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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돌아온 시

[스크랩] 농담 / 권상진

가짜시인! 2018. 9. 6. 08:39




농담

권상진 



죽음을, 이루다 라는 동사로 의역해 놓고서 그는 떠났다
슬픈 기색은 없었다 
이태 전 문병간 자리, 웃음 띤 얼굴로 
비슷듬히 누운채 땅의 소리에만 귀 기우리던 그의 
드러난 한쪽 귀는 단풍잎처럼 붉었고 눈이 붉었다
죽음을 이루려는 안간힘이 겨운 웃음을 꽃대처럼 받치고 있었다
가만 옆에 앉아 있어 주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해줄게 없었으므로
한참 동안 단풍잎처럼 마음 벌겋게 그를 지키다가 돌아오는 길,
문 밖을 따라 나서는 희미한 소리
“먼저 가 있을게”

바람이 손 끝에 침을 발라 시간을 낱장처럼 넘기는 늦은 오후 
겨울 앞에 선 단풍나무 한 그루 
고통의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환한 직면을 본다
꽃 한 다발을 내밀고 싶은 감동적인 결말 앞에 
안간 힘으로 죽음을 이루려던 그가 떠올라 나는 
다시 나무 곁에 한동안 서 있어 주었다 그리고 
말 대신 단풍만 간혹 던지는 나무에 답해 주었다
‘니가 부럽다’



       - 시집『 눈물 이후』시산맥, 2018,





권상진 시인의 ‘농담’을 읽다 보니, 시어머님이 생각난다.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영안실의
차가운 스테인리스 침대에 누워계신 어머니의 평화로운 모습이 생생하다.
치아도 그대로 하얀 얼굴로 아주 고요하고 평화롭게 꽃단장을 받고 있었다.
마지막이니 들어와 보라는 부름에 잠깐 뵙는 순간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말이 세어 나오길,
‘장하세요, 어머니, 죽음을 그리 담담하게 이루셨군요!’
어머님을 부러워하던 나 자신에 깜짝 놀라기도 했었다.

이 시 도입부에 “죽음을 이루다”라는 시구가 나를 사로잡아 이렇게 
생각을 적게 되었다. 
시 속의 죽은 자처럼 나 역시 담담하게 죽음을 이루고 싶다.
아직은 내가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어 좀 더 뒤면 좋겠다.

귄상진 시인님, 
늘 겸손하시더니 보내주신 감성 시집 공모에 당선되셨네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한 작품 한 작품을 낳을 때마다 깊은 정성을 들였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앞으로도 멋진 글 쓰실 거라고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시인, 권상진 님.




출처 : 일상 속의 詩
글쓴이 : 꽃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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