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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신문 / 유종인

가짜시인! 2015. 7. 10. 09:02

신문

 

                   유종인

 

 

활자들만 모른 체하면

신문은 이리저리 접히는 보자기,

나는 신문이 언론일 때보다

쓸쓸한 마른 보자길일 때가 좋다


그 신문지를 펼쳐놓고 일요일 오후가

제 누에발톱을 툭툭 깎아 내놓을 때가 좋다

 

어느 날 삼천 원 주고 산 춘란 몇 촉을

그 활자의 만조백관들 위에 펼쳐놓고

썩은 뿌리를 가다듬을 때의 초록이 좋다


예전에 파놓고 쓰지 않는 낙관 돌들

이마에 붉은 인주를 묻혀

흉흉한 사회면 기사에 붉은 장미꽃을

가만히 눌러 피울 때가 좋다


아무래도 굴풋한 날 당신이

푸줏간에서 끊어온 소고기 두어 근

핏물이 밴 활자들 신문지 째로 건넬 때의 그 시장기가 좋다

 

 

이젠 신문 위에 당신 손 좀 올려보게

손목부터 다섯 손가락 가만히 초록 사인펜으로 본떠 놓고

혼자일 때

내 손을 가만히 대보는 오후의 적막이 좋다

 

 

♥ 신문은 신문 본연의 기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어쩜 그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논조가 다르다.

   정론을 펼쳐야 할 언론에 정치색이 묻어있다. 그 묻은 것이 오물 같다. 개인적으로 각 신

   문의 기사는 사실만 전달하면 그 임무는 끝나야 하고, 굳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설

   로 대신하여야 할 것이다. 

   이 시에 그런 의도를 담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해석은 독자의 몫이고, 독자의 기량 만큼

   읽힐수 밖에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부족한 독자로서 시인께 죄송하다. 

   시인은 신문을 언론이 아닌 다른 용도로 쓸 때가 더 행복하다. 신문의 내용은  FACT이나

   그 사실은 우울하고 가난하고 죽음과 연관되는 것이거나 썩은 정치의 냄새가 나는 것들

   이어서 차라리 고결한 춘란을 다듬는 밑깔개로 쓰고 싶거나, 흉흉한 사회면을 펼쳐 낙관

   을 찍는 종이로 쓰는(찍힌 낙관이 장미꽃처럼 아름답다)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모든 세상사를 나와는 상관 없소!라고 외치며 차라리 시장기 가득한 날 고기 두어 근

   마는 용도로 쓸 줄 아는 초연함을 지녔다.

   신문은 자꾸 세상에 참여하라고 독촉한다. 그 비린내 나고 썩은내 나는 곳으로 들어오라

   한다. 시인은 그것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신문의 용도를 늘여 가면서 말이다.

 

   - 가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