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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를 긁다 / 임솔아 본문
옆구리를 긁다
임솔아
빈대가 옮았다 까마귀 몇 마리가 쥐 한 마리를 사이좋게 찢어먹는 걸 구경하다가 아무 일 없는 길거리에 아무 일 없이 앉아 있다가 성스러운 강물에 두 손을 적시다가 모를 일이지만 풍경의 어디선가
빈대가 옮았다 빈대는 안 보이고 빈대는 안 들리고 빈대는 안 병들고 빈대는 오직 물고 물어서 없애려 할수록 물어뜯어서 남몰래 옆구리를 긁으며 나는 빈대가 사는 커다란 빈대가 되어간다
비탈길을 마구 굴러가는 수박처럼 나는 내 몸이 무서워지고 굴러가는 것도 멈출 것도 무서워지고
공중에 가만히 멈춰 있는 새처럼 그 새가 필사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처럼 제자리인 것 같은 풍경이 실은 온 힘을 다해 부서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모래들이 있다
빈대는 나 대신 나를 물어 살고 빈대는 나를 물어 나 대신 내 몸을 발견한다 빈대가 옳았다 풍경을 구경하다가
♥가짜시인의 단상
이 시를 어떻게 읽어줘야 옳을 것인가를 한참 고민했다. 오래 전에는 시집을 한 권 사게 되면 대표작을 읽은 후, 뒤로 가서 해설을 먼저 읽는 버릇이 있었다. 해설자의 눈을 빌어 시인의 시들을 받아들인 것이다. 고쳐 말한다면 나를 버린 것이다. 입문기의 내 시공부는 그랬다. 세월이 좀 흘러 지금은 일단 시집 한권을 다 읽은 후 해설을 본다. 공감하는 부분도 소설 같은 부분도 있다.
옆구리를 긁는 상황은 아마도 무료함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목이 늘어난 티셔츠의 허리춤을 들추고 긁적이는 모습은 빈대라는 매개물과 자연스레 연결된다. 화자는 아마도 실직 상태이거나 나와 세상의 톱니에서 이탈된 주변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첫행과 둘째 행이 주는 정황으로 보아 화자와 빈대의 관념적 의미는 동일 개념으로 보여지며 (화자=빈대가 사는 커다란 빈대) 그것이 3행,4행에 와서 반전이 이루어지면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정지가 실은 정지된 상태가 아닌 온 힘을 다해 생존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시인이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는 마지막 행에 와서 집약되고 있는데, 비슷한 존재적 가치를 살고 있다라고 느꼈던 빈대가 정지되고, 무용지물이 된 화자를 물어 살고 화자가 발견하지 못했던 몸을 대신 발견하는 지경에 이르면서 빈대는 존재적 가치를 드러내게 되고 화자는 자신의 현재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현재를 극복해야 할 상태로 생각이 전환된다. 빈대가 옳았다는 말. 결국 내가 잘못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빈대를 빗대어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직서적 표현이 절제된 이 시는 이미지를 빌려 말을 대신 전달하는 방법을 택했다. 직서적 표현으로 처음부터 다 드러내 버리는 가벼운 시와 심한 건너뒤기로 인해 소통이 불가한 시들이 즐비한 현대시에서 대상과 의미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처럼 독자에게 쉽게 다가가지도, 너무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조절을 해내는 이런 시가 긴장감 넘치게 읽혀서 좋다.
물론 작자의 의도와 관계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임을 다시 한번 밝혀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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