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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가짜시인! 2016. 12. 29. 19:31

 2016년 12월 3일 촛불집회에서

 

  촛불집회를 다녀오면서 매번 드는 생각은 아직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아이나 초등학생을 무대로 불러내 그 순결한 입으로 '박근혜 퇴진'을 말하게 하거나 누구하나 강요하지 않아도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 자발적 걸음을 한 시민들에게 정치색을 묻히려는 일부 '꾼"들의 발언은 좀 자제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매주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수 만, 수십 만 시민들을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본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힘이고 대한민국의 저력이라 스스로 감탄하면서도, 그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져 보고 싶은 것이다.

첫째, 당신은 여기에 왜 나와있는가?

둘째, 대통령 박근혜의 잘못은 무엇인가?

셋째, 그 잘못에 대한 대통령은 어떻게 책임을 져야 옳은가?

더 묻고 싶지만 더이상의 질문은 본질을 흐릴 수 있기에...

적어도 이정도 물음에 대한 논리적인 답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시국은 논리 보다는 감정이 우선한다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박근혜 퇴진'은 거리의 행동가들과 마음은 있어도 나서지 못하는 '재택 퇴진론자'들 까지 합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바라고 외치는 것이지만,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저 어린 아이들의 입에서까지 이 더러운 외침을 끄집어 내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가 말이다. 물론 나역시도 아내와 초등학생 딸아이와 유치원생 막내를 데리고 촛불을 들었다. 아이들만 집에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화문이나 각 도시의 집회에서 어린 아이들이 무대로 올라오는 것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 중 누군가가 적어서 쥐어 준 것 같은 메모를 읽는 모습이 안그래도 언짢은데 TV나 다른 언론에서는 그걸 또 경쟁적으로 내보낸다.

민주주의의 광장에 아이들이 있는 것 자체는 훌륭한 교육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어른들 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숨어서 '그게 아닌데...'를 읊조리는 것 보다 당당히 나서서 '이번에는 당신이 틀린 것 같소!'를 말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나 주었으면 좋겠다.

 

딸은 몇 달이 지나면 중학생이 된다. 

조숙한 탓인지 함께 서면 어깨를 나란히 걸을 수 있을 만큼 키가 훌쩍 자랐고, 또박또박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직 풋내는 나지만 영 어린이로 볼 일은 아니다 싶다. 촛불 첫날은 나와 아내가 가니 어쩔수 없이 따라 나왔는데 나 혼자 나서는 다음 촛불은 함께 가겠다며 따라나선다. 아이를 세워놓고 몇 가지를 물었더니, 어라! 대답이 초롱초롱하다. 그렇다면 함께 가자며 나선 것이 저 사진이다. 세번째 촛불은 행사가 있어 못갔는데 딸아이가 친구와 함께 가겠다며 전화가 와서 그러라고 허락하고 사람들이 많으니 조심하라고 일러 주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알고, 행동함에 소신이 있다면 그가 아이면 어떻고 청소년이면 또 어떠랴. 줏대없이 여저기 쓸려 다니는 인생이 아니라면 좀 힘들고 피곤하게 살아도 나쁘지 않다.

 

대학을 다니다가 나는 3학년 2학기에 쫒겨난 경험이 있다. 벌써 20년도 훨씬 지난 일이지만 이놈의 고졸 학력의 딱지는 사실 여지껏 나를 불편하게 한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했을 뿐인데, 기성 세대와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퇴학 통지서를 받고 일주일 쯤 지났을까? 입영 통지서가 기다렸다는 듯 날아들었고 군에서도 나를 지켜주는 군인이 또하나 있었다. 나는 관찰의 대상이었다. 전역을 하고 학교 관계자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그들은 군대까지 다녀온 대한민국 청년인 내게 반성문을 요구했고,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으며 결론은 이모양이꼴이 되었다. 학력으로 서열 매기기를 좋아하는 사회라는 조직 구조에서, 또 사람들의 시선에서 불편하긴 하지만 후회는 없다. 오히려 떳떳하기까지 하여 지금도 그 떳떳이 변해 마음이 땃땃하니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삶이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 부끄러운 부모는 아니겠다 싶어 위안을 삼아본다.

 

촛불 집회에 나온 학생들과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짠해진다. 한 편으로는 저들이 뭘 알겠나 싶다가도 나도 저 나이 때 어설프지만 무엇이 옳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알았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안아주고 싶다. 3.1운동에도, 4.19에도 5.18의 현장에도 청소년들이 있었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당당히 함께했다. 마냥 어리게만 보이던 딸아이도 이제 그 나이가 된 듯하여 안쓰럽기도 뿌듯하기도 한 마음 복잡한 날이다. 그 행동이 틀렸다면 따끔하게 야단을 쳐서 돌려보내겠으나 그럴 명분도 자격도 없는 어른이라 다만 아프고 아플 뿐이다.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을 구분할 줄 알고 양심에 따라서 행동할 줄 알고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넉넉지 않게 살지언정, 돈과 명예를 누리지만 양심이 부끄러운 사람보다 귀한 삶이 될 것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 주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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