*) 문학적 진실은 필연적으로 사유의 깊이와 미학적 감동으로 이루어진다. 시를 읽는 사람의 정신세계에 파열음을 내는 사색적 자극, 물신의 재미에 빠져 사는 사람에게도 격조 높은 심미적 쾌감을 주는 표현의 아름다움이 결합하여 시를 시답게 한다. (전북일보)

*) 진실성에 비해 시적 완성도에서는 미흡하다 (한경신문)

*)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시적 착지점에 닿은, 혹은 닿으려 하는 원고들이었다. 사소한 착상을 충분히 확장시킬 줄 알았고, 그렇게 확장된 세계에는 독특한 파토스가 담겨 있었다. (한국일보)

*) 열정적이고 패기 넘치는 응모작들을 접하는 동안 우려보다는 새로운 기대로 바뀌었다. (한라일보)

 

이와 같이 위에서 제시한 전반적인 견해 중에서는 우리 시인들이 짚고 넘어가야할 시적금도詩的襟度가 보인다.

위의 내용을 좀더 요약하여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전반적인 견해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1) 요즘의 시적경향의 감상자에게 해독하기 어려운 난해성과 애매성으로 포장하여 시적정서의 소통을 어렵게 하려는 시인들의 감동이 없는 시를 양산해 내는 경향을 지적한다.

한국 시의 큰 병폐 중 하나로 소통의 결핍과 부재를 들 수 있다. 시를 쓴 사람과 시를 읽는 사람이 서로 소통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적 삶과 동떨어진 비구체성, 환상과 몽상의 방법으로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언어적 태도, 개인의 자폐적 내면세계에 대한 지나친 산문적 천착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조선일보)”고 한 전반적 평가는 시인들에게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문제를 요구하는 시적공감을 반성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두 번째의 공통된 견해는 시적 표현에 관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언어를 상징적으로 결합시키며 언어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강원일보)”는 언급이나, “상상력의 질감이 잘 살아 있고, 시에 나타나는 삶에 대한 진지성.....(경남신문)”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는 평가나 스스로 발명한 문장들이 빛났다. ......우선 다면적으로 시적 사유를 개진하는 힘이 있었다. (동아일보)”는 말과 더불어 좋게 말하면 말과 느낌을 적절히 짜 맞추는 솜씨들이 상당해서 안정감이 있었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보면 평면적이고, 어딘가 낯익은 형언과 방식에 기대어 있는 느낌이다. (세계일보)”라는 언술은 지나치게 표현기교에 탐닉하는 오늘의 시적경향에 대한 지적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 금년에 나타고 있는 시적 경향의 하나로 다소 독자와의 시적 공감이 가까워지고 있는 현상에 대하여 실험시 계열보다 대체로 서정적 경향.....참신한 개성과 강렬한 상상력의 촉수를 내뻗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보여준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쉬움 (경향신문)”이 있다는 평가도 음미할만하다 할 것이다.

 

4) 내용면에서 볼 때, 시적 표현에 대한 부분과 유사한 지적이지만 시의 산문화 경향에 대한 지적으로서 감각적인 표현은 뛰어났지만 주제를 집약하는 힘이 부족하고, 시적 이미지를 만드는데 있어 너무 산문적이라는 점에서 언어의 절제력이 아쉬웠다.(무등일보)”는 평가나 말재주만 가지고 시를 너무 쉽게 쓴다. 그런데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지 않아서 말의 유희만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문화일보)는 견해나 신인답지 않은 유려한 묘미를 터득 (불교신문)”하고 있다는 언급은 역시 시에 있어서의 표현과 정서적 깊이를 잘 연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한다는 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앞에서 지적하고 있는 언술과 다소 중첩되고 있지만, “모든 작품들의 길이가 너무 길고 요설이 많은 것이 우선 불만이었다. 그리고 도무지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작가의 의도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였다.(경상일보)”라는 평가나 전반적으로 장황하다는 느낌이 들게 해 아쉬웠다. 생각에 비해 언어들의 부피가 과도한 경우가 있었다. (국제신문)”는 전반적인 평가도 시적 깊이와 감동에 중점을 둘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6) “판박이에 가까운 관습적 언어를 보여주는 대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심의를 쏟은 것도 썩 긍정적으로 생각되었다. (경인일보)”는 말이나 문장이 힘차고, 쓰고 싶고 쓸 수밖에 없는 운명적 열정이 배어나고, 개성적인 스타일을 담보해야 한다.(서울신문)”는 평가는 시적 창의가 질과 양의 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인식을 언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7) 마지막으로 신춘문예에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서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시적 착지점에 닿은, 혹은 닿으려 하는 원고들이었다. 사소한 착상을 충분히 확장시킬 줄 알았고, 그렇게 확장된 세계에는 독특한 파토스가 담겨 있었다. (한국일보)”는 평가는 우리 시가 지양해 나가야할 지향점을 제시한 부분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4-2) 당선작에 대한 개별적인 심사의견

 

다음에는 이번 신춘문예 당선작품에 대한 각 신문사의 심사위원들에 의해 기술된 평가를 종합하여 보기로 한다.

여기에서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에 대한 견해들을 어느 정도 유추해 낼 수 있을 것이다.

 

*) 언어의 생식기가 퇴화된 절망적인 세상에서도 김서림은 시적 기율을 통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하늘에 운율이 돌면 첫 문장은 가슴지느러미부터 따뜻해졌다혹은 단어들이 몸 안에 환한 섬을 산란하는 것이었다라는 시 행에서 우리는 응모자의 시에 대한 신뢰를 흔감할 수 있었다.(강원일보)

*) 제목이 갖는 상징성과 장손의 삶을 바다와 연계한 구성력이 뛰어나며 뭍과 물의 관계를 쇠를 통해 형상화한 새로운 인식이 뛰어났다. 특히 자기 생각과 세계를 삶의 경험에 녹여내면서 끌고 나가는 힘은 시적 절실함에 충분히 값하고 있다. (경남신문)

*) 사물과 세상을 보는 안목이 안정되어 있고 따스하다는 점 (경상일보)

*) 바위에 달라붙은 미역줄기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을 활용하여 인생론적 깊이를 드러낸 수작이다. (경인일보)

*) ‘와 사물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가 믿음직스럽고, 말의 꼬리를 붙잡고 조근조근 할 말을 밟아나가는 말의 운용 방식 또한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경향신문)

*) 정교하게 구축된 사회체계나 윤리도덕의 그물에 포획되지 않는 작고 소박한 인간적 진실과 가치가 이들이 주목하는 자리였다. (광남일보)

*) 세입자의 생각과 감정을 담담하게 그리되 그것의 미묘한 변화를 잘 포착한 작품이었다. 갈등하는 마음속을 겉으로 드러냄은 물론 늙어감에 대한 한 여성의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표현했다. (국제신문)

*) 이미지가 활달하고 선명하다. 대상을 그려내고자 하는 치열함이 절로 읽힌다. 직유를 줄여 행간의 이미지를 더 증폭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덮고 그 치열한 힘이 그려낼 미래를 믿어보기로 했다. (농민신문)

*) 좋은 시는 스스로 종이를 박차고 나와 독자를 환대한다. 살아서 꿈틀거린다. 시의 명랑성이 잔치마당을 만들고 언어유희는 가락을 이루며, 그 노랫말이 현실이라는 구들장에서 온기를 끌어올리며 굴뚝연기처럼 하늘로 퍼진다. (대전일보)

*) 우선 다면적으로 시적 사유를 개진하는 힘이 있었다. (동아일보)

*) 모호하고 화법(話法)이 낯설지만, 우리는 그 낯섦을 날것의 감각으로 이해했다.....다양한 움직씨 활용으로 나타난다. 여섯은 여러 가닥으로 쪼개지고 끝내 셀 수 없는 빗줄기로 전화(轉化)한다. ‘여섯을 리듬에 실어 여러 겹의 의미로 변주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매일신문)

*) 단춧구멍과 바늘땀을 통해서 삶의 비의를 읽어 내는 참신한 시적 발상과 시적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유의 깊이가 돋보인 작품이다.

일상의 소재인 실과 바늘과 단춧구멍이 여러 겹의 언어의 층위를 이루면서 다양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어 이 시를 읽는 동안 한 겹 한 겹 껍질을 벗기는 언어의 맛을 느끼게 한다. (무등일보)

*) 시로 쓴 목판화의 구체적 풍경을 통해 시적 형성력을 완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호감이 갔다. .......자폐적 언어의 유희화가 왜곡된 대세를 이루고 있는 오늘의 한국 시단에서 이러한 구체적 형성력의 높이를 지닌 시를 만난 것은 큰 기쁨이다. (문화일보)

*) 현 사회 속의 하층 노동자의 삶을 사실적 사물들을 동원하여 참신하게 그려내고 있으면서 그것에 따뜻한 시선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성과 진정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미덕 (부산일보)

*) 신인답지 않은 유려한 묘미를 터득하고 있어서 창작의 연륜을 짐작케 한다. 불교신문 신춘문예라는 특수성에 호응하는 불교적 정서를 담는 고의조차 냉큼 벗어나고 있다. 시의 맵시가 녹아있다. (불교신문)

*) 세계에 대한 병리학적 진단은 현대시의 오랜 자세다. 지도와 처방전을, 모래와 모국어를, 침대와 바다에 대한 추문을 연결시키는 감각은 풍부하고 그 이미지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서울신문)

*) ‘빅풋은 무지무지하게 슬픈 상황인데 아버지의 당당함(‘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과 쾌활(‘왼발 오른 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그리고 엄마의 해학(‘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으로 상황을 뒤집어 보여준다. 상상력의 전복, 역설의 묘미를 깔끔하게 끌어낸 시다. (세계일보)

*) ‘공복죽은 나무 위에서 늦은 밥을 먹을 때/ 문은 닫히는 소리를 낸다는 쓸쓸하고 텅 빈 허기라는 감정을 낯설게 묘사한다. 게다가 뒤틀지 않은 평이한 언어로 생의 뒤틀림을 끄집어낸다. 공복이라는 발화는 화자에 의하면 당신이 하고 있는 무엇가만히 있게 가만히 두지 않는 시간이다.......또한 그 공복감은 우리 시에서 드문 서정이기도 하고 단순하되 겹을 가진 문장 역시 쉽사리 발견하기 힘든 재능이다. (영남일보)

*)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쓴 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표현에서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시들은 앞에서 지적한 시들의 단점을 거의 지니지 않고 있어 맛깔스런 느낌을 주는 시들이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현실에 치우치지 않고, 상상력의 유희를 즐길 줄 알면서도 시적 이미지가 난잡하거나 산만하지 않은 장점이 있었다. (영주일보)

*) 시대적 삶의 투시력이 엿보이는 시다. 오늘의 정치 현실을 통해 무엇이 우리 삶의 진실인가 질문을 던지는 시다. 그러나 단순히 정치 현실을 바탕으로 세태를 풍자한 시라기보다는 인간관계로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삶의 진실을 추구한 시다. (조선일보)

*) 시공(時空)을 한바탕에 융합시키며 형상화를 극진히 도모한 점이라든지, 한 마리의 거미를 통해 심도있게 통찰되는 사상(事象)의 본질을 교묘히 대칭시키며 박진(迫眞)하게 실감에 다가감이 절묘했다. (전북도민일보)

*) ‘귀촌이 함축하는 세계가 오늘의 농촌-시골마을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는 것은 물론 막연한 소문으로 피폐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의장은 뜻있게 보였다. (전북일보)

*) ‘전쟁의 시간은 방송에서는 전쟁이 종식됐으나 생활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 중이라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세계 내전과 국내 현실의 교직을 통해 서사적으로 전개된다. ‘물고기의 상징이 모호한 것은 약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역동성이 있고 의욕이 넘친다. (한경신문)

*) ‘전원 미풍 약풍 강풍은 작은 모티브에서 출발하여 무심하고 당돌한 스타일로 감각과 정서를 끌어내는 시였다. (한국일보)

*) '점등'은 주방의 벽등을 켜는 순간을 개성적으로 묘사하면서 사색한다. 빛이 들어와 어둠이 사라지는 찰나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이때 존재하는 소재와 상상들을 순발력 있게 포착해 역동적으로 제시하는 대목에서 당선자의 기량을 엿볼 수 있었다. (한라일보)

 

각 신문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하였으니 그 심사평이 당선작품에 대한 장점 위주로 드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점들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 시에서의 좋은 시에 대한 창조적 깊이를 어떻게 전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므로 그러한 관점을 찾아내 보도록 한다.

