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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가까운 오지(奧地) / 김형미

가짜시인! 2015. 5. 19. 14:32

가까운 오지奧地

 

                        김 형 미

 

 

내게는 오지奧地가 있다

유년의 걸음으로는 가 닿을 수 없는

휘파람 같은 가까운 오지가 있다

무디고 과묵한 영토, 무표정으로 일관한 깊이는

눈망울로만 우는 소의 눈처럼 깊었다

등 기슭에 자주피던 소금 꽃

혹여, 그 꽃그늘에 얼굴을 묻어볼까 하여

살짝 다가가 기웃거리다 돌아서곤 했다

적막한 꿈으로 둘러싸인 바깥

병마로 허리가 기운 후, 헐거워진

틈으로 새어나온 뒤를 엿볼 수 있었다

쓸쓸히 고립된 채 갈라진 등껍질

여기저기 웃자란 가시와 엉겅퀴

아버지의 등은

망설임 없는 사선을 가졌다

넘어지려는 흙 담 귀퉁이에

기대놓은 오래된 굄목처럼

인생의 지워진 문패가 되어버린 지금

먼 길 돌아 와 기운 등에 얼굴을 묻는다

팽팽한 생의 한 끝이

오목가슴을 찌른다

 

 

 

요즘 '등'에 대해서 글을 써보는 중에 무언가에 꽉 막혀 연필을 놓고 기다리고 있다.

   혹시나 하여 앞선 시인을 둘러보던 차에 만난 작품이다.

   현대시는 오감을 자극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갖은 미사여구나 현란한 건너뛰기를

   통해 오직 시각만을 자극하는 류나, 자신이 본 것, 들은 것, 맛 보거나 접촉한 것을 일

   차원적으로 나열하는 참으로 불면 날아가버릴 듯한 가벼운 시들도 적지 않다.

   시라는 것은 이러한 오감을 통하여 내게 온 것을 나열하는 작업이 아니라, 이것을 변

   주하여 독자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단계에 까지 이르러야 하나의 완성체로서의 의

   미를 갖는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일까...

  

   그런면에서 위의 시는 가볍게 읽히면서 무거운 생각을 남겨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

   다. 먹고 살만한 세상이 되면서 아버지의 의미는 크게 퇴색 되었다. 어려운 시절에는

   버지의 '등 기슭에 자주 피던 소금꽃'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유일한 수단

   이었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가정은 그 역할이 적잖이 희석되면서 존재감이 떨

   어지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아버지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힘겨운 노

   동과 가족을 방어하던 아버지의 등은 지금에 와서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받

   아들여질까... 적이 궁금해진다.  

  

   나도 아버지가 있었고, 아버지는 당연히 아버지여야했고, 강하고,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으며 어린 것들에겐 수퍼맨에 버금가는 천하무적, 화수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버

   지가 되고 보니 그 '소금꽃'은 결핍의 산물이었고 '적막'이었고 '고립'이었음음 알게 되

   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버지가 되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반쪽짜리 인류임이

   한없이 아쉽다. 단언하건데 어떤 여성도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어떤 남성도

   어머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스스로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었을 때 비로소 느

   껴지는 것이다.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렀을까...

   사실은 이 시를 읽으면서 2, 3행의 의미가 무었일까 잠시 고민에 빠졌었다.

   처음에는 시를 읽는데 방해되는 행들이라 생각했었는데 서너번 읽다보니 그 의미를 알

   겠다.

   짧은 시에 긴 글을 달다니... 그러고도 할 말이 수도없이 남았다니...

   나는 제대로 된 시인이 되기는 애초에 글렀나 보다.

 

                                                                                                           - 가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