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 이필
- 권상진 시집
- 권상진
- 수북책방
- 시골시인K
- 언니네 책다방
- 밑장
- 접는다는 것
- 권상진 시인
- 권수진
- 눈물 이후
- 눈물이후
- 노을 쪽에서 온 사람
- 석민재
- 들은 이야기
- 노을쪽에서온사람
- 도서출판득수
- 웹진 시인광장
- 레미앙상블
- 경주문학상
- 리스트컷증후군
- 북토크
- 권상진 #저녁의 위로 #검은 사람 #발아래 어느 상가 #장수철 시인 #시와문화
- 걷는사람
- 유승영
- 권상진시인
- 서형국
- 최미경 시인
- 햄릿증후군
- 가짜시인
- Today
- Total
하루하루
천 원 / 장인수 본문
천 원
장 인 수
콩나물을 담아주던
까만 비닐봉지를 머리에 푹 뒤집어 쓴 할머니
절뚝거리며
식당으로 쑥 들어오더니
온장고에서 공기밥을 꺼내
난로의 펄펄 끓는 주전자 물을 말아먹는다
빗물이 묻은 손으로
주머니에서 슬쩍
봄똥 잎새 두 개, 청양고추 두 개를 꺼내
오물오물 섞어먹는다
식당 건너편 모서리
좌판도 없는 노상에서
야채를 파시는 할머니
찬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천 원짜리 저녁을 먹는다
-참말로 밥이 따스하니 맛있스라잉
어둠 한 공기를 재게 먹고
할머니는 꼬깃꼬깃 천원을 내밀며
공짜 커피를 뽑는다
후루루 뜨거움을 단숨에 목구멍에 붓는다
뜨거움을 저렇게 잘 드시다니!
그 옆 테이블에서
선지해장국에 빨간 참이슬을 마시고 있던 나는
놀랍고, 눈동자가 뜨거웠다
차디 찬 겨울비가 점점 굵게 후려친다
----------------------------------------------------------------------------------
오늘 우연히 만난 이 시를 몇번 고쳐 읽으며 나는 시선이 자꾸만 식당 주인에게 머문다.
시인의 의도한 바는 100% 아니겠으나 독자로서의 내 마음이 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물론 처음 읽을 때는 할머니를 따라 내 시선이 움직였고, 그 다음 번엔 눈동자가 뜨거워지는 '나'에서 시선이 멈췄다. 하지만 세번 째는 달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한 듯 할머니에게서 천 원을 받아드는 식당 주인. 그에게 내 시선과 생각은 오래 머물렀다.
좋은 시를 완벽하게 정의할 수 있는 식견이 내게는 없지만 좋다는 말의 주관성에 기대어 이 시에 또한 기꺼이 머문다.
'할머니'의 고달픔도 시고, '나'의 북받치는 감정도 시이겠지만, 식당 주인의 넉넉한 마음이 오늘 더 넓고 크게 보이는 이유는 시를 읽는 순간 식당 주인과 비교 되는 내 삶이 불현듯 부끄럽게 나를 덮쳐왔기 때문이리라.
시 시에서 단 한 줄로 나타나는 그는 온화한 미소를 가졌을 거다. 따듯한 손을 지녔을 거다. 말에서는 절제된 인품이 묻어나겠고 가만히 세상 모든이들의 말을 들어 줄 것 같다. 천 원을 내미는 할머니의 손 앞에서 한없이 공손했을 것이고, 더러는 받고 싶지 않았겠으나 할머니의 자존심을 위해, 내일 또 허기진 한 끼를 변함없이 드리기 위해 천 원의 공기밥 값을 빌린 돈처럼 받아드는 모습. 아마도 주인은 선지해장국에 참이슬을 먹는 '나' 보다 먼저 콧등이 시큰거렸을 거다.
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 시는 내게 좋은 시가 되어 버렸다. 기교도 없고 쌈빡한 단어도 없고 전혀 새로워 보이지도 않는 시가 왜 내게로 이리 가까이 오는 것인지...
- 가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