각 심사위원들의 견해와 작품에 대한 평가의 핵심을 요약해 보면 이번에 나타난 신춘문예 작품 당선 시에서 드러난 시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1)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따스한 시의 장점

2) 사회체계나 윤리도덕의 그물에 포획되지 않는 작고 소박한 인간적 진실과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시

3) 활달하며 선명하고 명랑한 감성을 보여주는 시

4) 심상의 미묘한 변화를 잘 포착한 시, 존재하는 소재와 상상들을 순발력 있게 포착한 시

5) 다면적으로 시적 사유를 개진하는 힘과 여러 겹의 의미로 변주하는 솜씨

6) 삶의 비의를 읽어 내는 참신한 시적 발상과 시적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유의 깊이가 돋보이는 작품

7) 감각적이고 유려한 표현의 문체

8) 상상력의 전복과 역설적 묘미를 터득하고 있는 시

9) 피폐화되어 가는 현실에 인식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역동성이 있고 의욕이 넘치는 시와 같은

형태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보면 5), 6), 7)항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시적 표현에 대한 새로움에 상당한 긍정적인 평가가 보인다.

시 속의 신선하고 발랄한, 수식적인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 주는 인상은 심사위원들의 심상에 영향을 주어 후광효과halo-effect로 작용되었을 가능성이 짙다.

진정한 표현의 아름다움은 표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이 이끌고 있는 감동적인 이미지와 그로인한 시적 상상력의 확장에 기여해야한다는 평범한 진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표현을 절절히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표현이 기능해야 하는 시적 감동이나 함축미를 고양高揚할 수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4) 2017년으로 본 시의 내면화 경향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시인들이 부딪치게 되어 있는 시대적인 공간에는 많은 부조리와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더구나 요즘처럼 소통의 부재라는 사회적 갈등이 폭넓게 퍼져가는 이 시대에 그러한 갈등의 공간을 담아낸 시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몇 개의 신문사의 사회성 짙은 작품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최근에야 알려진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문화 전반을 통제하려고 했던 정권의 의도를 생각한다면 우리 문학인의 대응은 매우 한심한 수준이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암묵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부산일보'허공에서 더 깊어지는 추위'는 현 사회 속의 하층 노동자의 삶을 사실적 사물들을 동원하여 참신하게 그려내고 있으면서 그것에 따뜻한 시선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일보애인은 시대적 삶의 투시력이 엿보이는 시로서 오늘의 정치 현실을 통해 무엇이 우리 삶의 진실인가 질문을 던지면서 단순히 정치 현실을 바탕으로 세태를 풍자한 시라기보다는 인간관계로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삶의 진실을 추구하여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실은 그 가치의 공존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면에서,

전북일보귀촌이 함축하는 세계가 오늘의 농촌-시골마을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는 것은 물론 막연한 소문으로 피폐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의장은 뜻있게 보였다는 점에서 시대적, 또는 다소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간접적인 접근을 한 시라고 생각된다.

몰론 우리 사회의 병폐라 할 수 있는 정치적 독선과 경제사회의 독점과 사유화에 대한 갈등의 폭발은 연말에 그 기폭점을 맞아 튀어나왔으므로 내년에는 좀 더 다른 양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 동안 권력의 암묵적인 억압에 순치되어 시인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인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우리 문단에도 그러한 영향으로 시적 내면화 경향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시대의 문학적 지향점을 찾기 어렵게 된 이면에는 사회 지도적 위치에 있는 시인들의 이기적인 태도와 바람보다 먼저 눕는피폐한 지식인(시인)의 암묵적 회피, 무관심이나 은둔 탓이었을 수도 있다.

이 시대의 이러한 현상은 정치적 억압에 순치된 자아검열에 의한 내면화 현상으로서 서정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버린 현대인의 내면 응시와 왜소화 현상의 발로라 한다면 지나친 평가일까?

 

 

2. 신춘문예 작품 당선작과 심사평 요약

 

이미 앞에서 여러 가지 관점에서의 변화와 경향을 살펴보았으므로 이미 제시된 심사위원들의 고견을 존중하여 개별 작품에 대한 소견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것은 시를 심사하는 심사위원의 개성과 시적 태도와도 관련되는 일이고, 심사위원이 가진 시론과 심미안에 의해 당선작품을 선하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신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각 신문사의 당선작품과 심사평을 요약하여 제시하고 개별적인 시를 필자 개인의 자의적인 감상이지만 그 시를 감상하는 수준의 간단한 시 감상을 곁들여 보는 것으로 갈음하려 한다.

 

2017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갈라파고스 / 김태인

 

 

어둠이 입술에 닿자 몸 안의 단어들이 수척해졌다 야윈 몸을 안고 섬 밖을 나갔다가 새벽이 오면 회귀하는 조류(潮流), 금이 간 말에서 아픈 단어가 태어나고 다 자란 말은 눈가 주름을 열고 떠나갔다

 

남겨진 말의 귀를 열면 치어들이 지느러미를 털며 들이 닥쳤다. 은어(隱語) 썩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욕설이 귀를 깨문 몸 안에 손을 넣어 상한 심경을 꺼내 놓자 말수 줄은 언어의 생식기는 퇴화되어 갔다

 

파도를 멀리 밀어낸 밤은 등대를 잡고 주저앉았다 부레를 떼어낸 언어는 외딴섬에 스스로를 격리시켰다 발굽에 물갈퀴가 생기고 단어에 부리가 자랐다 비늘이 깃털로 변해 조류(鳥類)로 진화했지만 텅 빈 죽지에 감춘 내재율을 버리지는 못하였다

 

아주 오래된 하늘에 운율이 돌면 첫 문장은 가슴지느러미부터 따뜻해졌다 야윈 말들이 하나 둘 돌아온 섬은 언어의 기원에 종말을 고하고, 밤은 더 이상 섬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동쪽으로 흘러든 난류는 바다거북 등껍질에서 불가사의한 문자를 캐고 암염처럼 굳어버린 죽은 언어를 떼내었다

 

남쪽 염전에서는 느린 운율과 음가들이 뿔 고동의 귓가에서 보송보송 말라갔다 새벽이 되어 방에 불을 끄면 되살아난 단어들이 몸 안에 환한 섬을 산란하는 것이었다

 

 

*갈라파고스 - 찰스 다윈이 발견한 섬 혹은 제도.

김태인(43)전북 남원 동국대 일반대학원 졸업

 

 

 

 

[2017 강원일보 신춘문예-심사평]

절망적인 세상속 시에 대한 신뢰 돋보여

........김서림은 언어의 문제를 갈라파고스라는 섬과 상징적으로 결합시키며 언어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언어의 생식기가 퇴화된 절망적인 세상에서도 김서림은 시적 기율을 통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주 오래된 하늘에 운율이 돌면 첫 문장은 가슴지느러미부터 따뜻해졌다혹은 단어들이 몸 안에 환한 섬을 산란하는 것이었다라는 시 행에서 우리는 응모자의 시에 대한 신뢰를 흔감할 수 있었다. / 이영춘·고진하 시인

 

시 감상 ; 언어가 두되에서 사고를 통하여 밖으로 튀어나가기 전에 자기보호 본능의 노출이 의미하는 것은 언어가 스스로 사회화과정을 겪는 것과도 같다. 그런 의미에서 갈라파고스는 언어가 진화하는 과정의 실체를 담아내기 적당한 상징이었을 것 같다.

어둠이 입술에 닿자 몸 안의 단어들이 수척해졌다는 화두를 시작으로 언어의 순치과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시로 읽힌다. 다시 말하면 어둠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을 지배하는 음울한 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사회의 삶이란 그런 의미에서 강한 자와 약한 자의 대결구도 속에서 순응 또는 순치라는 원시적 진화를 거듭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심성 속에 잠재하고 있는 강한 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하여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작금의 세태에 대한 암묵적인 퇴화과정을 현란하고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여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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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꽃게- 최병철

 

 

장손은 섬이었다

할아버지가 펼쳐놓은 바다에 담겨 있던 당신

 

잠시 뭍에서 맡은 쇠 냄새만

해안선을 따라 옆으로 옆으로 맴돌고 있었다

바다의 모퉁이에 헐렁하게 용접되어 있었지만

기운 기둥을 일으켜 촘촘하게 그물을 걸고

부력으로 집안을 밀어 올렸다

뱃머리가 바다를 가를 때마다

철공소에서 대문을 만들었던 시간들이 솟구쳐 올랐다

가풍의 출입을 철대문으로 막고자 했는지 모르겠다

배를 저어갈 때 방향을 잡아 주던 어머니가

물 밑으로 가라앉고

철의 껍질에서 탈피했다

조금씩 자유로워질 때쯤

딱딱해진 가슴 위로 그물을 펼치고

휑한 구멍을 꿰매고 있었다

물때를 기다렸던 밤

팽팽한 수면을 찢고

그렁그렁 달빛이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바다가 심심해지면 안부가 궁금해지는 법

기다림만 키우다 통발에 자신을 가두던 당신

절단기로 섬을 해체하고

배를 수평선 바깥으로 몰아 마지막 항해를 시작했지만

집게발이 파도를 물고 놓지 않는다

 

 

최병철1965년 경남 남해 출생 1984년 남해종합고등학교 졸업 시우리회원 고운농원 대표

 

 

 

 

[2017 경남신문 신춘문예 '' 심사평]

삶의 경험에 녹여낸 시적 절실함 뛰어나

......... 최병철의 꽃게는 제목이 갖는 상징성과 장손의 삶을 바다와 연계한 구성력이 뛰어나며 뭍과 물의 관계를 쇠를 통해 형상화한 새로운 인식이 뛰어났다. 특히 자기 생각과 세계를 삶의 경험에 녹여내면서 끌고 나가는 힘은 시적 절실함에 충분히 값하고 있다. 다소 거친 표현도 있지만 상상력의 질감이 잘 살아 있고, 시에 나타나는 삶에 대한 진지성은 자기만의 세계를 꾸준히 구축해 나가겠다는 의지로 보여 신뢰감을 갖게 했다.

(심사위원 성선경·배한봉)

 

시 감상 ; 대대로 살아온 할아버지의 삶을 이어받고 바다를 떠나지 못한 장손은 외톨이가 된 섬으로 묘사된다. 뭍으로 나가고 싶은 유혹이 어찌 없었을까. 바다와 엮여있는 삶을 용접된 삶으로 치화시킨 상상력이 독특하고 긴밀하다.

