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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작가 인터뷰 <권할 수 없는 행복> -/ 안희연 시인

가짜시인! 2013. 8. 10. 08:51

 

 작가 인터뷰 <권할 수 없는 행복> - 안희연 시인

 

 

 

장마가 시작되기 직전의 덥고 습한 어느 날. 친한 형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이유를 찾은 것 같아.”

 

대뜸 그는 내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가 마흔이 가까운,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글을 써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중임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가장자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뜯어낸 잡지 한 페이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20대 시인으로 산다는 것”

 

2012년에 창비 신인상으로 등단한 안희연 시인이 <대학내일>에 기고한 칼럼이었다. 그 중 특히 나의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렇다.

 

“무수한 탈락 끝에, 운이 좋게도 시인이 됐다. 그렇지만 이러한 삶이 옳은 것이라고 말하고, 권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행복이긴 한데, 권할 수 없다. 권할 수 없는 행복이라니, 세상에는 정말이지 별 게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를 쓴다는 것이 권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안희연 시인만의 대답이 궁금해졌고, 이메일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하여 수락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7월의 비가 잠시 걷힌 어느 날,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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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시인.1986년생. 서울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재학 중. 2012년 계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고트호브에서 온 편지」외 9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elliott19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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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1.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조금 찾아보았는데, 2011년, 2012년 사이에 문학동네, 현대문학, 문예중앙, 문학과 사회 등 주요 문예지 신인상 최종심에 지속적으로 이름을 올리셨더라고요. 습작생 입장에서는 최종심에 꾸준히 거론된다는 것만으로도 무척 부러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무슨 비법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동안 어떻게 시를 쓰셨는지가 무척 궁금합니다.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게 2010년 무렵이에요. 그 전에도 틈틈이 시를 쓰긴 했는데 그땐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방법을 전혀 몰랐고, 그래서 시집을 읽다가 좋은 작품을 보면 혼자 따라 써보는 정도였죠. 시를 가르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문지문화원 사이에 다니면서 이원 선생님 수업을 듣게 됐고, 또 대학원 진학을 하게 되면서부터 일주일에 한편, 적어도 2주에 한 편씩은 반드시 쓰는 삶을 시작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일주일이라도 시작(詩作)에 공백이 생기면 두 번 다시는 시를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상한 불안에 시달렸거든요. 시에 대한 열망과 강박이 있었고, 그래서 꽤 다작했어요. 그렇게 모인 작품 중 잘된 것들을 추려서 처음 응모를 시작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운이 좋게도 처음 응모했을 때부터 줄곧 최종심에 이름을 올렸어요. 그걸 부러워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사실 제 나름대로는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꽤 심했어요. 처음 이름을 올렸을 땐 내 가능성을 인정받는 것 같고 기분도 좋았지만 당선이 계속 안 되니까, 그게 오히려 시를 계속 써나가는 데 있어서는 독이 되었던 것 같거든요. 글쎄요, 시 쓰는 데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었다기보다는 시에 얼마나 집중하고 몰입했는가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적어도 제가 본격적으로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는 정말 시밖에 모르는 사람처럼 살았고, 그 집중력과 열의가 시 안에서 어떤 형태로든 발현이 되었을 거라고 믿거든요.

 

2. 최종심에서 떨어지는 시기가 길어지다 보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분명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요. 그 때를 무사히 통과하고 계속 시를 쓸 수 있게 만들었던 힘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문학에 있어서는 제게 이상하리만큼 강력한 근성이 있는 것 같아요. 시가 종교일수는 없으나 종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어요. 시 쓰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시를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고요.

저는 워낙에 어릴 때부터 동시 암송대회, 글짓기 대회 같은 델 잘 나갔고 집에 늘 책이 많았어요. 그런 배경들로 인해 제가 자연스럽게 활자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고요. 특히 대학에 들어와서는 도서관에 출근하다시피 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어요. 워낙에 문화예술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았고, 감수성도 풍부했고요. 돌이켜보면 유년시절이 참 많이 외로웠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줄곧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는데, 버스를 타는 동안에는 늘 혼자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인지 제 시에도 그런 감수성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같아요. 삶을 바라보는 태도도 애처롭고, 처연하고, 사람들을 봐도 안쓰러운 감정을 잘 느끼거든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시를 계속 쓸 수 있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시라는 장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저는 시가 영화의 스틸컷 같다는 생각을 해요. 가끔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면 도중에 나올 때가 많았어요. 제 감정이 영화가 전개되는 속도를 못 따라갈 때가 많았거든요. 저는 그 장면에, 그 인물에 아직 머물러있는데 장면이 너무 빠르게 바뀌어버리니까 그 속도를 따라가는 게 힘이 들더라구요. 반면 스틸컷은 한 장면에 대한 시간적 자유로움이 얼마든지 허락되잖아요. 정지와 고요가 있는, 머물러있는 세계가 시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속도가 저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시의 여백은 독자들을 쉴 수 있게 만들고, 한 문장 한 문장에 오래 머물다 갈 수 있게 하니까요.

