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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百年 / 문태준

가짜시인! 2014. 12. 27. 10:36

百年 

 

                     문태준

 

 

 와병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게들을 올려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해놓은 百年이라는 글씨

 

 저 百年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안자던 百年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가짜시인의 단상

 

시는 감정의 표출이지만, 잘 써진 시는 감정의 절제에 성공하는 시다.

시인은 말하고 싶은 단어를 그대로 원고지에 날리지 않는다.

은근슬쩍 슬픔을 어떤 사물 위에 올려 놓기도 하고,

기쁨을 슬픔 뒤에 숨겨놓기도 한다.

나의 감성에 근거하여 시인이 주는 메세지를 숨은그림 찾듯 결합시켜가는 것

그것이 시를 읽는 참맛이 아닐까...

시인의 극한적인 슬픔은 빈의자와, 앵두꽃과, 왕버들과, 그리고 백년이라는 말과

그것 주위에 쓰여있는 모든 단어들에 속속들이 스며있다.

직설적이지 않은, 하지만 화살끝 보다 더 날카롭게 심장에 와서 박히는 시.

단순화 되고 직접적인 표현만 난무하는 현대에

우리의 정서가 함뿍 묻어나는 이런 시들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

문태준 시인이 사랑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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