바다로 나갈 때 힘을 돋우어주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도 바다의 삶을 떠나지 못하는 장손의 삶은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발목잡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농어민들의 삶과도 무던히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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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고래를 격려하며 / 김예진

 

 

외벽에 녹슨 고래 몇 마리

물 바깥으로 나와 숨을 쉰 흔적

그 숨을 찾는 심장소리가 손끝에서 떨렸다

 

혼신을 다해 호기롭게 살았을

먼 우주를 되짚어도 더 이상의 숨은 없다

 

때때로 바람이었다가 절벽이었다가

수세기의 흔적이

수 천 년 거리에서

천변 반구대를 서성였을

 

내세의 염원과 사랑을 갈구하는 수단이 손아귀 힘이었다면

 

피눈물로 쪼아서 새긴 그 기원이

울음에 갇혀 해답을 기다리는 동안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지는 늙은 고래가 볼모로 잡혀있다

녹슨 세월이 한데 엉겨 붙어서

 

아직 물을 건너지 못한 배고픔과 서러움

매질과 학대와 손가락질

슬픈 작살에 핏물이 번지고

뼈와 살이 바람으로 흩어지고

 

다른 행성에 잘못 온 것처럼

가압류 딱지가 붙어버린

고래의 적막은 한겨울처럼 쓸쓸하고

세상의 기억은 겨울 끝에 머물러 있다

 

 

약력1959년 경남 진주 출생한국방송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 경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세상을 보는 따스한 안목이 마음을 울려

........ 작품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고 불편한 마음이 없지 않았고 자꾸만 뒤가 돌아보아졌습니다.........모든 작품들의 길이가 너무 길고 요설이 많은 것이 우선 불만이었습니다. 그리고 도무지 무엇을 쓰려고 했는지 작가의 의도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였습니다.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동인데 이쪽에서 억지로 감동을 좀 해보려고 그래도 감동이란 것이 잘 되지 않는 것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마음의 울림이 가는 쪽은 고래를 격려하며였습니다. 사물과 세상을 보는 안목이 안정되어 있고 따스하다는 점도 선자의 마음을 얻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 심사위원 ; 나태주 시인)

약력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시집 <대숲 아래서> 37권 출간43년간 초등교단 생활 후 정년 퇴임공주 풀꽃문학관 설립·운영현재 공주문화원장

시 감상 ; 어느 반구대 암각화에 나타난 고래의 그림을 보며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려낸 서정적 풍경을 시화한 작품으로 읽혀진다. 수 천 년 전의 고래가 놀다가 잡혔을 그 시기에 겪었을 고래의 모습을 아직 물을 건너지 못한 배고픔과 서러움 / 매질과 학대와 손가락질 / 슬픈 작살에 핏물이 번지고 / 뼈와 살이 바람으로 흩어지고로 그려내어 인간의 행위에 대한 성찰과 따스한 연민의 정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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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미역귀 / 성영희

 

 

미역은 귀로 산다

바위를 파고 듣는 미역줄기들

견내량 세찬 물길에 소용돌이로 붙어살다가

12첩 반상에 진수(珍羞)로 올려 졌다고 했던가

깜깜한 청력으로도 파도처럼 일어서는 돌의 꽃

귀로 자생하는 유연한 물살은

해초들의 텃밭 아닐까

 

미역을 따고나면 바위는 한동안 난청을 앓는다

돌의 포자인가,

물의 갈기인가, 움켜쥔 귀를 놓으면

어지러운 소리들은 수면 위로 올라와

물결이 된다

파도가 지날 때마다

온몸으로 흘려 쓰는 해초들의 수중악보

흘려 쓴 음표라고 함부로 고쳐 부르지 마라

얇고 가느다란 음파로도 춤을 추는

물의 하체다

 

저 깊은 곳으로부터 헤엄쳐 온 물의 후음이

긴 파도를 펼치는 시간

잠에서 깬 귀들이 쫑긋쫑긋 햇살을 읽는다

 

물결을 말리면 저런 모양이 될까

햇살을 만나면 야멸치게 물의 뼈를 버리는

바짝 마른 파도 한 뭇

 

 

 

 

[2017 경인일보 신춘문예]심사평

 

인생론적 깊이 구체화한 은유, 바위·미역이 엮은 바다풍경 '우리모습'

.............많은 작품이 만만찮은 안목과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시단에서 주류를 형성한 시풍을 답습하거나 판박이에 가까운 관습적 언어를 보여주는 대신, 스스로의 경험적 구체성에 심의를 쏟은 것도 썩 긍정적으로 생각되었다.

.........성영희 씨의 '미역귀', 바위에 달라붙은 미역줄기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을 활용하여 인생론적 깊이를 드러낸 수작이다. ''로 살아가는 미역은 비록 깜깜한 청력을 가졌을지라도 언제나 파도처럼 일어서는 '돌의 꽃'이다. 그런데 미역을 따고나면 바위는 난청을 앓게 되고, 그렇게 바위와 미역이 구성하는 바다 풍경이 잠에서 깬 귀를 열어 다시 햇살을 읽어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쫑긋쫑긋' 삶의 이치를 듣게 되는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은유해준다. 심사위원 ; 신달자(시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교수)

 

시 감상 ; 바다에서 따올리는 미역을 보며 미역귀를 바위의 귀로 인식하는---“미역을 따고나면 바위는 한동안 난청을 앓는다---시인의 눈길이 상큼하다.

쉽고 넉넉하게 읽히는 시로, 바다 속에서 일어나는 모습들을 우리네 삶의 모습으로 환치시켜 읽어내는 시적 표현기교가 넘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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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백색소음 / 이다희

 

 

조용히 눈을 떠요. 눈을 뜰 때에는 조용히 뜹니다. 눈꺼풀이 하는 일은 소란스럽지 않아요. 물건들이 어렴풋한 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눈길로 오래 더듬으면 덩어리에 날이 생기죠. 나는 물건들과의 이러한 친교에 순응하는 편입니다.

 

벽에 붙은 선반에 대하여,

나에게 선반은 평평하지만 선반 입장에서는

필사의 직립(直立)이 아니겠습니까?

 

옆집에서는 담을 높이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점점 높아지는 담에 대하여, 시멘트가 채 마르기 전에 누군가 적어 놓는 이름에 대하여. 며칠째, 습한 날씨가 계속되고 투명한 문신 같은 이름이 피부에 내려앉습니다.

 

피부가 세상에 가장 먼저 나가는 마중이라면

 

나는 이 마중에 실패하는 기분이 듭니다. 나는 이 습기에 순응합니다.

하지만 만약 손에 닿지도 않은 컵이 미끄러진다면

컵을 믿겠습니까? 미끄러짐을 믿겠습니까?

 

유일한 목격자로서

이 비밀을 어떻게 옮겨 놓을 수 있을까요.

 

도대체 이 습기는 누구의 이름입니까.

 

눈꺼풀을 닫아도 닫아지지 않는 눈이

내가 사라지고도 내 곁을 지키는 잠이

 

오래 나를 지켜봅니다.

 

 

1990년 대전 출생. 광주 거주조선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2017 경향 신춘문예]시부문 심사평 -

와 사물의 의미 탐구하는 자세 믿음직

......... 대체로 기존의 시적 관습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그 이상으로 말을 정확하게 운용하고자 하는 노력은 부족한 듯했다. 예심 통과작 중에서 몇 편은 구체적 정황을 나타내는 단어의 앞뒤에 모호한 관념어나 철학적 냄새를 풍기는 용어를 결합하여 그 정황을 애매하게 뭉개버리는 시들이 있었다. 또는 이제는 사라져 버려 우리의 현재 생활과는 동떨어진 시골 전경이나 자연을 낭만적으로 그리며 이상화하여 사실감을 뭉개버리는 시들도 있었다.

..........이 세계 속에서 와 사물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가 믿음직스럽고, 말의 꼬리를 붙잡고 조근조근 할 말을 밟아나가는 말의 운용 방식 또한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당선작과 함께 응모한 나머지 작품들도 당선작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차분하고 여유 있는 목소리로 끈기있게 밀고 나가는 자세에서 저력이 느껴졌다.

.........응모작들은 실험시 계열보다 대체로 서정적 경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서정적 상상력을 통해 팍팍한 현실을 극복하려는 흐름이 감지되었다. 그러나 참신한 개성과 강렬한 상상력의 촉수를 내뻗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보여준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새로운 자기만의 세계 창조는 언어와 형식의 실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물에 대한 인식이나 세계에 대한 이해를 자기만의 언어로 패기 있게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 심사위원 ; 이시영·최정례 | 시인

 

시 감상 ; 자신의 눈에 보이는 사물에 대한 의미를 예각적 시선으로 탐색하여 독자에게 새롭게 생성되는 이미지를 던져 줌으로서 사물에 대한 상상력의 또 다른 공간을 보여 준다.

눈을 떴을 때 감지되는 사물, 선반과 담과 담을 쌓는 씨멘트와 컵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으나 이런 시도를 통해서 전개하고자 하는 정서적 중심은 허약해 보인다.

제목 역시 백색소음이라는 상징적 제목이 시 전체를 포용하여 의미망을 형성하는 것에는 못미쳐 생뚱맞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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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광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스웨터 / 황성용

 

 

엄마 영정사진을 찍는 날

 

일생의 좌중을 한 번에 멈추고 그 안에서 골몰히 앞을 바라보는 한방의 시선, 시장 냄새도 들어간다

 

느슨했던 안이 넘어졌는지 엄마의 얼굴이 카메라 앞에서 손님 쪽으로 살짝 기운다

 

엄마 스스로 올올이 물 수 있는 어금니 하나로 얼굴을 살짝 들어 올린다 힘들었던 무게는 내리고, 쪼그렸던 다리는 반듯이 편다

 

푸르른 날과 무성한 날을 곱해도 영이 되는 적자의 숲에서 내려오지 못해 항상 엄마의 앞치마는 땀으로 젖어 있다

 

비누칠을 해도 빠지지 않을 때 방망이질의 쓰임에 따라 한 방에 끝내려고 사진사는 필요 없는 각도를 버린다

 

버릴 컷을 버려진 시간으로 남아 있을 때 엄마는 살림의 다이어트를 위해 땀방울 하나하나 털실로 꿰매는 절약 스웨터(sweater)

 

코가 빠져도 스웨터의 구멍을 버리지 않는 센스, 엄마는 유산의 단추 하나를 남겨둔다

 

나는 아침을 먹기 전에 빼빼한 삶의 스웨터로 찍힌 영정사진을 찾으러 간다

 

 

*) 약력 ; 1966년 전남 해남 출생충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2015 미래시학 신인상

 

 

 

 

[2017 광남일보 신춘문예 시]심사평

시적 대상에 대한 애정어린 관찰 돋보여

참된 시인에게 한 세계의 위대함은 그 크기나 부피에 있지 않다. 그들은 현상적으로 볼 때 지극히 사소하거나 쉬 눈에 띄지 않아 지나치기 쉬운 세부적 진실에 더 민감하다. 통상적인 척도로 따질 수 없는 값어치라 할 수 없는 값어치에 주목하는, 아주 작은 움직임 하나에서도 넉넉히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할 줄 아는 자가 바로 올바른 의미의 시인이기 때문이다.

..............공통적으로 이들이 접근하고자 하는 시의 자리는 결코 화려하거나 거대한 곳이 아니다. 정교하게 구축된 사회체계나 윤리도덕의 그물에 포획되지 않는 작고 소박한 인간적 진실과 가치가 이들이 주목하는 자리였다. / 심사위원 ; 임동확 시인

 

시 감상 ; 아주 특별한 시적 의도는 아니지만 엄마'의 영정을 찍는 모습---평생 땀에 절은 스웨터로 버텨온 것이 누구를 위한 희생이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여러번 깁고 다듬으며 입어온 스웨터를 입고 영정 사진을 찍는 엄마의 생애를 통속적이지 않은 인간적 눈길로 포착해낸 시인의 눈길이 은근하다. 시의 전반부에 나타나는 엄마의 겉모습을 시적 표현요소인 낯설게 하기의 기법으로 이끌어내어 다양한 모습을 희생적이고 소박한 삶의 모습이 잘 드러나도록 배열하여 정서적 소통을 이끌어내는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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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질감 /김순옥

 

 

방을 빼라는 집

주인의 목소리가 뜨거워

엉뚱한 방에 들어가 누워보아요

문지방에 끼인 돌멩이가 으스러져요

감긴 눈을 씹었어요

생선꼬리라도 주세요

 

돌멩이가 입 안에서 굴러다녀요

미안해요 뱉을 수가 없어요

입 깊숙이 밀어 넣어 볼까요?