 

3. 대학내일에 기고하신 칼럼을 보면 도서관을 활용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럼 나도 이제부터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야지’하고 결심한 습작생들에게, 조금 더 구체적인 조언을 부탁드려요.

 

가장 좋은 습작의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도서관을 가면 막막하죠. 뭘 읽어야할지 모르겠고.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오히려 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다양한 독서를 방해하는 경향이 있고요. 그냥 저는 일단 도서관에 가면, 서가 사이사이를 거닐면서 제목이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았어요. 하루는 일본문학, 하루는 프랑스문학 그런 식으로요. 산책하듯 책 사이를 거닐면서 흥미로운 걸 뽑아 읽는 게 독서의 시작이라고 봐요. 꼭 문학만 읽으라는 것도 아니고, 에세이, 여행기, 자기계발서, 철학서든 뭐든 편견 없이, 마음에 드는 것부터 흡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어렴풋하게라도 독서에 관한 맥락이 잡히고, 선택의 폭도 점점 넓어지게 되더라고요.

저는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나한테 좋은 책을 발견해서 그 책과 깊이 사귀는 게 더 훌륭한 독서라고 생각해요.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도 잘 소개되어 있잖아요. 책이라는 게 제목만 봐도 그 책을 다 읽은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다고 해서 정말 그걸 다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요. 어떤 책은 분명히 읽었는데 한 문장도 기억 안 나기도 하잖아요. 같은 문장이라도 오늘 읽은 것과 내일 읽는 것은 또 다르고. 그러니까 교양인이라면 이 정도는 읽어야 해, 라는 강박에서 벗어나서, 심신이 자유로울 때, 억압 없이 책읽기에 몰입할 수 있을 때 여행하듯 책을 읽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빠른 시간 내에 여러 책을 섭렵하는 것은 서평 리뷰 하시는 분들이 하면 될 일이고. 그게 자신의 문학이 깊어지는 차원의 독서는 아닌 듯해요.

 

4. 소설 쓰다 시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는데, 시의 어떤 매력에 끌리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시를 쓰기로 결정한 데 큰 영향을 주었던 시집이나 시인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얼마 전에 행사를 하나 했는데요. 그 행사의 주요 컨셉이 나를 시인으로 만들어준 시인 다섯 명을 선정해서 그들의 시를 직접 낭송하고, 그 시에 얽힌 사연을 내레이션으로 소개하는 것이었어요. 그때 제가 오랜 고민 끝에 적어낸 이름이 김수영, 김종삼, 허수경, 이장욱 시인이었어요. 제 문학의 첫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제겐 첫사랑이나 마찬가지인 시인들이죠. 그런데 사실 말하자면 끝도 없어요. 이성복, 최승자를 빼놓을 수 있느냐 생각해보면 그것도 아니고. 시대와 나이를 막론하고 시를 쓰는 이들은 다 좋은 것 같아요.

 

5. 대학원 진학 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제 주변에도 문예창작 대학원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문예창작 대학원은 학부에 비해 어떤가요?

 

제 후배들 중에도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며 대학원 생활에 대해 물어오는 친구들이 더러 있어요. 학부 공부만으로는 어딘가 모르게 미진함이 느껴지고, 집중해서 시를 더 써보고 싶은 친구들이 대체로 진학을 생각하는 것 같고요. 사실상 학비가 제일 부담이죠. 솔직히 저도 지금 박사과정을 다니고 있지만, 취직을 해서 일하면서 시를 쓸 용기가 없어서 시간을 유예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어쨌든 학부는 비슷한 또래, 20대 초중반 정도의 한정된 연령대가 모여 있는 반면 대학원은 저희 대학원만 해도 20대에서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해요. 그러다보니 인간관계도 그렇고, 작품도 그렇고 학부와는 확실히 다른 부분이 있죠. 그런데서 오는 충돌이나 자극은 분명한 장점인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건 지극히 일부분이고 결국은 자기가 얼만큼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듯해요. 등단에 대한 고민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끌어안고 가는 거니까요.

