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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가족 / 박수현

가짜시인! 2016. 9. 1. 16:39

가족 
 
                 박수현 
 
 

서랍정리하다 찾아낸 열쇠꾸러미 
둥근, 네모난, 마름모진 것 
모양이 제 각각이다 
한 집안에 열려야 할 문이 이처럼 많은가? 
 
한솥밥 먹고 킬킬대며 함께 TV를 보다가도 
문을 닫고 돌아서는 식구들 등 뒤 
아득하게 몰려들던 어둠이여 
문 앞 깊게 패인 두려움을 몇 차례씩 헛돌리다가 
누구의 내면에나 
빛 한 오라기 닿지 않는 캄캄한 방이 있음을 안다 

뱉지못한 말들은 어느 구석 먼지로 쌓여 있다 
서로 다른 열쇠들은 어떤 모양의 열망으로 주조(鑄造) 되었나 
닫지 않았어도 
오래 열린 적 없는 식구들 가슴 속 
열쇠를 들이밀고 차디찬 실린더를 비튼다 
 

딸깍, 갈비뼈가 움칫거린다 
묵직한 어둠이 한 칸 물러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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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말의 농도는 나이가 들면들수록 짙어진다. 
혼자서 고민없이 결정하던 일들이었는데 요즘들어 가족이 자꾸 돌아다 봰다.

가족은 무게다.

팔랑이는 내 귀와

달싹이는 내 입

그리고, 천지사방 기웃거리는 내 정신을

지긋이 눌러주는 무게.

무시로 내 가슴속을 드나들던 그들이 어느날부터 자물쇠를 지녔다.

나에게는 여직 없는...

 

시인의 눈은 관계를 천착한다. 

계산이 앞서는 사회적 관계는 둘째 치고 삶의 근간을 이루는 가족, 그 끈끈한 관계를.

자물쇠를 열고 문을 열어 밝음을 들이고 싶어하는 마음이 안타깝다.

하루를 살아내면서 힘겹지 않은 사람이 또 어디 있으랴.

자물쇠는 어쩌면 그 그늘을 숨기려는 가족애의 다른 표현 일지도 모를일이나

가족의 힘겨움 마저도 함께 대면하고 싶은 마음. 그 슬픔과 기쁨을 섞고, 휘저어

같은 색의 정이 묻어나는 가족을 시인은 꿈꾼다.

아프면서도 간절한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 가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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