 

늙은 복숭아 껍질에 돋은 거웃이

천일동안 타고 있대요

꽃을 달고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요

 

노랗게 곪아가는 눈

저만치

나는 엄마보다 더 늙었고

낯익은 젊은 여자 하나

생뚱맞은 얼굴로 거울을 빠져 나가요

 

불 꺼진 방 아랫목에 우두커니

앉아 있어요

 

 

약력=1967년 경북 선산 출생. 울산 거주. 2015년 제39회 방송대문학상 수상.

 

 

 

 

[2017 국제신문 신춘문예] 심사평

여성 세입자 미묘한 감정 변화 섬세하게 포착

......... 신선한 감각의 내용도 좋았고, 고유한 육성도 청취할 수 있었다. 다만 전반적으로 장황하다는 느낌이 들게 해 아쉬웠다. 생각에 비해 언어들의 부피가 과도한 경우가 있었다.

...........'질감'은 세입자의 생각과 감정을 담담하게 그리되 그것의 미묘한 변화를 잘 포착한 작품이었다. 갈등하는 마음속을 겉으로 드러냄은 물론 늙어감에 대한 한 여성의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표현했다. / 심사위원 ; 곽재구 강영환 문태준 시인

 

시 감상 ; 주인으로부터 방을 빼달라는 요청을 받고 자신의 내면에서 갈등하며 은밀하게 드러내면서 늙어가는 여성적 심상을 잘 포착하여 드러내고 있다. 문지방에 끼인 돌멩이나 입안에서 돌아다니는 돌멩이는 세입자인 그가 내뱉고 싶은 말이었으리라. 그러한 카타르시스가 교묘하게 직조되어 시적 정서를 아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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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잔등노을 / 정연희

 

 

소잔등에 부르르

바람이 올라타고 있다

곱슬거리는 바람을 쫓는 꼬리는

등뼈를 타고 나간 장식

억센 풀은 뿔이 되고

오래 되새김한 무료는 꼬리 끝에서 춤춘다

 

스프링을 닮은 잔등 속 간지러움은

온갖 풀끝을 탐식한 벌

한 마리 꽃의 몸속에 피는 봄

연한 풀잎이 키운 한 마리 소는

쌓아 놓은 풀 더미 같고

잔등은 가혹한 수레의 우두머리 같다

 

논두렁 길 따라 비스듬히 누운

온돌방 같은 소 한 마리

눈 안에 풀밭과

코뚜레 꿴 굴레의 말()을 숨기는

저 순응의 천성

가지런한 빗줄기가 껌벅 껌벅거린다

 

융단처럼 펼쳐놓은

노을빛 잔등이 봄빛으로 밝다

주인 닮은 뿔처럼 몸 기우는 날은

금방 쏟아질 것 같은 잔등의 딱지가

철석철석 박자를 맞추고

저 불그스름한 노을은

유순한 소의 엉덩짝을 산처럼 넘는다

 

 

정연희 1958년 전남 보성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문학과 졸업 경기 용인수지우체국 근무 김유정 기억하기·등대문학상·생명문학상·동서문학상 수상, 김삿갓 전국시낭송대회 우수상 수상 용인문학회·동서문학회 회원

 

 

 

 

[2017 농민신문 신춘문예-]심사평

거칠더라도 사람냄새 묻어나는 작품

대상 그려내고자 하는 치열함 돋보여

 

.........사람 냄새가 많이 묻어나는 작품을 선호하는, 응모작을 통해 앞날의 작품을 감히 예측해보는 선자들의 취향이 반영되었음을 실토한다.

.........당선작으로 결정한 잔등 노을은 이미지가 활달하고 선명하다. 대상을 그려내고자 하는 치열함이 절로 읽힌다. 직유를 줄여 행간의 이미지를 더 증폭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덮고 그 치열한 힘이 그려낼 미래를 믿어보기로 했다. 치열함으로 치열함마저 넘은 담담한 마음이 이미 싹트고 있음도 소중히 보았다.   / 심사위원 ; 함민복, 황인숙 시인

 

시 감상 ; “잔등노을은 보이는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하여 던져주는 이미지를 통해 집 안의 한 역할을 견디어내는 우직한 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비교적 단순하고 통속적일 수 있는 언사를 비껴가는 이미지로 대상에 충실한 시적정서를 담아내고 있으나 그 깊이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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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페인트 공 - 성영희

 

 

그에게 깨끗한 옷이란 없다

한 가닥 밧줄을 뽑으며 사는 사내

거미처럼 외벽에 붙어

어느 날은 창과 벽을 묻혀오고

또 어떤 날은 흘러내리는 지붕을 묻혀 돌아온다

사다리를 오르거나 밧줄을 타거나

한결같이 허공에 뜬 얼룩진 옷

얼마나 더 흘러내려야 저 절벽 꼭대기에

깃발 하나 꽂을 수 있나

 

저것은 공중에 찍힌 데칼코마니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작업복이다

저렇게 화려한 옷이

일상복이 되지 못하는 것은

끊임없이 보호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리 거미가 정글을 탈출할 때

죽음에 쓸 밑줄까지 품고 나오듯

공중을 거쳐 안착한 거미들의 거푸집

 

하루 열두 번씩 변한다는 카멜레온도

마지막엔 제 색깔을 찾는다는데

하나의 직업과 함께 끝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가 내려온 벽면에는 푸른 싹이 자라고

너덜거리는 작업복에도

온갖 색의 싹들이 돋아나 있다

 

 

 

 

[2017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심사평

"좋은 시는 종이를 박차고 나와 독자를 환대한다"

..........원고를 펼칠 때마다 꽃향기가 일고 꽃씨가 터졌다. 오래된 거름냄새가 풍겼다. 논두렁의 제비꽃부터 도심 복판의 팬지까지 다양한 봄 풍경을 만났다. 어느 꽃은 수증기가 꽉 찬 하우스에서 자신만의 시적 포즈로, 분간할 수 없는 시야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제 꽃잎의 빛깔만을 자랑하느라고 열매와 뿌리의 둥근 사색과 사투를 다 담아내지 못한 경우는 북을 돋워주고 싶었다. 꽃대나 이파리만으로도 땅 속 구근과 꽃씨의 과거와 꼬투리의 미래까지 볼 수 있는 여백이 큰 작품을 기다렸다. 전년보다 전반적으로 작품 수준이 향상이 되었고 신선한 작품이 눈에 많이 띄었다.

.........당선의 영광은 자연스레 인천의 성영희 시인에게로 모아졌다. 좋은 시는 스스로 종이를 박차고 나와 독자를 환대한다. 살아서 꿈틀거린다. 시의 명랑성이 잔치마당을 만들고 언어유희는 가락을 이루며, 그 노랫말이 현실이라는 구들장에서 온기를 끌어올리며 굴뚝연기처럼 하늘로 퍼진다. / 심사위원 ; 나태주 시인, 이정록 시인

 

시 감상 ; “페인트 공에서는 얼룩진 옷을 입고 허공에서 절벽을 타고 일하는 위태로운 삶을 고난이나 각박함 속에 가두지 않고고 그 삶을 싱그럽게 풀어내고 있다는 긍정의 노력과 언어의 정치한 배열을 보게 한다.

하나의 직업과 함께 끝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그가 내려온 벽면에는 푸른 싹이 자라고 / 너덜거리는 작업복에도 / 온갖 색의 싹들이 돋아나 있다에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삶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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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손의 에세이 / 김기형

 

 

손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굿모닝 굿모닝

손에 손을 주거나 다른 것을 주지 말아야 한다

손을 없게 하자

침묵의 완전한 몸을 세우기 위해서 어느 순간 손을 높이,

높이 던지겠다

 

손이 아닌 채로 돌아와 주면 좋을 일

손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면 좋을 것이다 굿모닝 굿모닝

 

각오가 필요하다 나에게 손이 필요 없습니다말할 수 있는 일종의

 

나는 아직 손을 예찬하고 나는 아직도 여전히 손을 사랑하고 있다 손의 지시와 손의 의지에 의존하여 손과 함께 가고 있다 손과 함께 머문 곳이 많다 사실이다 나는 손을 포기하지 못하였다 제발 손이여라고 부르고 있다 제발 손이여 너의 감각을 나에게 다오, 너의 중간과 끝, 뭉뚝한 말들을 나에게 소리치게 해 다오’’라고 외친다 손이 더 빠르게 가서 말할 때, 나는 손에게 경배하는 것이다

 

손의 탈출은 없다

 

다만 손들이 떨어진 골목을 찾고 있다

해안가에 앉아 손도 없고 목도 없는 생물들에게서 그들의 뱃가죽을 보면서 골목을 뒤진다!

 

손의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는다 손은 쉬지 않는다 손은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손은 자신이 팔딱거리는 물고기 보다 훨씬 더 생동하고 멀리간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손이 말하는 불필요, 손이 가지려 하지 않는 얼굴

 

손은 얼굴을 때린다 친다 부순다 허물기 위해서 진흙을 바른다 손은 으깰 수 있다 손은 멀리 던질 힘이 있다 손이 손을 부른다 손이 나타나면 눈을 뜨고 있던 얼굴들이 모두 눈을 감고 손에게 고분하다 손에게 말하지 않고 손에게 이야기를 기다린다 손은 다른 침묵을 가진다

 

손의 얼개가 거미줄처럼

거미줄과 거미줄 그리고 또 다른 거미줄이 모여든 것처럼 내빼지 못할 통로를 연다

손 사이에서 망각한다 손 안에서 정신을 잃는다 손의 춤을 본다 그 춤을 보면서 죽어갈 것이다

스러져가는 얼굴들이 감기는 눈을 어쩌지 못한다 나는 손에서 조각이 난다

손을 감출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울었지만 동그랗게 몸을 만 손이 어떤 불을 피우는지, 무엇을 터뜨리려고 굳세어지는지

이 공포 속에서 손에 대한 복종으로 계속 심장이 뛴다고 말한다

 

손을 놓고 가만히

 

탁자 앞으로 돌아온다 손이 응시한다 손이 그대로 있겠다고 한다

손이 뒤를 본다

손을 뗀다 반짝하고 떨어진다

 

 

1982년 서울 출생 강남대 국문과 졸업 건국대 국어교육과 석사

 

 

 

 

[2017 동아일보 신춘문예]심사평

손을 매개로 한 전개 시적 사유확장 돋보여

.........응모된 시들이 고루 안정적이고, 스스로 발명한 문장들이 빛났다. ‘손의 에세이5편의 시는 우선 다면적으로 시적 사유를 개진하는 힘이 있었다. 이를테면 손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손을 없애 보고, 손과 함께 머문 곳을 생각하고, 얼굴을 없앨 수 있는 손을 그려내고, 손의 얼개를 떠올리고, 손에 의해 부서지면서 손의 통치를 생각해 보는 전개가 돋보였다. 작은 지점들을 통과해 나가면서 큰 무늬를 그려내는 확장이 좋았다. / 황현산 문학평론가·김혜순 시인(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 감상 ; “을 통한 표현을 매개로 손에 대한 상상력의 확장을 본다. ‘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이 하는 일에 대한 긍정과 부정의 정황을 생각하고 에 대한 다면적인 사유를 곁들인 작품이지만 군데군데 억지스러운 상상을 이끌어내고 있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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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두꺼운 부재(不在) /추프랑카

