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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시집 『시골시인-K』(2021, 걷는사람)

나무 날개

가짜시인! 2021. 10. 13. 13:47

나무날개

 

                 권 상 진

 

 

다리가 없는 그는 겨드랑이에 나무날개를 끼운다

무너진 자세를 고치며 목발로 나서는 밤길

설화는 달밤에 시작된다

외딴집 마당에 새도 사람도 아닌 것이 어른거리던 날

마을에는 인면조를 보았다는 소문이 돌았고

소문의 꼬리는 그 집 가까운 골목에서 끝이 났다

밤마다 그 집 마당에는 달빛을 등진 검은 그림자가

앙상한 날개뼈를 한껏 움츠렸다

공중에 걸음을 놓아보지만 번번이 곤두박질쳤다

어쩌다 외발이 날개를 앞지를 때에는

새 그림자에서 몸을 빼려는 사람 그림자가

빈 다리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푸드덕, 허공을 짚는 날개 소리에

달빛이 담장 가로 쓸려 나갔다

사람을 놓아야 새가 될 수 있었다

구겨진 깃을 털고 날개를 가지런히 모으면

새의 울음을 울 수 있었다

빼곡히 찍힌 발자국마다 별빛이 박혔다

별들 사이로 검은 사람이 절룩이며 사라지고

나무날개를 짚은 새 하나 마당에서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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