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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그 의자 / 박경조 본문
그 의자
박 경 조
다시 앉아보고 싶다
삐걱삐걱 닳은 시간 깜부기처럼 피어나던 긴 나무의자
버드나무 그림자 찰랑거리는 봇도랑에 발 담그고
제 탯줄 씻어 내던 한 아이 있었다
검정고무신 벗어 피라미떼 좇던 날
손톱 끝 봉긋 피어나던 물봉숭아
꿈결인 듯 천천히 다가와서는 또다시 멀어져가던 기차 소리
겹겹으로 물결칠 때 나 온종일 종아리 아려도
측백나무 손 흔드는 다음 역까지
무작정 따라가 보고 싶던 유년을 지나
분홍 꽃모종 이맛전에 옮겨 심던 소녀도 지났다
살면서
살면서, 엉뚱한 길 만날 때마다
내 안의 계절을 수없이 바꾸어 주던 그 의자
뒤돌아보면 내 그림자도 까닭 없이 낯설어
문득, 설레이던 사람 이름 부르듯
나는 봉림역*으로 간다
* 중앙선에 있는 경북 군위의 작은 역.
♥가짜시인의 단상
몇번을 곱씹어 의미를 찾는 시가 있고, 정지 없이 마지막 행까지 주욱 내려가는 시가 있다.
그것은 시의 문제나 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독자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내 사유의 부족함이요, 분별력이 없슴이요, 내 생각의 틀을 깨고 나오지 못하여 자신의 속에 남의 시를 가둬놓고 의미를 풀려고 하기 때문이다. 좀 더 많은 좋은 작품들을 가려 읽고 나를 허물어야 시의 다의성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가볍게 읽힌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과 유사해서 보이지 않는 중첩된 의미를 놓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래서 시든 소설이든 두고두고 읽어봐야 참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선로와 기차소리와 긴 의자.
오랜 세월 변함없이 시인의 기억을 지키고 있는 저 풍경들을 아이로, 소녀로, 여인으로 지나쳐 마침내 지난 시간들을 관조하는 나이가 된 시인은 살면서 엉뚱한 길을 만나 헤매일 때 유년의 기억이 있던 봉림역으로 간다. 누구나 힘들고 쓸쓸할 때 기대는 기억들이 있기 마련. 그것들을 추억하면서 흩어진 생각들을 정리하고 나갈 길을, 걸어온 길의 연장선에 놓을 수 있게 된다. 이런 기억이나 추억이 없는 사람은 좀 많이 쓸쓸할 것 같다. 메마를 것 같고, 차가울 것 같다.
이 시는 각 시행이 갖는 개별적인 의미 보다는 큰 줄기의 정서를 읽어야 제맛이 아닐까. 물론 모든 시행들이 주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더 맛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도, 이글을 읽는 누군가도 마음속에 긴의자 하나 놓인 봉림역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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