 

 

안 오던 비가 뜰층계에도 온다 그녀가 마늘을 깐다 여섯 쪽 마늘에 가랑비

 

육손이 그녀가 손가락 다섯 개에 오리발가락 하나를 까면 다섯 쪽 마늘은 쓰리고, 오그라져 붙은 마늘 한 쪽에 맺히는 빗방울, 오리발가락 다섯 개에 손가락 하나를 까면 바람비는 뜰층계에 양서류처럼 뛰어내리고, 타일과 타일 사이 당신 낯빛 닮은 바랜 시멘트, 그녀가 한사코 층계에 앉아 발끝을 오므리고 마늘을 깐다

 

매운 하늘을 휘젓는 비의 꼬리

 

마늘을 깐다 한 줌의 깊이에 씨를 묻고, 알뿌리 키우던 마늘밭에서 흙 탈탈 털어낸, 당신 없는 뜰층계에서 통증의 꼬리 하나씩 눈을 뜨며 낱낱이 톨 쪼개고 나와야 할 마늘쪽들, 층계 갈라진 틈 틈으로 촘촘하게 내리는 비, 집어넣는 비, 비의 꼬리도 꿰맬 듯 웅크려 앉아 그녀가 마늘을 깐다. 묵은 마늘껍질처럼 벗겨져, 하얗게, 날아가 버리는 맨종아리의 육남매 비안에 스며 있는 그늘의 표정으로 여섯 해, 꿈속 수면에 번지던 당신 뜰층계에 불쑥 붐비는 당신의 이름, 아멘 아멘 아멘 마늘은 여섯 쪽이고 육손이 그녀 뒤뚱거리며, 오리발가락 여섯 개에 손가락 여섯 개를 깐다

 

세 시에 한번 멎었다가 생각난 듯 쿵, 쿵 아멘을 들이받으며 아직 다 닳지 않은 비가, 다시 여러 가닥으로 쪼개진다

 

 

<약력> 추프랑카 / 1966년 경북 달성 출생./ 국문학과`행정학 전공.

 

 

 

 

[2017 매일신문 신춘문예]심사평

모호한 화법이지만 '여섯' 리듬의 변주 뛰어나

..........한 교재로 시를 배운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시적인 것에 갇히면 날것의 감각과 낡은 작법(作法)을 깨고 부수는 신인의 예기(銳氣)를 드러내기 힘들다.

..........추프랑카의 '두꺼운 부재(不在)'는 모호하고 화법(話法)이 낯설지만, 우리는 그 낯섦을 날것의 감각으로 이해했다. 여섯 쪽 마늘, 육손이, 여섯 해, 육 남매 등에서 여섯은 잉여고, 덧나고 아픈 상처다. 시인은 상처를 화석화하고 정적인 것으로 소모하지 않는다. 이 특이점은 까고, 벗기고, 날아가고, 스미고, 붐비고, 들이받고, 쪼개지고등등 다양한 움직씨 활용으로 나타난다. ‘여섯은 여러 가닥으로 쪼개지고 끝내 셀 수 없는 빗줄기로 전화(轉化)한다. ‘여섯을 리듬에 실어 여러 겹의 의미로 변주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 심사 : 장석주(시인), 장옥관(시인`계명대 교수)

시 감상 ; “두꺼운 부재는 제목에서부터 모호하다. 시 속에 장치된 언술을 통하여 어떠한 부재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소위 육쪽 마늘을 까는 행위에 얹고 싶었던 사상은 무엇일까? ‘여섯이라는 잉여 혹은 불완전성 속에 등장하는 동사들이 활동적 이미지가 운율을 통한 부지런한 움직임은 보여주지만 육남매, 여섯 해, 여섯 쪽, 육손이, 오리발가락 여섯 개, 손가락 여섯 개 등의 여섯에 대한 잉여나 불완전성이 주려는 의미는 무엇인지 선명하게 잡히지 않는 모호함을 극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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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버튼홀스티치* / 권성은(본명 권옥희)

 

 

이 길은 올 풀린 기억이 삐져나오지 못하도록 팔순의 노모 허리 꺾어 기역자로 걷는 길이다 따라서 이 길은 더 이상 직선으로 갈 수 없다 불안에서 탄생한 은 처음 나온 구멍 근처에서 자주 멈춘다 구멍은 길 위에서 흔들리는 실밥 같은 손짓을 안으로 쟁인다 늘 뾰족한 시간은 구멍을 향하여 한 땀 길 떠난다 마지막 좁은 바늘 길 둥글게 휘돌아 간다

 

기역에서 기억으로 난 길이 춥다 더 이상 갈 수도 없고 멈출 수 없는 매듭의 위태로운 실의 시간을 허리 굽은 늙은 겨울이 걸어간다 최후의 바늘이 단추의 목을 감싸는 순간 길은 기억으로 둥글게 말린다

 

그러므로 길 위에서 바늘의 행방을 묻지 말 것 마지막 길을 떠나는 허기진 물음표들, 억압과 자유, 셀 수 없이 많은 고통의 순간이 찾아와도 언제나

 

구멍을 향하여 바늘로 질문하는 한 땀의 생

 

구멍은 늘 춥다

 

 

*버튼홀 스티치 [buttonhole stitch] 주로 단춧구멍이나 가장자리의 실이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휘갑쳐 뜨는 방법

 

 

 

 

 

[2017 무등일보 신춘문예]심사평

참신한 시적 발상과 사유의 깊이가 돋보여

....... 감각적인 표현은 뛰어났지만 주제를 집약하는 힘이 부족하고, 시적 이미지를 만드는데 있어 너무 산문적이라는 점에서 언어의 절제력이 아쉬웠다.

.........버튼홀스티치는 단춧구멍과 바늘땀을 통해서 삶의 비의를 읽어 내는 참신한 시적 발상과 시적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유의 깊이가 돋보인 작품이다.

일상의 소재인 실과 바늘과 단춧구멍이 여러 겹의 언어의 층위를 이루면서 다양한 의미를 함의하고 있어 이 시를 읽는 동안 한 겹 한 겹 껍질을 벗기는 언어의 맛을 느끼게 한다. / 심사위원 ; 김경윤 시인(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역임/ 현 김남주기념사업회장)

 

시 감상 ; “버튼홀스티지는 가장자리의 실이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휘갑쳐 뜨는 바늘로 만들어내는 단춧구멍이다. 아주 사소한소재를 통해 그 속에 옭아매는 삶에 대한 인식이 새롭게 다가온다. 단춧구멍이 만들어지는 여러 바늘땀이 가는 길에서의 촘촘한 사유가 시적정서를 매우 세밀하게 직조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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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목판화 / 진창윤

 

 

목판 위에 칼을 대면 마을에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골목 안쪽으로 흘러들어 고이는 풍경들은 늘 배경이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여자의

문 따는 소리를 들으려면 손목에 힘을 빼야 한다

칼은 골목을 따라 가로등을 세우고 지붕 위에 기와를 덮고

용마루 위의 길고양이 걸음을 붙들고

담장에 막혀 크는 감나무의 가지를 펼쳐준다

나는 여자의 발소리와 아이의

소리 없는 울음을 나무에 새겨 넣기 위해

밤이 골목 끝에서 떼쓰며 우는 것도 잊어야 한다

불 꺼진 문틈으로 냄비 타는 냄새가 새어나오더라도

칼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쯤 되면

밤 열두 시의 종소리도 새겨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여백은 언제나 좁아서

칼이 지나간 움푹 팬 자리는 서럽고 아프다

지붕 위로 어두운 윤곽이 드러나면 드문드문 송곳을 찍어

마치 박다 만 못 자국처럼 별을 새겨 넣는다

드디어 깜깜한 하늘에 귀가 없는 별이 뜬다

여자는 퉁퉁 불은 이불을 아이의 턱밑까지 덮어주었다

내 칼이 닿지 않는 곳마다 눈이 내리고

 

1965년 전북 군산 출생 우석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예정

 

 

 

[2017 문화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조각 칼끝 따라 삶의 고단함 담아내詩的 형성력 완성

언어를 다루는 말솜씨는 있다. 말들을 재미나게 쓰기는 썼다. 그래서 내용이 불확실하지만 싱겁지는 않다. 그렇지만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 수 있어야 할 거 아니냐.”

말재주만 가지고 시를 너무 쉽게 쓴다. 그런데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지 않아서 말의 유희만 느껴진다. 전체적으로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목판화시로 쓴 목판화의 구체적 풍경을 통해 시적 형성력을 완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호감이 갔다.

목판을 깎는 조각도의 칼끝을 따라 눈 내리는 겨울밤 골목을 배경으로 삶의 고단한 한순간이 진솔하고 과장됨 없이 그려져 있다.

.......자폐적 언어의 유희화가 왜곡된 대세를 이루고 있는 오늘의 한국 시단에서 이러한 구체적 형성력의 높이를 지닌 시를 만난 것은 큰 기쁨이다. / 심사위원 황동규·정호승

 

시 감상 ; “목판화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통해 그 속에 채워지는 실체적 풍경과 더불어 채워지는 소리를 엮어내면서 예술가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읽힌다. 눈 내리는 겨울밤이더라도 좋겠고, 목판에서 떨어지는 나무 부스러기들이 눈처럼 날리는 밤의 작업장 풍경이라도 좋겠다. 그 위에 그가 그려내고자 하는 소리와 내면의 풍경이 겹쳐져 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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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허공에서 더 깊어지는 추위 / 김낙호

 

 

세 길 높이 배관 위

긴 칼 휘두르는 단단한 추위와 맞선다

 

방패는,

작업복 한 장의 두께

 

빈곤의 길이를 덮을 수 없는 주머니 속에서

길 없는 길을 찾는 추위에 쩍쩍 묻어나는 살점

더 먼 변두리의 울음소리를 막아보려

등돌린 세상처럼 냉골인 둥근 관을 온몸으로 데운다

두려움의 크기 따라 느리게

혹은, 더 느리게

허공을 차는 발바닥의 양력揚力으로 기는 자벌레

수평으로 떠 있는 몸이 공중을 써는 동안

바람은,

밀도 낮은 곳만 파고드는 야비한 마름

풍경風磬이 될 수 없는 공구들 부딪치는 소리

눈앞에 튀어 올랐던 땅의 단내가 목구멍을 채우는,

숨죽였던 모골이 축축한 닭의 볏이 될 때마다

날개 없는 포유류가 새가 된 적 없다는 걸

한 발 느리게 깨닫는다

떨어져 나갔다 다시 매달린 간으로부터

소름의 갈기가 잦아드는 한숨

자꾸만 밀어내는 세상의 복판을 자주 헛짚어

복부 근육으로 변두리를 붙잡고 살아내야 한다는 것,

허공을 기는 힘이 연소될 때마다

그나마 조금 환해지는 하루

 

김낙호 / 1962년 충남 예산 출생. 충남대 무역학과 졸. 회사원.