다만 수업의 질은 높은 게 사실이에요. 학부에서는 한 권의 책을 한 학기동안 강독하는 식이라면, 대학원에서는 일주일 만에 독파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고. 다양한 이론, 현장에서 자주 언급되는 따끈따끈한 이론을 많이 접하게 해주시고, 사유를 더 개진할 수 있도록, 학문적으로 선생님들이 많은 도움을 주시죠. 근데 어떻게 보면 이게 독이 될 수도 있어요. 뭔가를 아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거잖아요. 결국 대학원이라는 건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독이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는 공간인 것 같아요.

 

6. '문지문화원' 다니셨다고 했는데, 말씀을 들어보니까 대학원에 가기는 힘든 상황에서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차선책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문학적인 갈증은 있으나 대학원에 진학할 시간적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을 때 아카데미를 많이들 찾는 것 같아요. 그런데 대학원도 그렇듯이 아카데미라고 답은 아니잖아요. 학원 다닌다고 다 성적이 오르는 것이 아니듯이, 결국에는 자기가 얼마나 성실하게 쓰는가에 달려 있겠죠. 물론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분들에게 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또 같이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의 습작을 보면서 자극 받을 수 있는 통로는 될 수 있겠죠. 저도 이원 선생님께 수업을 받은 적이 있지만, 선생님이 저한테 가르쳐주신 것이 시를 쓰는 스킬이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제가 이원 선생님께 배웠던 건, 아카데믹한 수업, 그러니까 “이렇게 써야지 시가 된다”는 게 아니었고, 시를 쓰는 마음가짐, 자세, 사고를 얼마나 유연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써야 된다. 시도 근육이랑 똑같다. 성실하게 계속 써서 시의 근육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신 것도 이원 선생님이었고요.

 

7. 당선은 운이 많이 좌우한다고 하지만 시인님처럼 이렇게 줄곧 최종심에 오르는 분들이 있고, 그분들이 결국에는 당선되는 걸 보면, 당선되기 위해서는 명확하게 객관화되지 않더라도, 운 못지않게 실력이라는 것이 중요할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습작생 입장에서는 자기 자신의 실력이 어느 지점까지 왔는지 대강이라도 알고 싶은 마음이 크잖아요. 시인님은 최종심에 오르기 전까지 어떻게 자신을 점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신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잘 다듬어진 시가 아니라고들 하잖아요.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우열을 매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요. 얼마나 다르고 새로운가. 그 새로움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고 파괴력, 파급력이 있는가. 시를 쓸 때 그것을 늘 염두에 두었던 것 같아요. 누가 봐도 이건 이 사람 시다 싶은, 나만의 개성을 획득하고 싶은 열망이 강했고요. 기본적으로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시를 대했던 것 같고요, 그 외에는 일주일에 한 편씩 쉬지 않고 쓰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이 시가 잘 쓰인 시인가, 당선이 될 수 있을까 알 수 없고 두려운 마음은 극복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지금까지 써왔던 시를 다 부정하고 찢어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최종심에서 자꾸 떨어지고 심리적으로 위축되니까 제가 시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시에다가 소망투사를 하고, 시를 억지로 쓰고 있는 제 모습을 본 거예요. 오죽하셨으면 이원 선생님께서도 "너 시 좀 그만 써라. 나가서 놀아라. 여행 다녀와라"하셨으니까요. 아무쪼록 지금까지 썼던 시를 다 부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쓴 시들이 결국에는 당선이 되었어요. 내가 쓴 시를 객관적으로 보는 일은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내 시를 부정하고, 경멸하고, 다 버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의 바닥을 딛고 나니까 반동처럼, 새로운 시들이 또 제 안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더라고요.

 

8. 이 문예지는 어떤 스타일이다 이런 얘기들을 종종 하잖아요. 문예지의 성격과 심사위원의 성향을 고려해서 전략적으로 작품을 선별해서 투고한다는 이야기들도 듣게 되는데요. 시인님은 특별한 전략 같은 것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전략은 없었어요. 다만 제 시가 신춘문예에서 뽑힐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내긴 했는데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잡지로 응모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했고요. 응모 날짜에 맞춰서 새로 쓴 것 중에 5편, 전에 응모했던 것 중에서 5편을 추려서 투고를 계속했죠.

 

9. 언어훈련이라는 게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사물 혹은 사람을 볼 때 즉물적으로 반응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가령 책을 읽다가도 특정 단어가 저를 향해 불현듯 돌진해오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시적 상상력이 불꽃처럼 파바박 튀어요. 그런 단어들은 노트에 써 두고, 길을 갈 때나 잠들기 전이나 틈틈 생각하면서, 한 편의 시로 개진을 시키죠.

