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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인의 그 어머니(이정록 시인 - 한겨례신문에서)

가짜시인! 2013. 7. 18. 17:04

 

등록 : 2012.10.28 19:58 수정 : 2012.10.28 19:58

최재봉의 문학풍경

태어나면서부터 배워 쓰게 된 말을 모국어, 또는 줄여서 모어(母語)라 부른다. 그 말의 한자 표기에 유의해 본다면, 우리는 일차적으로 어머니의 말을 배워 익혀서 쓰는 셈이다. 수유와 양육의 부담이 대체로 어미 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겠지만, 언어 습득과 활용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그만큼 지대하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어떤 시인들은 나이 지긋해지도록 어머니의 말씀이라는 젖을 떼지 못한 채 한사코 그 말씀의 젖꼭지에 입을 대고 시를 빨아 삼킨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이 대표적이고 <의자>의 시인 이정록이 또한 그러하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의자>)라는 절창이 실은 어머니의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시인은 털어놓은 바 있다.

그 이정록이 이번에는 아예 작심하고 어머니의 말씀으로만 이루어진 시집을 내놓았다. ‘어머니학교’ 연작 일흔두 편으로 꾸민 책 <어머니학교>(열림원)가 그것이다.

 

“푹 삶아지는 게// 삶의 전부일지라도,// 찬물에 똑바로 정신 가다듬고는// 처음 국수틀에서 나올 때처럼 꼿꼿해야 한다.”(<국수> 부분)

“맵게 살아봐야겄다고 싸돌아다니지 마라./ 그늘 한 점이 꽃잎이고 꽃잎 한 점이 날개려니/ 그럭저럭, 물 밖 햇살이나 우러르며 흘러가거라.”(<나비 수건> 부분)

 

어머니의 말투를 고스란히 살린 시들은 삶에 밀착한 교훈을 담고 있다. 시어머니 두 분을 봉양하고 남편을 건사하며 삼남이녀 자식들을 챙기느라 어머니의 삶은 고되고 분주하기만 했다. 그러나 빈집 뒷간에서 하느님의 세숫대야를 보는(<봉사 하느님>) 어머니에게 삶의 고난과 시련은 지혜와 여유로 넉넉하게 몸을 바꾸었다. 남편을 먼저 여의고 그 많던 자식들도 다 떠나보낸 뒤 홀로 여전히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어머니는 실수와 곤경도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너끈히 웃어넘긴다.

 

짐 보따리를 정거장에 놓고 온 사실을 버스가 출발한 뒤에야 깨닫고 차를 후진시킨 어머니, “담부턴 지발, 짐부터 실으셔유” 기사의 싫은 소리를 순발력 있게 받아친다. “그러니께 나부터 타는 겨./ 나만 한 짐짝이/ 어디 또 있간디?”(<짐>) 전화기 너머의 아들에게 “하루 살면 하루 더 고생”입네 “송장을 지고 다”닐 지경이라며 하소연하던 어머니, 문병을 오겠다는 아들에게 이렇게 일갈한다. “문병은 뭔 문병이여, 좀 기다렸다가// 어미 문상이나 오면 되지.”

 

과연 시인의 어머니답다고나 해야 할 이런 언어감각으로 어머니는 금과옥조로 삼을 법한 말씀을 어렵지 않게 쏟아낸다. “한숨도 힘 있을 때 푹푹 내뱉어라./ 한숨의 크기가 마음이란 거여.”(<한숨의 크기> 부분) “진짜 전망은 둥지에서 내다보는 게 아니고/ 있는 힘 다해, 날개 쳐 올라가서 보는 거여.”(<전망> 부분)

 

이쯤 되면 ‘시인의 어머니답다’기보다는 ‘시인이 그 어머니의 아들답다’고 말하는 쪽이 진실에 가까울 듯도 하다. 그 어머니가 시인 아들에게 내리는 이런 말씀이야말로 그 어떤 시작법 교재보다 크고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시란 거 말이다/ 내가 볼 때, 그거/ 업은 애기 삼 년 찾기다./(…)/ 시 깜냥이 어깨너머에 납작하니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너를 엄마! 하고 부를 때까지/ 그냥 모르쇠하며 같이 사는 겨./ 세쌍둥이 네쌍둥이 한꺼번에 둘러업고/ 젖 준 놈 또 주고 굶긴 놈 또 굶기지 말고./ 시답잖았던 녀석이 엄마! 잇몸 내보이며/ 웃을 때까지.”(<시> 부분)

 

최재봉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