 

 

 

 

[2017 부산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노동자 삶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 '허공에서 더 깊어지는 추위'는 현 사회 속의 하층 노동자의 삶을 사실적 사물들을 동원하여 참신하게 그려내고 있으면서 그것에 따뜻한 시선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성과 진정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미덕으로 꼽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 심사위원( 강은교. 김경복)

시 감상 ; “허공을 차는 발바닥의 양력揚力으로 기는 자벌레처럼 허공을 기면서 작업복 한 장으로 추위를 막아내며 일하는 배관공의 아슬아슬한 삶을 그려낸 시다. 공사현장의 위태로운 모습이나 작업공구와 같은 사물들에 상징적인 은유를 입혀 새로운 시선으로 치열한 삶을 견고하게 형상화하여 구체적인 정서적 옷을 입혀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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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윤장대 / 김성신

 

 

삼월 삼짓날은 윤장대를 돌리는 날

풍경소리 곱발 세우고

산자락은 그늘을 등지고 좌정한다

108배 올리던 법당에서

굽은 허리와 무릎 뼈 석탑처럼 일으켜 세우고

윤장대 돌리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묵은 발원이 한 각씩 깊어진다

상현달 달무리 지는 밤

아이의 울음소리 희미하게 살아나고

안간힘을 토해내던 흑백의 한 생

몸속 경()이 된 통증을

한 올 한 올 부풀리니

저만큼 솔바람에 가슴 쓸리기도 해

앞뒤 없는 회한과 갈망은

두 손 맞잡고

배웅하듯

한 곳을 바라보니

이마 위로 맺힌 땀방울

눈물의 동의인양 하염없이 흐른다

더 두툼해질 법문의 책장에

줄 맞추어 반듯하게 들어가 있을

어머니의 비워낸 몸을

나는 가만히 부축하여본다.

 

 

 

 

[2017 불교신문 신춘문예] 심사평

불교정서·고의조차 벗어던져

신인답지 않은 맵시 녹아있어

.......... 신춘문예란 한 해의 수확 가운데서 어떤 기념의 의미를 찾아내는 일과 새로운 해를 앞두고 어떤 삶의 각성을 내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 당선작은 첫 눈에 정해졌는데 윤장대가 그것이다. 신인답지 않은 유려한 묘미를 터득하고 있어서 창작의 연륜을 짐작케 한다. 불교신문 신춘문예라는 특수성에 호응하는 불교적 정서를 담는 고의조차 냉큼 벗어나고 있다. 시의 맵시가 녹아있다. / 고은 시인

 

시 감상 ; 보통 팔각형으로 되어 있는 윤장대는 팽이처럼 돌릴 수 있게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불경을 넣어두고 이것을 돌리면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는 윤장대를 돌리는 날, 어머니는 소망을 빌며 백 팔 배를 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소망을 빌며 절을 하는 사이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진실로 소망으로 비워낸 어머니의 몸이리라.

불교적 행사를 통해 기원하는 모습을 담아낸 평이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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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진단/신동혁

 

 

머리를 자르면 물고기가 된 기분입니다

나는 종교가 없고 마지막엔 바다가 온다는 말을,

소금기가 남은 꼬리뼈를 믿습니다

훔쳐온 것들만이 반짝입니다

지상의 명단에는 내가 없기에

나는 나의 줄거리가 됩니다

나는 맨발과 어울립니다

액자를 훔치면 여름이 되고 비둘기를 훔치면 횡단보도가 되는

낯선 버스에서 승객들이 쏟아집니다

멀리서 보면 선인장 더미 같습니다

서로를 껴안자 모래가 흐릅니다

모래가 나의 모국어가 아니듯

빈 침대는 바다에 대한 추문입니다

나는 모르는 햇빛만을 받아 적습니다

혼잣말을 엿들을 때 두 귀는 가장 뜨겁습니다

지도를 꺼내어 펼쳐봅니다

처방전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말을 듣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나도 모르게 호주머니가 깊어집니다

 

 

1990년 경북 구미 출생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재학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심사평]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찬 시편독창성·몰입도 탁월

.........신예가 될 신인시인에게 기대하는 우선적 요건을 얼마나 오래 쓸 것인가에서 찾고자 했다. 오래 쓰기 위해서는 문장이 힘차고, 쓰고 싶고 쓸 수밖에 없는 운명적 열정이 배어나고, 개성적인 스타일을 담보해야 한다.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독창성, 몰입에서 비롯되는 에너지야말로 신인의 요건일 것이다.

.......... 본심에 오른 열 분의 작품들은 언어 구사력과 시적 완성도가 돋보였으나 문화적 지표에 기댄 채 포즈화되곤 했다. 시의 세련된 문화화는 모험을 포기한 대가일 것이다.

...........보들레르에서 이상에 이르기까지, 세계에 대한 병리학적 진단은 현대시의 오랜 자세다. 지도와 처방전을, 모래와 모국어를, 침대와 바다에 대한 추문을 연결시키는 감각은 풍부하고 그 이미지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 심사위원 정끝별 시인, 황현산 문학평론가

 

시 감상 ; “진단지도와 처방전을, 모래와 모국어를, 침대와 바다에 대한 추문을 연결시키는 감각은 풍부하고 그 이미지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이 젊은 시인은 혼잣말을 엿들을 때 두 귀가 가장 뜨거워지는부재의 역설을, “모르는 햇빛만을 받아 적는시의 비의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막 탄생하려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의문의 창문들을 열게끔 설계된 시라고 심사평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몇 군데 이해할 수 있는 정황은 존재한다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생경한 이미지들을 독자들은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자기만이 아는 담론적 이미지 때문에 독자들이 난독難讀을 초래할 만큼 애매하고 모호하며 난해하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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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빅풋 - 석민재

 

 

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

아버지가 낭떠러지까지

오두막집을 밀고 갔다가

밀고 왔다가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말기 암, 엄마를 재우고 있다

죽음을 데리고 놀고 있다

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

엄마는 아빠를 놀리고 있다

아기처럼 엄마처럼

절벽 끝에서 놀고 있다

 

 

석민재 시인 약력 1975년 경남 하동 출생 2015시와 사상신인상

 

 

 

 

[2017 세계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해학·역설의 묘미 살려 삶의 애환 잘 갈무리

 

 

........... 전반적으로, 좋게 말하면 말과 느낌을 적절히 짜 맞추는 솜씨들이 상당해서 안정감이 있었다. 그런데 한 발 떨어져서 보면 평면적이고, 어딘가 낯익은 형언과 방식에 기대어 있는 느낌이다.

............빅풋은 무지무지하게 슬픈 상황인데 아버지의 당당함(‘군함처럼 큰 발을 끌고’)과 쾌활(‘왼발 오른 발 왼발 오른발 스텝을 맞추며’), 그리고 엄마의 해학(‘죽을까 말까 죽어줄까 말까’)으로 상황을 뒤집어 보여준다. 상상력의 전복, 역설의 묘미를 깔끔하게 끌어낸 시다.

/ 김사인·황인숙

 

시 감상 ; 삶과 죽음의 벼랑 끝에서 가지게 되는 절망에 대한 역설을 그려낸 시로 읽힌다. 다만 그 역설적인 절망의 경계에서 죽음에 대한 절대적 슬픔이 너무 가볍게 변주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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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공복 / 김한규

 

 

당신이 하고 있는 무엇

가만히 있게 가만히 두지 않는 시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나왔네요.

아니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 왔습니다.

 

먼지가 부풀며 피에 섞인다

아스팔트가 헤드라이트를 밀어내기 시작하고

한 마디를 끝낸 입술이

 

냉동고 속에서 굳는다

언 것이 쌓이기 시작하자

흔들리던 빈속이 쏟아져 내린다

 

무엇을 하기 위해 당신은

약봉지를 잊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이 보인다

 

죽은 나무 위에서 늦은 밥을 먹을 때

문은 닫히는 소리를 낸다

 

밝아올 것이라는 말을 지워버린

아침에는 감꽃이 떨어지고

눈물을 말리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하고 나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

끝났습니다.

 

아니면 이런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연락하겠습니다.

 

 

 

 

 

[2017 영남일보 문학상] 심사평

평이한 언어로 생의 뒤틀림을 끄집어내다

본심에 올라온 시의 독후감은 심사위원들에게 마치 한 사람의 시집을 읽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느낌과 느낌들이 손쉽게 공유되는 이유는 짐작할 수 있지만 참람하다. 문학의 기술과 기교는 독창성이나 변별성보다 더 높은 가치가 결코 아니다.

..........당선작인 시 공복죽은 나무 위에서 늦은 밥을 먹을 때/ 문은 닫히는 소리를 낸다는 쓸쓸하고 텅 빈 허기라는 감정을 낯설게 묘사한다. 게다가 뒤틀지 않은 평이한 언어로 생의 뒤틀림을 끄집어낸다. 공복이라는 발화는 화자에 의하면 당신이 하고 있는 무엇가만히 있게 가만히 두지 않는 시간이다. 이것은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이런 말을 할 수도 있다의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시작이자 재현이다. “밝아올 것이라는 말을 지워버린 아침할 수밖에 없는 것을 하고난 뒤의 망설임들 모두 같은 공복감이다. 그러한 공복감은 자신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사람들만이 가지는 개량의 감정이다. 또한 그 공복감은 우리 시에서 드문 서정이기도 하고 단순하되 겹을 가진 문장 역시 쉽사리 발견하기 힘든 재능이. / 김사인 송재학 시인

 

시 감상 ; 필자가 과문寡聞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시에서의 문장은 꼭 합리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문법을 뛰어넘어 시적 은유나 상상력을 의도적으로 이끌고 있을 때에 문장의 비합리적 전개가 자주 쓰이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시가 주어와의 관계를 무시하고 어법이 틀린 문장을 배열하여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가가 선명하게 연결되지 않는, 겹을 가진 문장이라는 형식으로 문법적 뛰어넘기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시적 정서와의 긴밀성에 의문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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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영주일보[신춘문예 당선작-]

고립 / 송창권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숱한 바람 따라 머무른 그 곳

네모난 절벽에 떨어지고 만다

 

불빛만 화려해진 세상

정작

고요라는 추상은

저 몸짓에 지워져 가는가

 

여기

좁다란 땅에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지 않는 세상

스스로 탈출을 시도하지만

콘크리트 벽으로

창살로

!

 

동트는 새벽 미명이라도

만질 수 있으려나

아니,

보기만 해도

볼 수만이라도 있으려나.

 

세상 속에 푹 빠져

나오지 못하는 각진 영혼이여

시나브로 작아지고 있다

버려지고 있다

저 네모 속에 몸부림치는 고적(孤寂),

무덤 속의 침묵!

 

 

*경력 ; 제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수료/ 성지요양원 원장/ 한국노인복지중앙회 부회장/ 외도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 제주시 월대411(2)

 

 

 

[시부문 당선작]

5월 억새에게 내미는 시 / 임지나

 

 

할머니들 아직 하늘로 올라가지 마세요

똑똑 분질러져도 자꾸 휘어져도 같이 살아요

저는 꽃의 키만큼도 닿지 않은 걸요

사람이 사람을 뚫고 나오는 걸 알았네요

할머니의 뻣뻣한 발등에서 푸른 순이 올라오는 걸 봤어요

오늘은 밀알만 한 무당벌레가 어디서부터 기어 왔는지

얇고 가는 마른 대를 타고 끝까지 올라가더군요

모든 것들은 꼭대기라는 정자亭子를 향해 나는 걸 좋아하지요

그러다 갑자기 날개를 펼치고 붕붕대네요

늙어서 너무 길어진다고 말씀하지 마세요

누구에게나 넓은 등이 되어 주셨잖아요

쓸쓸한 할머니의 은비녀 사이로 저수지도 보이네요

저수지는 삶이 관통한 듯 여지없이 파랗군요

누런 풀들 사이로 제 눈에 막 들어오고 있어요

그것은 드문드문 보이는, 만질 수 없는 영애令愛같은 고움

잠겨 있는 옛날이야기 같은 거죠

패물 상자처럼 언제까지나 우리 꽉 끌어안고 있기로 해요

몇 해가 흘렀는지 알 수 없지만 늙수그레한 풀과 호수는

이 계절을 처음 앓는 듯 쑥쓰러워하네요

, 저 성성한 머릿결 같은 햇빛, 약하지만 발걸음 소리 내는 풀

꿀을 머금고 있는 공기, 바람과 나부대는 나무는

저를 교란 시켜요, 할머니

저는요, 조용히 또 임신하고 싶어요

 

 

*약력 ; 전북 전주 출생./우석대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2015 계간 <시와 소금> 상반기 동시 등단/ 전북 군산시 수송동로20 한라비발디2단지 201502

 

 

 

 

[2017 영주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인터넷신문의 깊이가 느껴지는 시인들의 열망

.........우선 심사를 하면서 완벽한 시보다는 현대시의 흐름을 반영하되, 그 중 새로운 감각을 지니되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을 가려내기로 하였다.

