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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편린들/내가 읽은 詩

불편한 죽음 / 이성목

가짜시인! 2014. 12. 24. 09:15

불편한 죽음

 

 

                  이 성 목

 

추운 날 땔감으로 쓸까하여

공사장 폐목자재를 얻어다 부렸더니 온통 못투성이다

하필이면 나무에 빠져 죽었을까

죽은 못을 수습하는 동안

나무의 까칠한 잔등에 긁힌 자국이 소금쟁이 같다

죽은 것들을 위하여 겹겹의 나이테를 다 퍼낼 수 없어

아궁이 밑불을 뒤적거리며

퉁퉁 불어 저절로 떠오르기를 기다려도 보았지만

바닥은 개흙, 못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죽음과 침묵 사이엔 얼마나 두터운 합의가 있었을까

나무판자를 덮고 잠들었던 노숙자는

죽은 지 열흘 만에 말라비틀어진 몸을 삶에서 빼냈다

못대가리를 장도리 끝에 걸어 당겼더니

쇳소리를 내며 합판을 빠져나오는

잔뜩 꼬부라져 죽은 못은 죽어서도 쭉 뻗지 못하였다

 

 

♥가짜시인의 단상

 

경험하지 못한 것을 시로 옮기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마치 부유한 정치판에서 서민정책을 논하는 것과 비슷한 탁상공론이 되기 일쑤다.

경험해보지 못한 시적 진술을 이해하기란 또한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 시는 읽는 순간 바로 확 다가왔다. 물론 나무판자를 덮어 쓰고 노숙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못투성이인 폐목자재를 부숴 불을 지펴본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못들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나는 가슴에 옹알이만 남았을 뿐인데 이성목 시인은 또박또박 아름다운 말로

다 풀어냈다. 이것이 시인의 능력 차이가 아닐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한다.

한편으로는 이 시가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가지게 된다.

폐목자재의 튀어나온 못 앞에 서보지 못한 이들의 감성을 흔들 수 있을까하는 안타까움도 함께 든다.

누구라도 이 시가 가슴에 살짝 와닿는다면

나는 못투성이 땔감을 가지고 불을 지펴보라 권하고 싶다.

때론 생각보다 경험이 뒤따르는 삶도 운치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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