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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궁리 / 권오영

가짜시인! 2019. 6. 8. 12:20

궁리

 

        

                       권 오 영

 

 

이상한 새가 며칠째 눈 위에 앉아 있다

 

산 그림자를 쪼아 먹는 새는 끄떡끄떡

바닥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베란다 유리로 내다보는 산은

새를 품기 위해 그 자리에 오래

있어 줘야 할 것처럼 보인다

 

사흘째 눈 내리던 날

골똘히 앉아 자신의 깃털을 뽑는 새에게

궁리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나는 너를 여기서 바라보고 있을 거야

궁리를 생각하고 그 생각을 지키기 위해

궁리와 여기 사이에 거리를 두었다

거리를 두는 동안 거리감을 느낀

궁리도 여기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궁리가 번역되지 않은 문장으로 읽혔지만

끄덕끄덕 푸드득 콕콕 만으로도 의미를 알 수 있었고

그런대로 소리와 몸짓만으로도 내용이 이해되었다

 

읽혀지는 방식이 서툴렀을 때의 궁리는

내가 아는 새들이 아니었으므로 이상했고

신비로웠고 날마다 궁금해졌다

누군가가 이상한 새를 품기 전 품어버린

궁리가 여전히 끄덕이고 있다

 

품는다는 것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지금에야 알았다

 

궁리는 그 자리에 나는 여기서 궁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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