.........송창권의 시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쓴 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표현에서 조금 아쉬움이 있었다.

........임지나의 시들은 앞에서 지적한 시들의 단점을 거의 지니지 않고 있어 맛깔스런 느낌을 주는 시들이었다. 현실을 바탕으로 하되 현실에 치우치지 않고, 상상력의 유희를 즐길 줄 알면서도 시적 이미지가 난잡하거나 산만하지 않은 장점이 있었다. [대표심사위원 ; 양대영 영주일보 편집국장]

 

시 감상 ; 고립 / 송창권에서의 네모'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건물이나 아파트와 같은 빌딩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갇힌 일상으로 환치시킨 고요나 고적은 각각의 사람들의 소통없는 외로움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소 흔한 결론에 도달함직한 고독감은 큰 울림을 주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다른 시 “5월 억새에게 내미는 시 / 임미나에서는 봄이 되어도 마름 억새꽃이나 마른 억새의 줄기들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새 순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쓸쓸한 할머니의 은비녀 사이로 저수지도 보이네요와 같이 보이는 풍경을 시 속에 끌어넣어 정감을 아우르는 표현으로 어렵지 않고 독자와의 교감을 시도하고 있는 시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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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애인 / 유수연

 

애인은 여당을 찍고 왔고 나는 야당을 찍었다

서로의 이해는 아귀가 맞지 않았으므로 나는 왼손으로 문을 열고 너는 오른손으로 문을 닫는다

손을 잡으면 옮겨오는 불편을 참으며 나는 등을 돌리고 자고 너는 벽을 보며 자기를 원했다

악몽을 꾸다 침대에서 깨어나면 나는 생각한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애인을 바라보며 우리의 꿈이 다르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악몽 중 하나였지만 금방 잊혀졌다

벽마다 액자가 걸렸던 흔적들이 피부병처럼 번진다 벽마다 뽑지 않은 굽은 못들이 벽을 견디고 있다

더는 넘길 게 없는 달력을 바라보며 너는 평화, 말하고 나는 자유, 말한다

우리의 입에는 답이 없다 우리는 안과 밖

벽을 넘어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나를 견디고 너는 너를 견딘다

어둠과 한낮 속에서 침대에 누워있었다 티브이를 끄지 않았으므로 뉴스가 나오고 있다

 

(*) 1994년 강원도 춘천 출생/안양예술고 졸업명지대 문예창작과 3학년 휴학/육군 복무 중

 

 

 

 

[2017 조선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무엇이 우리 삶의 진실인가' 질문을 던지다

........... 오늘날 한국 시의 큰 병폐 중 하나로 소통의 결핍과 부재를 들 수 있다. 시를 쓴 사람과 시를 읽는 사람이 서로 소통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현실적 삶과 동떨어진 비구체성, 환상과 몽상의 방법으로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언어적 태도, 개인의 자폐적 내면세계에 대한 지나친 산문적 천착 등으로 규정할 수 있다.

............ 애인은 시대적 삶의 투시력이 엿보이는 시다. 오늘의 정치 현실을 통해 무엇이 우리 삶의 진실인가 질문을 던지는 시다. 그러나 단순히 정치 현실을 바탕으로 세태를 풍자한 시라기보다는 인간관계로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삶의 진실을 추구한 시다.

.........갈등과 분열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실은 그 가치의 공존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오늘 우리의 삶을 애인 관계의 공생성에서 찾아내 부정을 긍정으로 전환하는 데에 성공한 이 시를 통해 내일 우리의 삶은 분명 사랑과 희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심사위원 (문정희. 정호승)

 

시 감상 ; 이 시대의 소통이라는 문제를 시 속에 등장시켜 갈등과 분영의 형상보다는 공존의 가능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시이다. 각 신문사의 입장에 따라 가급적 이런 사회비평적인 시가 암묵적으로 비껴가는 이 시대에 시대적 문제에 대한 정치적 현실을 통해 인간적 관계에 대한 의미를 담아낸 시로서 유일하게 정치적, 혹은 사회적 물음을 던지는 시가 당선시로 자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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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각시거미 / 이삼현

 

 

그녀와 나 사이

서먹해진 간격에 집을 지은 거미가

한 점 침묵으로 매달렸다

말끝을 세운 몇 가닥 발설이 한데 얽혀 덫이 되고

 

하루, 이틀, 사흘

무엇을 먹었는지 마셨는지 소식도 없이 제자리에 멈춰있다

 

나는 여문 것을 좋아하고

그녀는 부드러운 걸 좋아했지만 거미의 식성은 육식성이다

단단한 저녁이 말랑말랑해진 태양의 육즙을 천천히 빨아 삼키는 동안 거미는

한마디 미동도 없이 어두워졌다

 

몰래 들여다봐도 내통도 없다

팽팽하게 벌어진 틈새를 붙잡고

며칠째 끈적끈적한 긴장의 끈을 당기는 저 고집은 불통이다

 

꼭 돌아올 거라며 활짝 열어둔 오늘이 무음(無音)으로 져도

마음은 나팔처럼 불 수가 없다

 

경계를 풀고 다가올

기척 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순간이 쉼표 없는 기다림으로 이어지고

 

죽은 듯 산 듯

다시 낮달이 떴다

 

 

 

 

 

[2017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 시의 구조나 체제, 심통한 정서 등 시가 마침내 도달해야할 궁극에는 한 점씩 미진한 듯하여 아쉬움이 있었으나, 이삼현 씨의 각시거미는 모든 면에서 빼어났다.

..........이 시는 시공(時空)을 한바탕에 융합시키며 형상화를 극진히 도모한 점이라든지, 한 마리의 거미를 통해 심도있게 통찰되는 사상(事象)의 본질을 교묘히 대칭시키며 박진(迫眞)하게 실감에 다가감이 절묘했다. 결구의 낮달의 상징성은 매우 탁월했다. / 심사위원 ; 소재호 시인

 

소재호 심사위원 약력 ; <현대시학> 추천 완료로 시단에 오름(84)/ 완산고등학교장, 전북문협회장 역임 / 현재 석정문학관장, 표현문학회장./시집 <압록강을 건너는 나비> 등 다수.

목정문화상, 성호문학상, 녹색시인상 등 다수 수상.

 

시 감상 ; 한 마리의 각시거미를 통해서 그녀와 나사이의 사소한 다툼---“말끝을 세운 몇 가닥 발설이 한데 얽혀 덫이 되고와 같은 대결---에 의해 형성된 고집과 대결의 의미 행간에 일어나는 화해의 기다림이 은밀하게 그려져 있다.

거미의 공간과 인간들 사이의 공간이 공유되면서 오랫동안 침묵과 버팀이 가져오는 날들을 거미의 기다림으로 엮어낸 점이 재미있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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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귀촌 / 정연희

 

 

귀가 한 마을을 이루고 있다

멀고 가까운 말들도

촌에서는 하나로 연결된 귀가 된다

귀걸이처럼 빛나는 소문들

귀가 제일 빠른 곳은 촌이다

 

특용작물을 심은 노총각의 이야기, 젊은 며느리와 늙은 시어머니와 다국적 갈등, 파리 한 마리와 한나절을 놀았다는 과부댁, 허리가 점점 늦가을 풀포기처럼 구부러지는 재 너머 노인, 합죽의 입 꼬리에서 뛰어오는 손자들 부러운 마음 감추고 듣는 독거노인들 이야기가 점심 물린 마을회관에 가득하다. 토지수용 소문에 동네가 술렁이고 쇠약한 용돈을 먹고 약장사가 지나가고 나면 촌에는 보일러 공기구멍에 집을 짓는 새와 부엌이 놀이터인 쥐가 퍼트리는 소문이 있다

 

반상회가 끝난 자정 무렵

민화투 점수로 오고가는

소문의 끄트머리들이

텅 빈 까치집으로 들어간다

폐가는 집 비운 소문으로 흉흉하고

논두렁에는 논두렁 소문이 길게 늘어나고

어쩌다 주춤했던 귀들도

오일장 다녀 온 뒤로 다시 무성해지는

이발관 그림 같은 풍경에 뛰어든 사람들

밤이 빨리 찾아오는 촌 풍경에

바쁜 귀가 몰입해 있다

 

정연희. 1958년 전남 보성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용인수지우체국 근무. 용인문학회 회원, 동서문학회 회원

 

 

 

[20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사라져가는 우리 것 지키는 시심"

시문학이 지닌 제일의 가치는 문학적 진실에 있다. 문학적 진실은 필연적으로 사유의 깊이와 미학적 감동으로 이루어진다. 시를 읽는 사람의 정신세계에 파열음을 내는 사색적 자극, 물신의 재미에 빠져 사는 사람에게도 격조 높은 심미적 쾌감을 주는 표현의 아름다움이 결합하여 시를 시답게 한다.

......... 시문학 지망생들이라면 반드시 화자의 체험이 깊이 육화되어 있어야 할 것이며, 그 체험적 진실이 미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우리말을 갈고 다듬는 일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귀촌이 함축하는 세계가 오늘의 농촌-시골마을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는 것은 물론 막연한 소문으로 피폐화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의장은 뜻있게 보였다. / 유안진 시인. 이동희 시인

시 감상 ; 심사평에서 화자의 체험이 깊이 육화되어 있어야 할 것을 전제로 한 이 시는 그 전형에 속한다. 시인의 귀는 마을의 귀로 환치되고 소문의 입길에 오르는 고즈넉한, 때로는 곤고한 삶이 함께 자리하는 농촌의 이야기는 고만고만한 이야기들이지만 그런 것들을 새로운 표현과 시선으로 포착한 점은 실체적 진실에 의한 공감의 폭을 넓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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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한경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전쟁의 시간 / 주민현

 

 

빗방울이 창문에 부딪치며 싸락싸락 소리가 났다.

라디오에서 전쟁의 종식을 알리는 앵커의 목소리가 지지직거리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쁨과 안도가 터무니없이 먼 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어두운 언덕을 넘어가고 있는 군인들의 긴 행렬을 떠올렸다

바게트 굽는 냄새가 식탁 위로 흘러 넘쳤다

 

하지만 불안이 커튼처럼 남겨져 있었다

 

어쨌거나 다시 자랄 것이다

식물이나, 아이나, 어둠 속에 수그린

수련이나, 오래 구겨져 있던 셔츠 같은 것이

교사나 수렵꾼 같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생활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뜯어진 커튼처럼 그렇게 남겨져 있었다

 

어머니는 인간이 물고기로부터 태어난다고 믿었다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끝내 믿을 수 없어 했다

 

이곳에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반쯤만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식은 총구에서 나는 싸늘한 냄새를 맡으며

수프를 먹었고, 기도를 했고, 달력을 넘기며

고작 이 년이 지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했다

 

칼로 가른 물고기 뱃속에는 구슬이 가득했다

종종 정신이 돌아오는 늙은 어머니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종려나무야, 다른 신발을 쥐고 태어난 깨끗한 발아,

이것을 좀 보렴, 이렇게 아름답잖니

 

신은 언제나 우리의 너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단다

 

어머니는 자주 누워 있었고 집 밖에 내어 놓은 의자는 비에 젖었다

전쟁이 끝나고 좀도둑 떼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곧 사월이 오면 먹을 게 좀 생길 거다

이웃집 사람들과 매일 대화를 했다

 

이 동네를 떠나세요, 아직 젊으니까 도시로 가면 여기보단 지내기가 나을 거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누워서 중얼거리는 어머니는 조금씩 물고기의 형상을 닮아 갔다

 

오빠 마구간에서 새끼 양들이 태어났어

이상한 일이다, 신의 증거 같은 것일까?

