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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천 원 / 장인수

가짜시인! 2016. 12. 28. 18:39

천 원

 

                   장 인 수

 

콩나물을 담아주던

까만 비닐봉지를 머리에 푹 뒤집어 쓴 할머니

절뚝거리며

식당으로 쑥 들어오더니

온장고에서 공기밥을 꺼내

난로의 펄펄 끓는 주전자 물을 말아먹는다

빗물이 묻은 손으로

주머니에서 슬쩍

봄똥 잎새 두 개, 청양고추 두 개를 꺼내

오물오물 섞어먹는다

식당 건너편 모서리

좌판도 없는 노상에서

야채를 파시는 할머니

찬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천 원짜리 저녁을 먹는다

-참말로 밥이 따스하니 맛있스라잉

어둠 한 공기를 재게 먹고

할머니는 꼬깃꼬깃 천원을 내밀며

공짜 커피를 뽑는다

후루루 뜨거움을 단숨에 목구멍에 붓는다

뜨거움을 저렇게 잘 드시다니!

그 옆 테이블에서

선지해장국에 빨간 참이슬을 마시고 있던 나는

놀랍고, 눈동자가 뜨거웠다

차디 찬 겨울비가 점점 굵게 후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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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연히 만난 이 시를 몇번 고쳐 읽으며 나는 시선이 자꾸만 식당 주인에게 머문다.

시인의 의도한 바는 100% 아니겠으나 독자로서의 내 마음이 가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물론 처음 읽을 때는 할머니를 따라 내 시선이 움직였고그 다음 번엔 눈동자가 뜨거워지는 ''에서 시선이 멈췄다. 하지만 세번 째는 달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익숙한 듯 할머니에게서 천 원을 받아드는 식당 주인. 그에게 내 시선과 생각은 오래 머물렀다.

좋은 시를 완벽하게 정의할 수 있는 식견이 내게는 없지만 좋다는 말의 주관성에 기대어 이 시에 또한 기꺼이 머문다.

'할머니'의 고달픔도 시고, ''의 북받치는 감정도 시이겠지만, 식당 주인의 넉넉한 마음이 오늘 더 넓고 크게 보이는 이유는 시를 읽는 순간 식당 주인과 비교 되는 내 삶이 불현듯 부끄럽게 나를 덮쳐왔기 때문이리라

시 시에서 단 한 줄로 나타나는 그는 온화한 미소를 가졌을 거다. 따듯한 손을 지녔을 거다. 말에서는 절제된 인품이 묻어나겠고 가만히 세상 모든이들의 말을 들어 줄 것 같다. 천 원을 내미는 할머니의 손 앞에서 한없이 공손했을 것이고, 더러는 받고 싶지 않았겠으나 할머니의 자존심을 위해, 내일 또 허기진 한 끼를 변함없이 드리기 위해 천 원의 공기밥 값을 빌린 돈처럼 받아드는 모습. 아마도 주인은 선지해장국에 참이슬을 먹는 '' 보다 먼저 콧등이 시큰거렸을 거다.

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 시는 내게 좋은 시가 되어 버렸다. 기교도 없고 쌈빡한 단어도 없고 전혀 새로워 보이지도 않는 시가 왜 내게로 이리 가까이 오는 것인지...

 

- 가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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