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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시인으로 산다는 것 / 안희연 본문
20대 시인으로 산다는 것
안희연
작년 가을, 꿈에 그리던 전화를 받았다. “축하합니다. 신인상 수상자로 결정됐어요.” 나는 수화기를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대학 4년, 대학원 3년. 묵묵히 7년 동안 기다린 순간이었다. 그렇다. 나는 작년 가을에 시인이 되었다. 지금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1학기에 재학 중인 학생이기도 한데, 말이 좋아 학생이지 경제적으로 무능한 인간, 가족들에게 빌붙어 사는 흡혈귀이자 등골브레이커다. 한때는 시인이 되면 인생의 봄날이 시작되리라 순진하게 믿었지만,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다. 시인이 되면 청탁을 받아 계간지(계절마다 발표되는 잡지)에 2~3편의 시를 발표하는 관행을 따르는데, 이렇게 시를 써서 버는 돈을 취합해 보면 연봉 100만원 정도가 된다. 월급이 아니라 연봉이 100만원.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독립은 아예 꿈도 못 꾼다(학자금 대출을 갚으려면 10년은 걸릴 거다). 또래의 시인들을 만나도 마찬가지. 영감과 창작의 기쁨보다 절대가난의 삶, 학자금 대출을 비롯한 빚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에 대해 말하기 바쁘다. 시집이 나온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러나저러나 죄인인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같은 세상에 시를 쓰며 사는 것이 구닥다리 신선놀음처럼 느껴질 때도 없지 않다. 내겐 번듯한 명함이 없기에 어딜 가면 “안녕하세요, 시 쓰는 아무개입니다.”라고 멋쩍게 소개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대체로 두 가지 반응에 직면한다. “우와, 저 시 쓰는 사람 처음 봐요!”라고 놀라거나 “어휴, 저런, 돈 안 되는 힘든 일을 하시네요.”라는 측은함의 눈길을 던지거나.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다. 요즘 세상에 누가 시를 읽겠는가. 게다가 나는 등단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초짜 시인이라 아직 시집 한 권 가지고 있질 않으니, 어딜 가서 떳떳하게 시인이라고 말하기도 쉽지가 않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고, 그럼 시를 안 쓰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면 될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게 참 간단치가 않다. 누군가 나에게 왜 시를 쓰느냐고 물으면,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밖에는 대답할 수 없는 심정이 된다. 시 쓰는 일이 마냥 쉽고 재미있는 것도 아니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시인들은 정말 치열하게 사유하고 고민한다. 오죽하면 윤동주 시인이 ‘시가 쉽게 쓰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까지 했을까. 시인이 되기까지, 나는 토익 점수에 열을 올리는 대신 도서관에 파묻혀 책을 읽었고, 친구들이 취직할 때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아 유럽으로, 인도로, 중국으로 두세 달씩 배낭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리고 무수한 탈락 끝에, 운이 좋게도 시인이 됐다. 그렇지만 이러한 삶이 옳은 것이라고 말하고, 권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라! 세상의 잣대에 자신을 맞추지 말고 세상을 교육하라! 청춘의 슬로건이 지나치게 남발되어서, 도리어 진정성을 잃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훌륭하신 멘토님들이 “시를 읽어라!”라고 한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겐 씨알도 안 먹힌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인가? 나는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라도)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다. 적어도 시는 무한경쟁체제, 시장의 원리로부터 벗어난 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집이 팔려야 시가 읽히고, 시집이 잘 팔려야 유명한 시인이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시는 여전히 인간에 대해 말하고, 인간성의 회복을 꿈꾼다. 시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었던 것을 만난다. 시 속에서 우리는 삶과 죽음, 웃음과 울음, 아름다움의 본령을 마주한다. 이 모든 것이 이상주의자의 허황된 꿈에 불과하다고 해도, 시는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고 견고한 성이다. 그것이 바로 연봉 100만원의 슬픔과 절대가난의 삶, 자기비하와 얄팍한 위로를 반복하면서도 계속해서 나를 쓰게 하는 힘이다. 인간을 기계 혹은 괴물이 되지 않게 하는 힘. 이십대의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러한 믿음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안희연 : 2012년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고트호브에서 온 편지」외 9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 -온라인 매거진 <대학 내일>2013-0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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