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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시집 『시골시인-K』(2021, 걷는사람)

꽃문

가짜시인! 2021. 10. 13. 13:50

꽃문

 

                 권 상 진

 

 

꽃잎인 줄 알았다

끝내 속으로만 피고 지던

마음 한 잎 툭하고 여자의 발끝에 흘린 것 같아

처음엔 내가 먼저 붉었다

 

식탁 옆자리에서, 구멍 난 스타킹 끝을 슬쩍 당겨

엄지와 검지 사이에 밀어 넣던

여자도 꽃같이 잠시 붉었다

 

당신이 슬며시 열어놓은 수줍은 쪽문

그 문을 밀고 들어가 발목에 닿고 그 흰 줄기를 다 올라가 꽃에 닿으면

내 마음이 비추던 방향으로 휘어져 오는 꽃대

그 위에 노을 지던 꽃잎, 비밀들

 

나는 나비처럼 꽃술에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당신의 저쪽까지 건너가 눈시울에서 빠져나오면

어느새 당신, 내 곁에 피어있었다

 

속내를 들킨 것 마냥

서로의 표정이 꽃문처럼 닫힐 때

여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꽃무늬 방석을 발끝에 올려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