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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식사법 / 이종섶 본문
바람의 식사법
이종섶
바람은 흔들리는 것들만 먹고 산다
흔들리지 않으면 죽은 것이라는 감별법에 따라
무엇을 만나든 먼저 흔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끼니때마다 바람의 식탁을 차려야하는 나무는
잎사귀의 흔들림까지 바쳐야 하는 삶이 괴로워
바람도 불지 않고 흔들림도 없는 어두운 땅속에서
어린뿌리들의 두 손을 꼭 잡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으로 떠나라고 재촉한다
가느다란 가지 하나 바람결에 흔들리기라도 하면
탈출계획을 들켜버린 듯 화들짝 놀라는 나무
아무 일 없다는 표정을 간신히 지을 수 있지만
땅속에서는 시커먼 흙을 움켜쥔 뿌리들이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서럽게 울고 있다
입맛을 더욱 돋궈주는 그 소리는
나무 하나 붙잡고 통째로 뜯어먹는 바람의 양념
뼈만 앙상한 나무에 다시 푸른 살이 오를 때까지
기나긴 허기를 달래줄 맑고 차가운 독을 품는다
뾰족한 잎사귀나 딱딱한 잔가지들까지
모조리 핥아먹어버리는 바람의 습성 앞에
발이 묶여있는 나무들이 벌벌 떤다
바람은 흔들림을 먹고 사는 짐승
흰 이빨에 맹독을 키우며 나무를 사육한다
바람의 아가리에 물리면 약도 없어
봄가을로 빨갛게 부어올랐다 가라앉는 자국들
푸른 멍이나 이빨자국을 남기며 아문다
♥가짜시인의 단상
바람과 나무의 흔듬과 흔들림. 눈 뜬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아온 풍경을 시인의 눈은 시적으로 다시 그려내고 있다.
'바람은 흔들리는 것들만 먹고산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기막힌 문장이 첫줄에 놓이지 않았다면 이 시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
시인이 가진 외부의 것들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눈과 깊은 사유가 이 문장에 집약되어 있는 듯하다.
다시말하면 그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기 위해서 시인은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잠을 설쳐가며 사물을 대하고
풍경 속으로 파고들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시인은 나무의 내면과 외면을, 또 바람의 마음 속까지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상상의 폭을 넓혀 나간다.
한 번도 나무가 되어보지 못하고, 한 번도 바람이 되어보지 못한 시인의 실감나는 빙의다.
풍경을 보았느냐? 풍경의 내면을 보았느냐?
좋은 시와 그렇지 않은 시의 경계가 여기에 있다.
누구나 느끼는 일차원적인 풍경묘사나 일차원적인 감흥을 글로 적는, 그래놓고 그것을 詩라고 독자들 앞에 부끄럼 없이 내놓는
나와 같은 가짜시인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받아쓰기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이나 하는 공부임을 알아야 한다. 단순한 풍경과 불쑥 떠오르는 감정을 사유하지 않고 그대로
습작노트에 받아 적는 일을 서슴지 않는 나와, 동류의 가짜시인들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시인을 구분하는 조건 중의 하나가 이것에 있다라고 생각한다.
평면 보다는 입체화된 시적 상상과 묘사 그리고 진술.
이런 것들을 볼 수 있으면서 쓸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아프다. 또한 시를 아는 사람들의 한결 같은 고통이 아니겠는가.
'바람의 아가리에 물리면 약도 없어
봄가을로 빨갛게 부어올랐다 가라앉는 자국들
푸른 멍이나 이빨자국을 남기며 아문다'
꽃이 피고 단풍드는 일을 시인은 또 이렇게 표현한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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