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인들은 나이 지긋해지도록 어머니의 말씀이라는 젖을 떼지 못한 채 한사코 그 말씀의 젖꼭지에 입을 대고 시를 빨아 삼킨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대표적이고 <의자>의 시인 이정록이 또한 그러하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의자>)라는 절창이 실은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시인은 털어놓은 바 있다. 그 이정록이 이번에는 아예 작심하고 어머니의 말씀으로만 이루어진 시집을 내놓았다. ‘어머니학교’ 연작 일흔두 편으로 꾸민 책 <어머니학교>(열림원)가 그것이다.
“푹 삶아지는 게// 삶의 전부일지라도,// 찬물에 똑바로 정신 가다듬고는// 처음 국수틀에서 나올 때처럼 꼿꼿해야 한다.”(<국수> 부분) “맵게 살아봐야겄다고 싸돌아다니지 마라./ 그늘 한 점이 꽃잎이고 꽃잎 한 점이 날개려니/ 그럭저럭, 물 밖 햇살이나 우러르며 흘러가거라.”(<나비 수건> 부분)
어머니의 말투를 고스란히 살린 시들은 삶에 밀착한 교훈을 담고 있다. 시어머니 두 분을 봉양하고 남편을 건사하며 삼남이녀 자식들을 챙기느라 어머니의 삶은 고되고 분주하기만 했다. 그러나 빈집 뒷간에서 하느님의 세숫대야를 보는(<봉사 하느님>) 어머니에게 삶의 고난과 시련은 지혜와 여유로 넉넉하게 몸을 바꾸었다. 남편을 먼저 여의고 그 많던 자식들도 다 떠나보낸 뒤 홀로 여전히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어머니는 실수와 곤경도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너끈히 웃어넘긴다.
짐 보따리를 정거장에 놓고 온 사실을 버스가 출발한 뒤에야 깨닫고 차를 후진시킨 어머니, “담부턴 지발, 짐부터 실으셔유” 기사의 싫은 소리를 순발력 있게 받아친다. “그러니께 나부터 타는 겨./ 나만 한 짐짝이/ 어디 또 있간디?”(<짐>) 전화기 너머의 아들에게 “하루 살면 하루 더 고생”입네 “송장을 지고 다”닐 지경이라며 하소연하던 어머니, 문병을 오겠다는 아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문병은 뭔 문병이여, 좀 기다렸다가// 어미 문상이나 오면 되지.”
과연 시인의 어머니답다고나 해야 할 이런 언어감각으로 어머니는 금과옥조로 삼을 법한 말씀을 어렵지 않게 쏟아낸다. “한숨도 힘 있을 때 푹푹 내뱉어라./ 한숨의 크기가 마음이란 거여.”(<한숨의 크기> 부분) “진짜 전망은 둥지에서 내다보는 게 아니고/ 있는 힘 다해, 날개 쳐 올라가서 보는 거여.”(<전망> 부분)
이쯤 되면 ‘시인의 어머니답다’기보다는 ‘시인이 그 어머니의 아들답다’고 말하는 쪽이 진실에 가까울 듯도 하다. 그 어머니가 시인 아들에게 내리는 이런 말씀이야말로 그 어떤 시작법 교재보다 크고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시란 거 말이다/ 내가 볼 때, 그거/ 업은 애기 삼 년 찾기다./(…)/ 시 깜냥이 어깨너머에 납작하니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너를 엄마! 하고 부를 때까지/ 그냥 모르쇠하며 같이 사는 겨./ 세쌍둥이 네쌍둥이 한꺼번에 둘러업고/ 젖 준 놈 또 주고 굶긴 놈 또 굶기지 말고./ 시답잖았던 녀석이 엄마! 잇몸 내보이며/ 웃을 때까지.”(<시> 부분)
최재봉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