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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등 / 박일만

가짜시인! 2014. 6. 11. 20:48

 

등 

 

             박 일 만

 

기대오는 온기가 넓다

인파에 쏠려 밀착돼 오는

편편한 뼈에서 피돌기가 살아난다

등도 맞대면 포옹보다 뜨겁다는

마주보며 찔러대는 삿대질보다 미쁘다는

이 어색한 풍경의 간격

치장으로 얼룩진 앞면보다야

뒷모습이 오히려 큰 사람을 품고 있다

피를 잘 버무려 골고루 온기를 건네는 등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두 다리를 대신해

필사적으로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사람과 사람의 등

비틀거리는 전철이 따뜻한 언덕을 만드는

낯설게 기대지만 의자보다 편안한

그대, 사람의 등

 

 

♥ 가짜시인의 단상

 

등은 눈의 뒤에 있다. 애써 보려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내 몸의 외진 곳이다.

어쩌면 장롱 밑바닥이나 창틀 아래처럼 돌보지 않아서 숨기고 싶은 곳이다.

시인의 눈은 그 곳을 향해있다. '치장으로 얼룩진 앞면'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그가 온전히 남아있는 등.

그 곳에서 온기를 발견하고 인간의 근원적 존재를 찾아낸다.

시인의 호칭을 얻은 수많은 이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조리 시로 만들어버렸다. 꽃은 이제 더이상 시의 목적물이 될 수 없고

바다는 써봐야 재탕 삼탕이다. 줄을 늦게 선 지금의 시인들은 이제 세상의 '등'을 찾아 시를 이루어야 한다. 그런 시선을 가지지

못했다면 좀 더 일찍 태어났어야 옳지 않았겠나. 

시선 밖의 대상을 보지 못하는 가난뱅이 영혼의 시인들이,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말을 비틀고 은유를 하고, 건너

뛰고, 억지 낯설게 하기로 독자와 멀어진 지금, 박일만 시인은 시인이 세상을 보는 법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보고

대중의 시선이 닿지 못하는 곳을 들여다 본다면 있는 그대로를 써도 그것은 낯설고 신선하고 감동적이란 것을 나는 '등'에서 느껴

본다. '등'을 읽고 느낀 딴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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