그 양들은 옆집에서 도망친 가난한 슬픔일 뿐이란다

 

사는 게 지옥 같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아직 지옥엔 도달하지도 않았는걸요

 

사월에도 눈이 내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다시 학교에 갔고

곳곳에 무너진 건물이 다시 건축되고 있었다

 

가는 물줄기 안에서 물고기 몇 마리가

더 커다란 물고기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주민현 1989년 서울 출생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 한경신문 신춘문예] 심사평

끝난 듯 끝나지 않은 전쟁, 역동적인 서사 전개 돋보여

..........주민현의 전쟁의 시간은 방송에서는 전쟁이 종식됐으나 생활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계속 중이라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세계 내전과 국내 현실의 교직을 통해 서사적으로 전개된다. ‘물고기의 상징이 모호한 것은 약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역동성이 있고 의욕이 넘친다. / 김수이(문학평론가) 박형준(시인) 이영광(시인)

 

시 감상 ; “전쟁의 시간은 지나간 우리의 전쟁과 맞물리는 시계적인 전쟁의 교차된 형상화로 해석된다. 실제 사회에서의 암묵적인 경쟁이나 삶이 과거의 전쟁과 무엇이 다르랴.

어머니가 물고기를 닮아간 사유를 재생창조의 신 비슈누(=물고기 신)에서 추론하여 형상화한 것일까? 물고기의 상징성이 모호하여 그 이미지 확장에 걸림이 생기고 정서적 초점이 확실치 않은 흠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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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전원 미풍 약풍 강풍 / 윤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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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었다. 눈을 떴을 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가락으로 더듬다

 

0010

새벽에 매미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다. 여름엔 매미가 커져서 점점 더 커져서

새를 잡아먹는다. 새 소리를 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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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히는 줄 알았어.

 

0100

비행기 엔진 소리

잡아먹힌 새가 매미가 되는 소리

 

1000

(나는 이곳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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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위의 옷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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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는 깨끗하다. 아직은 숨이 막힐 때가 아니다. 탁자 위 물 한 컵

 

0010

(이곳에 없다.)

 

 

(*) 윤지양 / 1992년 대전 출생 /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2017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무심하고 당돌한 시앞으로가 더 기대돼

.......... 눈치 보지 않고 자신만의 시적 착지점에 닿은, 혹은 닿으려 하는 원고들이었다. 사소한 착상을 충분히 확장시킬 줄 알았고, 그렇게 확장된 세계에는 독특한 파토스가 담겨 있었다. .............전원 미풍 약풍 강풍은 작은 모티브에서 출발하여 무심하고 당돌한 스타일로 감각과 정서를 끌어내는 시였다. / 김정환, 황인숙, 신해욱 시인

 

시 감상 ; ‘전원 미풍 약풍 강풍매미를 중심의 끌어들여 매미의 소라가 가장 커지는 도시의 여름밤 정경을 드러내려고 시도한 작품으로 보인다. 마치 암호처럼 보이는 01을 조합한 숫자는 2집법의 숫자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바람크기의 배열에 켜지는 숫자로 치환된 바람 크기 조작버튼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미풍--약풍--전원--미풍--전원--강풍--미풍--약풍의 바람으로 인식하게 하려는 의도가 보인다. 작위적인 조합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바람에 의해 치환된 상징구절들이 특별한 감동으로 몰입되는 경향은 보이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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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점등 / 오경

 

 

가슴에서 플러그를 뺐다 젖이 멈췄다 벽등의 스위치를 켰다 나는 밤이 들킨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떨다가 아슬아슬하게 걸린 검은 브래지어를 떨어뜨린다 어둠이 활처럼 휘어진다 순간 배고프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허기를 달래려고 더 진한 화장을 하고 더 긴 속눈썹을 붙이고 스타킹을 벗는다

 

갑작스런 빛이 사방을 삐거덕거리게 한다

아기 유령들이 셔플 댄스를 추다가 천장에서 추락했을지도 모른다

길 잃은 시조새 한 마리 비상하다가 태양의 모서리에 부딪쳐

날개가 부러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문을 나서고 싶지 않았다 아니 불을 켜고 싶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것의 아주 작은 세포를 만지며 느껴보고 싶었을 뿐

식탁 위엔 주인 없는 고통이 가열하지 않은 채 날것으로 있다

 

함성에 금이 간 어둠이여 다시는 변명에 목을 걸지 말 것

목숨 걸어야 할 곳이 어디 한두 곳인가

식탁 아래 한때 눈부셨던 대낮의 그림자가 꽁무니를 빼느라 허둥지둥이다

지금은, 어둠을 수습하기 위해 퇴로 차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약력 본명 오미현 서울 출생 경희대학교 사범대 졸업 대구 영남대학교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 수료 대구 거주

 

 

 

 

[2017 한라일보 신춘문예] 심사평

찰나를 포착한 순발력

............ 오경의 시는 식상하거나 미흡한 표현들이 더러 눈에 띄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들 수준이 대체적으로 고르며 응모자 자신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데 심사위원들의 견해가 일치했다. 미숙한 점이 노정된다는 것은 그것을 극복해나가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당선작 '점등'은 주방의 벽등을 켜는 순간을 개성적으로 묘사하면서 사색한다. 빛이 들어와 어둠이 사라지는 찰나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이때 존재하는 소재와 상상들을 순발력 있게 포착해 역동적으로 제시하는 대목에서 당선자의 기량을 엿볼 수 있었다.

/ 시인 김영남, 시인 김지연(필명 김규린)

 

시 감상 ; ‘점등에서는 벽등을 켜는 순간에 나타나는 형상물들을 통해 자아의 뒤죽박죽이 된 무질서를 보여준다. 어둠과 밝음 사의의 질서와 드러남에 보이는 것과 졵재하는 것의 사이에 대한 질서가 무너지는 현상을 통해 어떤 정서적 감동을 드러내려 한 것일까를 생각한다.

다른 연에서의 형상도 그렇지만 1연의 "가슴에서 플러그를 뺐다 젖이 멈췄다 벽등의 스위치를 켰다 나는 밤이 들킨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떨다가 아슬아슬하게 걸린 검은 브래지어를 떨어뜨린다 어둠이 활처럼 휘어진다 순간 배고프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허기를 달래려고 더 진한 화장을 하고 더 긴 속눈썹을 붙이고 스타킹을 벗는다는 무질서한 비합리성을 통해 어떤 이미지를 전개하려는 것일까를 생각해 본다.

 

 

 

3. 현대시의 미래 방향성

 

이번 신춘문예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회는 과거의 신춘문예 작품에서 나타난 시의 형식과 표현의 흐름이 다소 바뀌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신춘문예 작품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또한 커다란 변화를 보여주지는 못하였지만, 시대적 상황과도 맞물려 우리 사회가 분열하고 편가르기에 열중하며 서로간에 이해가 충돌하며 포용력이 없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절실하게 필요한 소통이라는 화두를 이끌어낸 점은 하나의 소득이라고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근의 신춘문예 당선작품에서도 꾸준히 난독難讀의 문제에 맞닥뜨린 때가 많았는데 금년에는 그러한 양상이 훨씬 의미있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마도 이러한 경향은 독자와의 교감이라는 측면에서 즉각적인 이해를 선호하는 인터넷 세상의 필요에 의해서 조성되고 있는 문화적 현상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금년 신춘문예 심사평에 나타난 커다란 흐름으로부터 앞으로 현대시에 등장하게 될 미래의 모습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추출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1) 전반적인 심사평의 행간을 살펴보면 시에 대한 참신성이나 새로운 발상에 대한 견해가 최근 수년간 지속되어 온 표현중심의 시적발현을 가장 우선적으로 평가하는 듯한 심사평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당분간은 다소 수사적이고 산문적 시적발현이라는 표현기교에 기대어 창작하는 수준의 시가 얼마간 지속될 것 같은 경향을 예감한다.

 

(2) 2016년 말에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최고지도자의 독선과 아집에 기초한 정치적 농단에 대한 분노가 드러나고, 정치적 개혁과 부당한 권력의 퇴진을 요구하며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절망을 변화시키려는 시민의식의 분출은 앞으로의 사회가 터무니없이 은밀하게 진행된 가진 자들의 전횡에 대한 저항과 맞물려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더욱 강렬하게 진행되고, 시적 다양성과 사회전반에 존재하는 부조리에 대한 비판적 시선의 전개도 보다 자유롭게 진행될 공산이 크다.

최근에야 국민들의 사상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길들이려던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문화 전반을 통제하려고 했던 정권의 의도에 대한 우리 문학인의 대응은 매우 한심한 수준이었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권력의 암묵적인 억압에 순치되어 시인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왔다는 인상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우리 문단에도 그러한 영향으로 각 신문사의 논조나 정치성향에 따라 문학작품이 그러한 정치적 갈등을 회피하여 정치적 갈등이 있을만한 작품을 은연중에 배제시키고 단순 서정성의 방향으로 당선작을 선정하게 됨으로서 시적 내면화 경향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뒤늦게야 숨겨지고 억압되었던 저항의식이 표출되는 자유로운 형식의 시적발현의 시대가 다음해부터는 눈치보지않고 전개될 가능성도 예상된다.

따라서 지금 겪고 있는 사회적 욕구의 분출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현상에 대한 새로운 창작 스펙트럼spectrum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된다.

 

(3) 시 속에 장치한 이미지들을 난삽하고 애매하게 포장하여 시 속의 의미를 애매하게 함축시키던 과거의 시적발현과는 달리 시적정서를 보다 더 쉽게 전달하고 표현기교에 의한 이미지 변주나 은유를 통해 정서적 교감을 도모하려는 의식이 근년에 이르러 더욱 심화되기 시작한 시의 장문화長文化 현상은 좀 더 오래 지속될 하나의 경향으로 예견된다.

이와 함께 독자들과의 소통에 쉽게 다가설 수 있다는 편의성 때문에 산문적 표현 추세도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예견된다.

 

(4) 이러한 시적 경향과 시창작에 대한 신춘문예의 경도된 작품경향에 따라 난해성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시적 환상성을 내세워 자기담론으로 끌고가려는 시적경향은 앞으로 소통이라는 사회적 명제와 궤를 같이하여 난해성이나 애매성과 같은 시적표현의 출현은 다소 기복은 있겠지만 얼마간 제한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나타난 시적 소재는 과거의 틀---오랜동안 단골 시적 소재로 등장하던 신발, 구름, 골목, 의자, 등과 같은 소재들---과는 달리 다양한 소재들이 등장하여 다소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뿐만 아니라 각 신문사에서 위촉하는 심사위원들의 면모가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게 될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하게 된다.

앞으로 보다 진취적이고 과감한 시적 도전을 기대하게 되는 점은 점차 심사위원들의 교체가 좀 더 진전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우리 현대시의 발전과 새로움의 접목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 것인지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며 그러한 진전과 함께 앞으로의 새로운 변화에 기대를 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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