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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그날의 풍경 / 김종휘

가짜시인! 2019. 7. 12. 18:04

그날의 풍경

 

         

                      김 종 휘

 

 

터널을 나온 철로에서 총총 뛰어노는 참새들

아직 어린것들이다 이별을 경험하지 못했겠다

 

저 나이쯤에 우린 수업을 빼먹고 야간열차를 탔다

엄마의 놀란 눈이 데굴데굴 기차를 따라왔지만

우릴 태운 기차는 콧노래를 부르며 다른 세상을 향해 달려갔다

 

창가에 희끗희끗 초라한 마을 몇 개를 세워 두고 기차는

우릴 바닷가 작은 역에 내려 주었다 우린 모래밭에 앉아

추위와 허기를 참으며 아무나 볼 수 없다는 일출을 목격했다

그날의 풍경은 내 영혼 깊은 곳에서 가끔 나를 깨운다

 

그 바다의 숨결 한 자락이라도 만나보고 싶은 날

나를 데리고 그날의 풍경을 찾아간다

 

풍경은 그 자리에 남아 또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다

빈 의자가 홀로 앉아 있다

사랑을 금기로 삼고 살아야 하는 의자에겐

어떤 사랑의 기억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터널 끝에 또 다른 터널, 터널, 터널들

얼마나 많은 터널을 지나야만 나의 이별은 끝이 나는 걸까

귀가 멍해질 때마다 침을 삼켰다

 

기차가 지나가 버린 철로는 다시 참새들의 시간

어린것들이라 아직 죽음이란 낱말을 익히진 못했겠다

 

 

 

 

시집 『버려진 것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솔출판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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