저는 시는 이미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여행하면서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인데, 지금껏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이나 인상적인 영화 스틸컷 등을 보면서 그것을 시의 문장으로 바꿔보는 연습을 해요. 보는 것에서만 그치는 게 아니라 그걸 문장으로 바꿔보아야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것 같아요.

 

10. 습작하실 때와 프로가 되었을 때 마인드라든가, 쓰기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정말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어요. 시 쓰는 건 똑같아요. 청탁전화를 받았는가, 마감이 있는가가 다른 점인데, 사실 습작할 때도 응모라는 마감은 있었잖아요.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다만 등단 전에는 나만 써서 나만 봤다면, 발표가 되어서 책으로 나가면 아무리 적은 숫자라도, 누구든 볼 거 아니에요. 그것에 따르는 부담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커요. 쓰기 전의 불안과 초조, 쓰는 동안의 막막함과 두려움, 쓰고 나서의 공허와 미진함은 습작기보다도 강도가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한 편의 시를 쓰고 나면 늘 다시는 시를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고요.

그렇지만 또 한편으론 우연한 곳에서 독자를 선물 받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정말아주 드물지만 메일을 받는다던가, 너무 좋아하는 시인 선생님께서 제 시를 잘 읽었다고 말씀해주실 때는 너무 행복하죠. “권할 수 없는 행복”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있는 문학이 무용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어떤 구절이 좋았다고, 계속 시를 써달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날 때의 행복은, 나 혼자 독방에 갇혀있는 모든 시간과 불안을 이길 만큼 엄청나요. 고통과 행복이 극단적으로 강해진다고 할까요.

 

11. 습작생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읽고 쓰는 데 있어서 자신만의 구체적인 팁이라든가 하는 것들이요.

 

저의 경우에는 빨리 등단하고 싶다는 욕심이 너무나 독이 됐어요. 참 어려운 일이지만, 빨리 등단하고 싶다는 욕망을 현명한 방식으로 몰고 갔으면 좋겠어요. 그 에너지를 좌절하는 데에만 쓰지 말고. 시 안에서 더 자유로워지는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좋겠어요. 자신이 쓴 시를 지나치게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자기 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될 때, 그럴 때 진짜 습작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12. 시인님은 <대학내일>에 기고하신 칼럼에서 “즐기는데 목숨 걸기”라는 표현을 하셨는데요. 목숨 걸고 즐기기랑 뉘앙스가 또 다른 것 같습니다. 즐기는데 목숨을 건다는 표현에 좀 더 부연해주세요.

 

이거 안 하면 죽을 것 같은 마음은 분명히 필요해요. 하지만 그런 마음이 너무 앞설 때, 쉽게 지치고 시가 망가질 수 있잖아요. 나는 반드시 시인이 될 것이고, 죽을 때까지 시를 쓰며 살 것이라는 맹목, 종교성 같은 것은 가지고 있되, 연애하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사랑한다고 하루 종일 옆에 붙들어 놓으려고 하면 질려서 도망가잖아요. 정말 쓰고 싶다면 시를 의도적으로 안 쓰는 시간들도 필요한 것 같고, 시 밖에서 시를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봐요.

 

13. 인터뷰가 마무리되는 시점인데요. 습작생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힘내세요!”라는 말을 제일 해주고 싶어요. 너무 힘든걸 아니까. 되도록이면 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아무쪼록 힘내라고 꼭 말해주고 싶고, 원한다면 차라도 한 잔 사줄 수 있으니, 메일 보내라고 해주세요.

 

14. 정말 마지막으로, 혹시 <문학돋는자리>에서 앞으로 연재될 코너 이름을 시인님의 <대학내일>칼럼에서 힌트를 얻어 “권할 수 없는 행복”으로 지었는데, 괜찮을까요? 시인님의 표현을 빌려서요.

 

네. 좋은 것 같아요.

 

15. 장마통인데 먼 길 마다하지 않으시고 여기까지 나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오늘 인터뷰 어떠셨나요?

 

저에게도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문득 이성복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르네요. 우리의 믿음은 온갖 환상과 착각의 근원이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라고요. 불가능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 모두들 그 사랑의 힘으로 멀리멀리 걸어가는 여름이 되기를!

 

 

  _ 글, 사진 : 김포비.

출처 : 함시 복수초
글쓴이 : 김정복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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