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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는 설명 없이도 전달 된다 / 나태주

가짜시인! 2013. 7. 11. 19:09

 

○ 좋은 시는 설명 없이도 전달된다       -   나태주 시인      

                     

  

 

 

두 마리의 산비둘기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 너머로 날아갔습니다.


그 다음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비둘기> 장 콕도


프랑스 사람, 장 콕토(Jean Cocteau, 1889-1963)는 매우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시인이면서 소설가, 극작가로 활동했고 화가이기도 했으며 영화감독이기도 했다. 한 사람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해낸 사람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역시 그는 시인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다. 시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 깊은 시는 「귀」라는 작품. 이 작품은 웬만큼 책을 읽었거나 문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시이다. 그만큼 특별하고 깜찍한 작품이란 것을 말해준다.


역시 시는 짧아야 한다는 것을 이런 데서도 우리는 깨닫고 배우게 된다. <내 귀는 소라 껍데기/ 항상 바다 물결 소리 그리워한다.> 딱 두 줄로 된 시이다. 거두절미(去頭截尾)란 말이 있지만 바로 이 시가 그렇다. 머리도 꼬리도 떼어버리고 몸통만 남겼다. 그런데도 하고 싶은 말이나 표현은 다 담았다. 사람의 귀와 바다에 사는 소라의 모양새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 그 안에 무한히도 넓고 아득한 바다의 세계, 그 상상력을 응축시켰다.


위의 시 「산비둘기」 역시 매우 사랑스럽고 조그만 시이다. 그러나 그 내용만은 크고도 항구적인 것을 다루고 있다. ‘사랑’이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비둘기의 그것으로 살짝 돌려서 말하고 있음이 범상치 않다. ‘사랑’처럼 복잡하고 이중적이고 변화무쌍한 감정이 어디 또 있을까? 늘 버림 받은 것 같기도 하다가도 일시에 천하를 얻은 것 같기도 한 마음이 사랑이 주는 감정의 스펙트럼이다. 사랑 앞에 인간은 무한히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그것은 가히 요술로 통할 수 있는 마음이다.


앞의 연은 하나의 객관, 내지는 풍경이고 뒤의 연은 작가의 감상 내지는 평가이다. 의견 개진이다. 그렇다. ‘두 마리의 산비둘기’ 그들의 ‘사랑’을 어찌 소상히 밝혀 말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 사랑일 것이다. 조금쯤은 까발리고도 싶고 조금쯤은 숨기고도 싶은 묘한 비밀의 유혹이 사랑이 아닐까? 그것은 나의 사랑이든 남의 사랑이든 마찬가지.


실은 비둘기 두 마리가 사랑하여 산 너머로 날아갔으면 그것으로 모든 일은 끝나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다음을 알고 싶어 한다. 일종의 가십거리에 흥미가 있는 것이다. 가십은 비본질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 세상살이에 대한 온갖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들이 모두 그런 것들이다. 오늘날 우리가 대하는 시들도 실은 너무나 이쪽에 치중해 있다. 단호히 본질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시는 시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만 시일뿐이다. 그 순금의 맥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이 콕토의 이 시는 매우 사랑스런 시임에는 틀림이 없다. ‘좋은 시는 설명 없이도 전달된다’는 말을 이런 시를 통해 다시 한 번 우리는 각성하게 된다.