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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생각들

다시 거리에서

가짜시인! 2016. 11. 6. 16:27

 

20년도 더 지나 다시 거리에 섰다.

변한 것이 있다면 그 때는 맨 앞에 섰지만, 지금은 대오의 중간에 서있다는 것.

불의와 불평등과 불안의 시대에,

그 많은 불만들을 그저 가슴에 품으며 참고 살던 사람들이,

왠만해선 자신의 불편 쯤이야 감수하면서 인내하던 사람들이,

찬찬히 살펴보면 온화한 표정을 지닌 사람들이,

스스로 거리로 뚜벅뚜벅 걸어나와 들고 선 촛불.

나는 그것을 분노의 숫자로 읽기 보다 슬픔의 숫자로 읽는다.

이제 집에는 더이상 둘 곳이 없어 하나둘 거리로 나선

슬픔의 숫자가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으로 늘어나는 것을 보며

그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거리 행진이 끝나고 우리에게는 타다 남은 초가 생겼다.

다 태워 없애지 못한 슬픔들은 다시 각자의 몫이 되었다.

삭힌 슬픔보다, 남은 슬픔의 길이가 훨씬 길었다.

 

내가 집회를 기획했다면

그 수많은 촛불을, 그 슬픔을 다시 가져가기보다

청와대와 국회와 검찰청과 정부 청사 앞에 초를 기울이고 촛농을 눈물처럼 떨어뜨려

슬픔을 꼿꼿이 세우게 하고 싶다.

수십만 개의 촛불이 환하게 밤을 세우는 그 곳에서

군림하는 그들에게

엄숙하게 우리들의 슬픔을 제물로 바치게 하고 싶다. 

 

국민이 우스운 나라가 아닌

진정 국민이 무서운 나라가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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