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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사십세 / 맹문재

가짜시인! 2013. 10. 10. 12:49

사십세

 

                      맹문재

  

집에 가야 할 시간이 훨씬 지난 술집에서

싸움이 났다

노동과 분배와 구조조정과 페미니즘 등을 안주 삼아

말하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들과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개새끼들, 놀고 있네

건너편 탁자에서 돌멩이 같은 욕이 날아온 것이다

갑자기 당한 무안에

그렇게 무례하면 되느냐고 우리는 점잖게 따졌다

니들이 뭘 알아, 좋게 말할 때 집어치워

지렛대로 우리를 더욱 들쑤시는 것이었다

내 옆에 있던 동료가 욱 하고 일어나

급기야 주먹이 오갈  판이었다

 

나는 싸워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단단해 보이는 상대방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다

다행히 싸움은 그쳤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굽신거린 것일까

너그러웠던 것일까

노동이며 분배를 맛있는 안주로 삼은 것을 부끄러워한 것일까

 

나는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싸움이 나려는 순간

사십세라는 사실을 생각했다

 

 

 

 

♥가짜시인의 단상

 

사십이라는 나이에 걸터 앉아 있으니 이곳은 대략 중봉우리쯤 되는것 같다.

육신을, 또는 인생을 나이로 구분한다는 것이 어쩌면 배운자들의 말놀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든다.

스물이면 어떻고 오십이면 또 어떠랴만 사람은 가진 눈 만큼 보고 가진 덕 만큼 나누며 가진 지식 만큼 이해하고 사는 것일게다.

세상은 지식이 없어도 살고 오히려 먹물이 삶을 더 복잡하고 야비하고 이기적으로 만드는 것을 심심찮게 보아왔다.

넥타이를 맨 먹물들이 소주잔 앞에서 노동과 분배와 구조조정과 페미니즘을 잘난체 이야기 할 때, 마디 굵은 근육질이나 검은 피부의 약골들은 등록금과 병원비와 당장 내일의 일거리에 대한 걱정의 잔을 들어야 한다. 돌맹이 같은 욕이 날아올 수 밖에. 

먹물은 무죄다. 

먹물은 세상을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토론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책임이고 의무다.

돌맹이 같은 욕을 날린 투수도 무죄다.

그들은 주어진 조건에 열심히 일한것 외에 딱히 범법행위를 한 것이 없다.

다만 그들이 선택한 인생이 먹물과 다소 거리가 있었을 뿐, 그것은 또한 그들이 감내해야 할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공중으로 날아다닌 욕이 유죄고, 목적을 위해 움켜쥔 주먹이 유죄고, 먹물들이 토론하던 이슈가 유죄다.

결국 사람은 죄가 없다. 정치와 사회와 경제가 유죄인 것이다.

 

나는 사십을 넘어서면서 그것을 차츰 알기 시작한다. 아니 이전에 알았지만 그것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시인 역시도 그랬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스물에, 또는 오십에 그걸 느꼈다면 이 시의 제목을 그 나이로 바꾸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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